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 배부일인 8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효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대학 지원 참고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수학 영역 1등급 수험생 96%가량이 ‘미적분’이나 ‘기하’에 응시한 이과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 만점자와 표준점수 최고 득점자는 모두 의대를 지망하는 재수생으로 서울 강남의 유명 입시학원 수강 경험이 있었다. 정부가 올해 수능에서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배제를 통한 공정성’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문과생 불리, 엔(n)수생 강세, 높은 사교육 의존 등 수능을 둘러싼 고질적 문제가 외려 심화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종로학원은 10일 올해 수능 응시생 3198명의 성적을 분석한 결과, 수학 영역에서 1등급을 받은 수험생 가운데 선택과목으로 ‘미적분’이나 ‘기하’를 택한 수험생 비율이 96.5%로 지금 같은 문·이과 통합수능이 치러진 2022학년도 이후 가장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나머지 3.5%만이 ‘확률과 통계’를 택한 수험생들이다. 현재 수능 수학은 공통과목에 선택과목 3개 중 하나를 택해 시험을 치른다.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하면 대개 이과생,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면 문과생으로 본다. 다만 성적을 산출할 때는 문·이과를 구분하지 않고 표준점수와 이를 9단계로 나눈 등급만으로 전체 응시생을 한 줄로 세운다.
수능 점수는 자신이 택한 선택과목 응시생 집단의 공통과목 평균이 높을수록 표준점수도 높아지는 구조다. 개별 응시생 입장에선 실력이 뛰어나 똑같이 모든 문제를 맞혀도 어떤 과목을 택하느냐에 따라 표준점수 차이가 발생한다. 특히 올해 수능에서 미적분 표준점수 최고점(만점)은 148점, 확률과 통계는 137점으로 최고점에서 11점이나 격차가 벌어졌다. 단지 확률과 통계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낮은 표준점수와 등급을 받는 셈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문과 성향을 가진 학생이어도 수학 선택과목으로 미적분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높은 표준점수를 무기로 한 이과생의 인문사회계열 진학(문과침공)우려는 물론, 적성에 맞는 과목 선택이라는 현재 교육 과정과 수능의 취지 또한 무너졌다는 의미다.
올해 수능의 전 과목 만점자와 표준점수 최고 득점자가 모두 의대 입시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고 알려진 학원 수강 경험이 있는 재수생이라는 점도 ‘공교육만으로 대비가 가능한 수능’을 만들겠다던 정부 공언과 대비되는 결과라는 뒷말이 나온다. 두 응시생이 다닌 입시학원은 수강생에게 킬러문항을 반복 학습시키는 곳으로 유명해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근절하겠다며 세무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교육정책학)는 “이미 수능은 제한된 시간 내에 고난도 문항을 풀 수 있도록 여러번 훈련할수록 유리한 시험이 됐다”며 “한 줄 세우기 상대평가와 이를 위한 문항 변별력이 중요한 수능에서는 ‘사교육 없이도 수능을 잘 볼 수 있다’는 정부 선언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0월 ‘2028 대입 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하며 선택과목 유불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28학년도 수능부터 선택과목 자체를 없애기로 했지만, 현재 9등급 상대평가 체계는 그대로 유지할 뜻을 밝혔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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