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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투표 부결에도 ‘꼼수’ 조사로 ‘경비원 100명 해고’ 결정한 잠실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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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단지 내 전경. 윤연정 기자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서울 잠실 아시아선수촌아파...

지난달 27일 서울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단지 내 전경. 윤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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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갑작스레 경비노동자를 절반가량 줄이기로 결정하면서, 겨울을 앞두고 이곳 경비노동자 100여명이 고용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 6년간 세 차례 진행된 주민투표에서 ‘경비원 감축안’이 번번이 부결되자 입주자대표회의가 주민투표를 생략하는 ‘꼼수’로 이런 감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주민들 내부에서조차 “절차적인 문제가 있다”는 반발이 나온다.

1일 아시아선수촌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달 24일 ‘경비대원 축소 운영 방안’을 담은 입주자대표회의 의결 공고 게시물을 각 아파트 단지에 부착했다고 밝혔다. 18개동 1356세대가 사는 대단지 아파트인 이 아파트는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 13명 중 11명이 참석해 내년 1월부터 아파트 경비노동자를 109명에서 57명으로 절반 가까이 감축하기로 의결했다. 경비노동자들은 용역업체에 소속돼 있고, 업체는 아파트 쪽과 위탁관리 계약을 맺고 있다.

지난 27일 현장에서 만난 경비노동자들은 당장 누가 해고 대상이 될지 몰라 불안한 모습이었다. 해고 대상이 되는 기준이나 향후 대책 등에 대한 추가 고지 없이 내용이 통보됐기 때문이다. 근무한 지 1년이 안 된 경비노동자들은 ‘퇴직금 지급대상이 아니라서 해고 대상이 될 것 같다’고 우려하고, 10년 넘게 일한 경비노동자들은 ‘나이가 많아 새로운 경비원들한테 밀려 해고 1순위가 될 것 같다’며 걱정했다. 한 경비노동자는 “우리가 ‘을’인 처지에 단결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더군다나 아직 누가 해고 대상인지 몰라 모두 눈치 보고 입 다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단지 내 각 동 라인마다 경비실이 있는 모습. 윤연정 기자

갑작스레 감축안을 듣게 된 건 대다수 주민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파트는 지난 6년 새 세 차례에 걸쳐 입주민 대상 전체 투표를 거쳐 경비원 감축을 추진했지만,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해 번번이 부결됐다. 2018년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거주했을 당시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아파트 경비 인력 감축’ 논의가 처음 불거져 한차례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주민투표를 통과하지 못했고 이후 2019년, 2020년에도 연달아 부결됐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주민들 의견을 수렴해 대표회의가 결정했으므로 정당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지난 8월 말부터 한 달 동안 전체 1356세대를 대상으로 ‘관리비 중 경비비가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설문을 진행했고, 답변한 1212세대 중 62.5%가 ‘그렇다’고 답했다는 게 근거다. 이 아파트 125㎡(38평) 기준 관리비는 26만원으로, 이 가운데 경비비는 16만원이다. 계획대로 인원을 절반가량 줄인다면, 경비비가 8만원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게 입주자대표회의의 계산이다.

하지만 주민 투표에서 통과가 안 되니 꼼수를 써 통과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20년 넘게 거주한 한 40대 주민 ㄱ씨는 “지난 8월 국가에서 시행하는 비대면 인구조사를 수행하던 통장이 갑자기 ‘관리비 중 경비비가 부담스럽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며 “편파적인 질문도 문제이지만, 관리비가 부담스럽다는 답변과 경비원 감축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 이를 두고 경비원 감축에 찬성한 것이라고 보는 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대리하는 관리사무소장은 한겨레에 “관리비 절감 문제로 민원이 많이 들어와서 개별 목소리 청취를 위해 (설문을) 진행했다.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절차상 문제와 별개로 경비노동자를 한번에 절반가량 감축하는 것이 위법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선미 노무사(노무법인 율선)는 한겨레에 “‘재정난이라는 경영상의 이유’가 해고 사유인데, 사유의 정당성과 근로자의 갱신기대권을 비교해보면 단숨에 경비원 50%의 생계권을 박탈하는 결정이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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