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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만들어진 민주주의 재설계해야…한국 혁신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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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 중 한 명이 계속 설거지를 전담하고, 나머지는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무임승차)고 가정해보자. 깨끗한 그릇(자유 사용재)은 계속 생기지만 이들이 룸메이트로 계속 같이 살기...

“룸메이트 중 한 명이 계속 설거지를 전담하고, 나머지는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무임승차)고 가정해보자. 깨끗한 그릇(자유 사용재)은 계속 생기지만 이들이 룸메이트로 계속 같이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때 모두가 동의할 만한 강제적인 작동 시스템(국가 강제력, 합법적 정당성)을 만들어야 한다.”

2018년 정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요한 시테상을 받은 제인 맨스브리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명예교수는 정치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유 사용재’(Free use goods)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유 사용재는 누구나 공짜로 쓸 수 있는 도로, 항만, 안보, 법, 질서 등이다. 그는 ‘자유 사용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조세 징수 등 국가의 강제력이 필요하고, 이를 ‘무임승차’(Free Riding)할 경우 벌금을 매기는 등 ‘합법적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과 해법을 모색해온 맨스브리지 교수는 11일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제14회 아시아미래포럼의 기조세션 1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근원’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탁월한 학문적 성취로 평가받는 학자다. 지난해 미국정치학회에서 주는 벤저민 에번스 리핀콧상을, 2년 전에는 국제정치학회에서 주는 칼 도이치상 등을 수상했다. 2012년 미국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그는 ‘적대적 민주주의를 넘어’(Beyond Adversary Democracy) 등을 펴냈다.

맨스브리지 교수는 “인류 간 상호의존성이 (과거보다) 커지면서 ‘자유 사용재’에 대한 니즈(요구)도 증가했다. 자연스레 ‘무임승차’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만큼 국가의 규제가 더 필요해졌다”며 “하지만 18세기부터 만들어진 민주주의 메커니즘으로는 오늘날 필요한 모든 규제를 합법화(정당화)하기는 부족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합법적 정당성’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18세기에 만들어진) 민주주의를 다시 설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일단 국가 규제의 강화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민주주의를 다시 설계할 때 정당의 대표와 시민들은 계속 소통해야 한다. 시민과 대표가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것은 많은 비용과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합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 대표와 시민이 모여 다양한 정치적 주제를 토론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낼 수 있다”고 했다.

맨스브리지 교수는 또 “한국은 18세기 민주주의 메커니즘을 혁신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은 세계적인 역량을 가진 강력한 국가이면서,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충분히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기업가 정신과 창의성이 있으며, 교육 수준이 높고 열심히 노력하는 국가”라며 “이런 총체적인 사고와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패널들은 맨스브리지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우리나라 고유의 정치적 특성과 역사, 사회적 갈등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민주주의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숙의민주주의의 소통 과정이 매우 중요하지만, 현실이 쉽지 않다. 소통에 참여하려는 동기 그리고 상호 존중 문화, 공존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며 “그런데 양극화된 정치 문화에서는 그 전제가 충족되지 않을 때가 많다. 많은 사람은 반대편과의 소통을 조소하거나 거부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존중과 경청의 문화를 확산·강화해서 두터운 사회적인 연대의 중심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만권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는 “맨스브리지 교수가 우리나라가 혁신의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고려한 요소들은 일반적인 면에서 설득력이 있다”면서도 “우리 정치가 친일·종북과 같은 역사적 이념을 이어온 점, 적대감이 심화되고 있는 정당 체제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 소득 격차 등 불평등의 심화, 능력주의와 연계된 혐오와 차별 등을 고려해봐야 한다. 이는 우리가 변화의 혁신 장소로서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지점”이라고 말했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원은 “정치 참여보다 중요한 건 잘 조직되고 정제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라며 “조직된 정치 참여나 정제된 정치 참여, 책임 있는 정치 참여가 늘지 않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지금이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혁신적인 민주주의를 찾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온 것을 어떻게 더 잘할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가능한 접근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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