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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정복 지도’, 소리를 보는 안경…디지털로 장벽을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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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나 유아차, 거동이 불편한 이동약자를 위해 계단뿌셔클럽은 출입구 사진, 승강기 유무 등 계단정보를 수집해 ‘계단정복지도’를 만든다. 사진은 이 단체 활동가들의 모습. 2021...

휠체어나 유아차, 거동이 불편한 이동약자를 위해 계단뿌셔클럽은 출입구 사진, 승강기 유무 등 계단정보를 수집해 ‘계단정복지도’를 만든다. 사진은 이 단체 활동가들의 모습. 2021년부터 734명이 참여해 1만 6천여 곳의 계단정보를 등록했다. 계단뿌셔클럽 제공
#장면1. 차해영 서울 마포구의원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려면 매번 갈 곳을 찾느라 어려움을 겪는다. 대부분의 상점 출입구에는 높거나 낮은 문턱이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아니라면 문턱이 있더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들에겐 제약이 된다.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쇼핑을 하고 싶을 뿐인데 이동조차 쉽지 않다.

#장면2. 청각장애인 대학생 이세진씨는 보청기를 사용하지만, 대화할 때 상대방 입모양을 보거나 상황과 표정 등을 통해 눈으로 소리를 읽는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을 볼 때는 다르다. 자막과 화면해설이 없는 경우 보조기기에 의존해야 한다. 이마저도 배경 음악이 클 때는 등장인물의 대화가 음악에 묻혀 내용을 미처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나마 드라마나 영화 접근은 용이한 편이다.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장에서 관람에 필요한 자막, 화면해설, 수화 등이 제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화 생활을 누릴 기회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좁은 문이다.

국내 등록장애인은 2022년말 기준 264만4700명으로 전체 인구의 5.2% 수준이다. 20명 중 1명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2007년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만, 장애를 갖고 생활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장벽이 있다. 의료서비스와 교통수단 외에도 누려야 할 여러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데 장애인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편이 쏟아져 나온다. 특히 우리 삶 전반이 디지털 전환을 중심으로 크게 변하는 지금, 정보통신기술(ICT)로 장벽을 허물어 ‘모두’에게 당연한 일상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앱 계단정복지도 사용 화면.
계단뿌셔클럽은 이동약자의 이동을 어렵게 하는 도시의 계단정보를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하여 ‘계단정복지도’를 만든다. 외부 용역을 발주해 정보를 수집·등록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임에 참석한 계단뿌셔클럽 멤버들(자원봉사자)로부터 정보를 쌓은 것에 의미가 크다. 2021년 시작해 현재까지 734명(누적 참여인원)이 1만 6천여 곳을 방문해 계단정보(출입구 사진, 승강기 유무 등)를 앱에 모았다. 차해영 마포구의원 역시 클럽 활동(정보 수집 행사)에 참여해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앞에서 계단정보를 모았다. 그는 “관심을 두고 있던 동네의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할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이 열어준 기회를 활용해 협력 함으로써 사회문제 해결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제품, 서비스가 나왔을 때 처음부터 모두를 포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기업은 물론 정부, 비영리조직 등 다양한 주체가 협력해 더 나은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대호 ‘계단뿌셔클럽’ 공동대표의 말이다. 이 대표는 활동에 참여하면서 사회 약자의 이동권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을 모두가 함께 누리기엔 여전히 문턱이 높지만, 이를 조금씩 부수어 낮추려는 것이다. 장애인의 공간 접근성, 정보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만큼 이들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가치봄(배리어프리) 영화’라고 하는데, 극장 상영작은 1년에 몇 편 안 된다. 그마저도 화제작 정도만 하는 편으로 상영관도 정해져 있고 상영 횟수도 적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시점에 웃고, 같은 시점에 감동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청각장애인에게 상대방의 음성을 실시간 글자로 보여주는 스마트 안경을 개발한 ‘엑스퍼트아이엔씨’는 같이 웃고 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일반 안경처럼 스마트 안경을 착용하면 투명한 렌즈 한 켠에 실시간 대화 내용이 자막으로 변환되어 나타난다. 지난해 출시된 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을 통해 지자체, 국립재활원 등에 납품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1천명이 사용하고 있다. 최근 엑스퍼트아이엔씨는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청각장애인 대상 영화 관람용 자막 안경 공급을 논의하고 있다. 정유섭 전무는 “일상생활의 언어장벽 해소로 비장애인과 차이 없는 사회생활, 자립생활이 가능한 것은 물론 장벽 없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소리를 글자로 보여주는 청각 보조기기 ‘씨사운드'는 청각장애인들의 자유로운 소통을 꿈꾼다. 엑스퍼트아이엔씨 누리집
이처럼 새로운 기술개발과 공동체 인식의 개선을 함께 모색하며 사회 변화에 기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한계점도 여럿 드러나고 있다. 가장 크고 본질적인 문제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단기간에 시장에서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관련 시장은 상대적으로 수요층이 적고 수익성이 낮다. 하지만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세심한 관찰과 감성적 접근에 바탕해 수요자의 욕구와 필요를 찾아가야 하기에 비장애인 대상 제품개발, 시장 확보보다 더 많은 품이 든다.

계단뿌셔클럽의 회원 대부분은 ‘부업’으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여가를 활용해 서비스를 개발, 운영하는 셈이다. 이런 이유들로 이대호 대표는 “사이드프로젝트(자발적으로 모인 개인들이 팀을 꾸려 진행하는 비공식 프로젝트로 꼭 수익만이 목적은 아님)치고 엄청난 역량과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정규 조직에 비해 빠른 성장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초기 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투입도 있지만, 기업체의 공익재단 지원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 브라이언임팩트재단, 아산나눔재단, 행복나눔재단 등이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혁신조직을 지원하고 있다. 브라이언임팩트 관계자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여러 프로젝트가 대부분 좋은 의도로 시작되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큰 수익을 내지는 못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좋은 프로젝트들을 찾아서 꾸준히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5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0차 유엔총회에서 국제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의 모습을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것(Leave no one behind)’이라는 슬로건으로 정리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만하면 괜찮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사회적 약자가 아닌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는 세상과 너무나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배제되는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문제를 줄이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가장 약자를 위한 것은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역 승강기나 저상버스는 장애인만이 아니라 노약자나 유아 동반 보호자,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모두에게 유용하지 않던가.

이대호 대표는 “강력한 기술과 풍부한 자원이 있더라도 한 주체가 처음부터 완벽한 서비스를 내놓을 수는 없다. 대기업과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다음 단계의 문제를 풀도록 기업과 정부에 책임을 요구하고 독려하고, 또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점진적, 단계적 문제 해결과 협력을 통한 가치 창출을 고려할 때 기술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는 사회로 빠르게 이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효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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