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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손배소 이겼다, 이제 일본 정부에 직접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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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유족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선고 기일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의 1심 각하 취소 판결을...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유족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선고 기일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의 1심 각하 취소 판결을 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1심 판결을 취소한다. 원고에게 청구금액 전부와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

23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308호실. 판사가 승소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5)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손을 모으고 재판장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2016년 말 처음 소송을 제기할 때 함께한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11명이었지만 이제는 이 할머니 한명만 남았다. 이날 법원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국내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이 모두 승소로 종결된다. 피해자 지원단체는 “엇갈렸던 판결이 통일됐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 사과와 책임 있는 배상을 촉구할 토대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재판장 구회근)는 이날 오후 이 할머니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총 16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 법원의 각하 판단을 취소하고 청구 금액 전부를 인정했다. 이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은 2016년 12월 “1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판단을 가른 건 ‘국가면제’ 법리 인정 여부였다. 재판부는 “(최근) 국제관습법에 따르면 일본의 행위는 한국 영토에서 한국 국민에 대해 자행된 불법행위로 일본의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한국 법원의 재판관할권을 인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국가면제란 한 국가의 국내 법원이 다른 나라 정부와 그 재산에 대해 재판관할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 국가를 서로의 재판관할권으로부터 보호하자는 국제법 규칙이다. 1심 재판부는 국가면제 법리를 인정해 소송을 각하했다.

2심 재판부는 일본 정부 행위의 불법성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일본국의 전신인 일본제국도 일본국의 현행 헌법 98조 2항에 따라 일본국이 체결한 조약과 국제법규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며 “‘육전의 법 및 관습에 관한 협약’,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금지약’, ‘노예협약’,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등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제국 공무원들이 과거 형법 제226조에서 금지하는 ‘국외 이송 목적 약취·유인·매매’ 행위를 했을 뿐 아니라 일본제국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거나 방조했다”고 설명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로 인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 쪽 항변이 없어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한국 재판부의 판결에 대응하지 않고 있어 이날 선고는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 할머니를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한국 정부의 대응을 촉구해오다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엔 ‘한국 정부에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국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승소에도 불구하고 실제 배상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 정부의 자산을 강제로 매각해 배상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외교 문제 등이 복잡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일본 정부 상대 소송은 1차(나눔의집)와 이날 선고가 난 2차(정의기억연대·민변)로 나뉜다. 1차 소송은 2021년 1월 ‘일본 정부가 1억원씩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이 났고, 곧 확정됐다. 하지만 이 소송의 원고들도 3년이 지나가도록 실질적인 배상은 받지 못했다.

1차 소송 원고들은 배상금과 소송비용을 받기 위해 재산명시 결정과 소송비용 추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국가면제 법리를 인용해 소송비용을 “추심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일본 정부의 한국 내 재산 목록을 공개하라’는 재산명시 결정은 다른 재판부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원고들은 이 결정에 따라 일본 정부가 ‘화해·치유 재단 출연금’에 대한 반환청구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를 압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날 승소한 2차 소송 원고들은 ‘반환청구권 압류’ 대신 일본 정부에 직접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소송을 이끈 권태윤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오늘 판결 전까지는 승소·각하로 판결이 엇갈려 진상규명 운동을 하거나 일본 정부에 배상 의무 이행을 촉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이제는 장애가 해소됐고, 법원에서 피해자의 권리가 확인됐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직접 사과와 책임 있는 배상을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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