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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사형투표’, 정의구현 꿈꾸는 당신 위한 아찔한 쇼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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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비에스 제공 ※이 글에는 범인의 정체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처벌받지 못한 흉악범들을 모바일 투표에 부쳐 여론에 따라 처형해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아이디어를 담...

에스비에스 제공

※이 글에는 범인의 정체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처벌받지 못한 흉악범들을 모바일 투표에 부쳐 여론에 따라 처형해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아이디어를 담은 웹툰이 있었다. 국민사형투표’(SBS)는 2015년에 나온 원작 웹툰에서 주요 설정과 캐릭터를 따왔다. 여기에 최근 우리 사회에서 공분을 일으킨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각색하여, 웹툰 원작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현실감 있는 드라마가 탄생했다.

법이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는 현실 인식이 강할수록 복수물이 넘쳐난다. 사적 복수를 통해 원한을 풀거나 정의를 구현한다는 소망을 대리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은 만들기는 쉽지만 위험하다. 약자의 원한을 증폭하거나 악을 전시하거나 ‘고구마’와 ‘사이다’를 오가며 감정의 진을 뺏기 십상이다. ‘국민사형투표’는 뻔한 포퓰리즘의 길을 가지 않는다. 드라마는 ‘더 글로리’(넷플릭스)나 ‘모범택시’(SBS)처럼 응징하는 쪽을 주인공으로 삼아 원한 감정이나 통쾌함을 내세우지 않는다. ‘국민사형투표’의 관객은 투표의 찬반에 놓인 곤혹한 시민의 자리에 초대된다. 그리고 사형집행자 ‘개탈’을 잡아야 하는 경찰의 눈으로 사태를 조망하기에 ‘개탈’이 아무리 정의와 상식을 부르짖더라도 그 역시 연쇄살인범이라는 전제를 잊지 않는다.

에스비에스 제공

이런 안전장치를 걸고서, 드라마는 법의 한계와 정의의 본질을 저글링하는 쇼 타임을 열어젖힌다. ‘개탈’은 법의 바깥에서 응징하지만 투표라는 여론 승인의 장치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때 어떤 사건들을 투표에 부칠지가 중요하다. 단순히 미친 악인의 악행이 아니라 법과 사회가 지닌 구조적인 결함을 드러내는 사건일수록 ‘법이 놓친 정의를 상식으로 메운다’는 논리가 먹혀들 수 있다.

첫번째 투표 대상자는 아동성착취물 사건의 주범이다. 실제로 세계 최대 아동성착취물 불법 웹사이트인 ‘웰컴투비디오’ 사건의 주범 손정우는 솜방망이 처벌로 풀려났다. 외국이라면 중형을 선고받았을 그가 고작 1년6개월 만에 풀려나고, 미국으로의 범죄인 인도 요청도 기각됐다. 이는 아동성착취 문제에 대한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구멍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번째 투표 대상자는 군대 내 성폭력 사건 가해자다. 무수한 실제 사건이 있다. 수천건의 사건이 발생하고 은폐되는 이유는 수직적이고 폐쇄적이며 남성 중심적인 조직문화 때문이다. 군 수사기관과 군사 법정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믿기 힘들다. 이 역시 법과 제도의 한계를 뚜렷이 보여주는 예이다.

반면 두번째 투표 대상자는 반복해서 남편을 죽이고 보험금을 타낸 악녀이다. 이 경우는 법과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으로 보긴 힘들다. 그의 악행을 강조하느라 아동학대까지 얹어서 공분을 자아내고 이런 “죄의 씨앗을 잉태할 자궁을 불살라버리게” 하반신을 폭파하여 사형을 집행한다. 여성 혐오적인 멘트와 처형 방법이다. 이는 법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 아니라 악녀를 내세운 전형적인 혐오 선동으로 ‘개탈’의 법철학 쇼 라인업 중 흥행을 위해 끼워 넣은 번제물에 가깝다.

드라마의 인물들이 다층적인 질문과 모순을 품은 존재라는 점도 흥미롭다. 권석주(박성웅)는 법철학 교수로 누구보다 법을 잘 알지만, 딸을 죽인 가해자가 법에 의해 풀려나자 기꺼이 응징에 나선다. 그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무죄의 악마’을 죽인 확신범이 된다. ‘법 바깥의 정의를 실현’하고 묵묵히 법의 처벌을 받는 그는 꽤 일관성 있는 인물이다. 한편 김무찬(박해진) 형사는 ‘무죄의 악마들’을 증오하지만 여전히 법을 믿는다. ‘개탈’이 투표 대상자를 처단하려는 순간 법에 의한 처벌을 믿으라 권할 정도이다. 하지만 김무찬은 늘 성과를 중시하며 절차를 무시해오지 않았던가. 권석주 딸 사건 수사에서도 증거를 조작하여 재판을 망쳤고 그로 인해 권석주가 살인에 나서게 되었다. 김무찬은 법을 믿는 자신의 신념과 절차를 무시하는 자신의 행위 사이에서 아무런 간극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악을 미워하고 정의와 상식을 쫓는다고 확신할 뿐 자신의 신념체계에 대한 성찰은 없다.

‘개탈’의 정체도 흥미롭다. 흔히 ‘자경단’물에서 응징의 대상인 범죄자들은 권력을 등에 업은 사이코패스로 그려진다. 그런데 ‘국민사형투표’에선 악을 응징한다는 ‘개탈’이 사학재단과 정치인 집안의 사이코패스 아들이다. 일찍이 그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갔고 지금은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응징의 쾌감에 미쳐 있다. 심지어 그의 영웅놀이는 이제 정치에 이용되려 한다.

법이 정의와 일치하지 않듯이 여론도 정의와 일치하지 않는다. 정치는 표를 좇고 언론은 시청률을 좇는다. 그리고 대중은 재미와 자극을 향해 내달린다. 인민재판과 사이버 레커를 통해 경험하듯이 여론과 상식과 다수결은 폭력과 희생자를 낳는다. 응징의 쾌감을 경고하는 아찔한 사고 실험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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