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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초월 민간인 학살”…한국전쟁 기간 전남에선 무슨 일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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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진실화해위 출범 3주년 기념으로 광주에서 열린 ‘전남지역 군경 및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상상 초월하는 피해, 출...

23일 진실화해위 출범 3주년 기념으로 광주에서 열린 ‘전남지역 군경 및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상상 초월하는 피해, 출구 없는 공포.”

최정기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전쟁 전후 전남 영광지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관해 이렇게 표현했다. 전남 영광지역에서는 한국전쟁 전후로 다른 군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4291명의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봉기를 일으킨 국군 제14연대 일부가 지역 내 불갑산과 군유산, 구수산, 태청산 등에서 국군 토벌대와의 대치국면을 형성하면서 가해 주체가 경찰과 지방좌익으로 뒤바뀌는 상황이 반복됐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엔 미수복 기간이 길어지면서 공포와 보복, 사전 공격 등의 감정을 가진 무장군중들에 의해 학살의 악순환이 심화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3일 오후 2시 광주시 서구 라마다 플라자호텔에서 ‘전남지역 군경 및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 토론회’를 열었다. 2기 진실화해위 출범 3주년 기념으로 열린 이번 토론회는 한국전쟁 전후 전남지역에서 발생한 군경 및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의 진실규명 성과를 공유하고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피해복구를 위한 향후 과제를 제시하는 자리였다.

현재 진실화해위에 신청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 총 1만3982건 중 광주·전남지역 희생 사건 수는 5874건(여순사건, 형무소사건 제외)으로 전체 신청 사건의 42.3%에 이른다. 영광이 속한 광주와 전남지역은 한국전쟁 전후 최대의 민간인 희생사건 피해지역이다.

23일 진실화해위 출범 3주년 기념으로 광주에서 열린 ‘전남지역 군경 및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질문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이날 토론회에는 최정기 교수를 비롯해 김웅기 진실화해위원, 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가 발제자로 참여했다. 발제 뒤엔 윤해동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김광진 KBS 목포방송국 기자, 이재근 신안군청 학예연구사, 박미경 진실화해위원회 조사2과장이 토론했다.

‘한국전쟁 전후 전남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진실규명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첫 발제를 한 김웅기 진실화해위원은 “한국전쟁 당시 전국 각지에서 민간인들이 군경에 의해 적법절차 없이 희생되었다는 주장이 사실로 밝혀졌고, 진실규명을 바탕으로 정부의 사과가 이어졌다”며 “사건 지역을 중심으로 위령비, 위령 묘역이 건립되는 등 유족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지역사회 내 화해 조치가 이행되는 데 기여했다”고 성과를 꼽았다. .

김 위원은 또 2기 진실화해위 과제로 1기에 비해 신청 건수는 80% 증가되었지만 1기 위원회 대비 조사 기간은 1년 단축된 2기 위원회의 조사기간 연장과 배·보상법 제정 등 피해자 명예회복과 피해 구제, 과거사재단 설립 등을 제시하였다.

23일 진실화해위 출범 3주년 기념으로 광주에서 열린 ‘전남지역 군경 및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 토론회’ 시작에 앞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두 번째 발제를 한 최정기 교수는 ‘한국전쟁 전후 영광지역의 민간인 학살’을 주제로 큰 피해가 발생한 전남 영광지역의 ‘희생자 통계’와 ‘가해자를 기준으로 본 지역별 피해사례’, ‘1945∼1953년 시기 영광지역의 정치사회학’, ‘한국전쟁 기간 영광지역의 민간인 학살 사건들’에 대해 발표했다.

최정기 교수는 발제문에서 전남 영광군에서 가장 피해가 큰 지역으로 백수면과 염산면 사례를 들었다. 해안가에 위치한 백수면의 구수산 갓봉은 빨치산 집결지였고, 군경의 수복이 7개월 정도 늦어지면서 1950년 10∼11월에 발생한 좌익에 의한 희생사건이 전체 희생사건의 80%를 차지했고, 또한 불갑산과 구수산을 잇는 통로였던 염산면에서는 9·28 수복 이후 피해자의 80% 정도가 무차별 학살의 피해를 보았다고 밝혔다.

세 번째 발제자인 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는 ‘한국전쟁 전후 전남 완도지역의 민간인 희생사건’을 주제로 ‘해방 후부터 1946년까지 완도군의 정치사회적 동향’과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완도 경찰의 좌익 소탕작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완도군에서의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해서 발표했다.

박찬승 교수는 특히 완도군에서 희생자가 많았던 소안면에서 희생사건이 다수 발생한 원인을 고찰하면서 “두 집안의 사소한 갈등이 해방 이후 좌우 갈등으로 이어졌고, 좌파 청년 한 명이 여순사건에서 사망한 사건이 우익에 대한 보복학살로 이어졌다”며 “이것이 다시 경찰 수복 이후 부역자 처벌로 이어지는 비극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2013년 5월 “소안항일운동기념관 옆 공터에 세워진 ‘소안면 희생자 추모비’에는 마을별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두 새겨졌고 추모비 제막식 때 완도경찰서장은 희생자들에게 사과했다“며 “화해와 치유가 시작되었다”고 평가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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