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ories:
사회

‘50인 미만’ 중대재해법 대비, 3년도 모자라 더 미루자는 당정

Summary

지난 2022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사업에 참여한 경기도 안산시의 한 사업장에서 전문가들이 작업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한국노총 제공 정부와 여당이 내년...

지난 2022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사업에 참여한 경기도 안산시의 한 사업장에서 전문가들이 작업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한국노총 제공

정부와 여당이 내년 1월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3년 전 법 제정 때부터 예고된 사안에 그동안 손 놓고 있다가 뒤늦게 법 자체를 후퇴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노동계에서 나온다. 실제로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의 핵심 요소인 위험성 평가, 안전 경영 방식 마련, 시설 개선 등 사업을 하는 데 평균 3개월에 3100만원가량이 소요됐다는 노동계 보고서도 나왔다. 정부·여당과 사용자 쪽이 2년 추가 유예의 명분으로 드는 ‘기업활동 포기법’, ‘실업자 양산법’ 등 자극적인 표현과는 달리 일정한 정부 지원과 사업주 의지가 더해지면 작은 사업장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 대응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최근 낸 ‘50인 미만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사업 성과 보고서’를 4일 보면, 해당 사업에 참여한 중소기업 3곳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해 전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데 들인 예산은 평균 약 3100만원이었다. 위험성 평가, 안전보건 경영인증, 시설 개선 등 크게 세 과정을 도입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 한국노총은 2021년부터 올해까지 50인 미만 금형 제조업체, 30인 미만 청소업체, 20인 미만 조명 제조업체 등 작은 사업장 3곳의 신청을 받아 한 해에 한 곳씩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지원했다. 보고서는 그 세부 과정을 담고 있어 작은 중소기업에서 노동자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이를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가늠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지우고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등의 내용으로 2021년 제정됐다. 당시 산업 현장의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전체적인 시행을 1년 늦추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2년을 추가로 유예해 2024년 1월27일부터 적용하는 조항이 법에 포함됐다.

안전 보건 확보 의무의 세부 내용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현재 50인 미만 사업장에 시행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은 그대로 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유예돼도 어차피 ‘법대로’ 사업하기 위해선 마련해야 하는 조처인 셈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는 사업주는 우선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위험·위해 요인을 파악하는 ‘위험성 평가’를 해야 한다. 한국노총 사업에선 엔지니어링 기술자인 전문 인력을 하루 노임단가(2023년 기준 40만781원)를 기준으로 사업장 특성에 따라 2명씩 4~6회 투입해 컨설팅을 진행했다. 3곳 평균 344만6천원이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위험성 평가 인증을 받았는데, 이럴 경우 산재 보험료 20%를 감면받는 혜택이 주어진다.

이번 사업에 참여한 조규선 호서대 교수(안전행정공학)는 “전문가들이 위험성 평가, 작업 표준 등을 알려주니 나중엔 사업주들이 먼저 현장의 문제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일단 의무의 내용과 방법을 알면 사업주와 노동자가 알아서 현장의 위험 요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업주는 또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안전보건 관련 경영방침을 정하고 사업장의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해야 한다. 한국노총은 이를 국제 표준인 안전보건경영시스템(ISO 45001) 컨설팅 및 인증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평균 700만원이 쓰였다. 아이에스오45001 인증 요건은 산업보건·안전관리 운영 계획 수립과 안전보건 담당자 배치 등 중대재해처벌법상 사업주 의무 사항과 유사해 이 인증만으로도 중대재해법에 상당 부분 대비할 수 있다는 게 한국노총 쪽 설명이다.

가장 큰 비용이 든 항목은 안전설비 설치 같은 현장 개선이었다. 평균 약 2100만원이 들었다. 보고서를 보면,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시설 개선은 복잡하지 않았다. 화학물질이 창고 가운데 고스란히 방치돼 자칫 일어날 수 있는 유출 사고 등을 막기 위해 별도로 보관함을 마련하는 식이다.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어 추락 위험이 있는 2층 창고에 안전난간을 설치하거나, 금속을 갈아내는 연삭기나 구멍을 뚫는 드릴에 덮개(안전커버)를 설치해 노동자의 안전사고를 막는 등의 조처도 이뤄졌다. 한국노총은 “요구되는 비용과 시간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며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관심과 의지만 있다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짚었다.

정부가 법 적용 유예보단 이들 50인 미만 사업장에 실질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조규선 교수는 “현장에서 만난 사업주들은 안전을 생각하면서도 뭘 해야 할지 몰라 갑갑해했다”고 말했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법 적용 유예를 위해 국회에 제출한 현장 목소리에도 “소기업은 법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 “세세한 내용을 잘 모르니까 불안하다”는 등 호소가 잇따랐다.

정부와 여당이 전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방향의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소식이 알려지자 노동계는 4일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서울 중구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5일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에 들어가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내년 법 전면 시행과 더불어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을 병행해야 법 실효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단순히 사람 수로 차별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더불어민주당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논의할 수 있단 가능성을 열어줘선 안 된다”고 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정부가 법 적용 유예를 말하면서도 일정 조건을 내걸지 않았다”며 “이렇게 되면 계속해서 법 적용이 유예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강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년 동안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는지 면밀히 연구한 다음 유예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장현은 기자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