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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을 가속하라” 좌파 가속주의 선언

Summary

‘#가속하라: 가속주의 정치 선언’으로 가속주의 운동을 일으킨 알렉스 윌리엄스(오른쪽)와 닉 서르닉. 위키미디어 코먼스 #가속하라 가속주의자 독본 로빈 매케이·아르멘 아바네시안 엮...

‘#가속하라: 가속주의 정치 선언’으로 가속주의 운동을 일으킨 알렉스 윌리엄스(오른쪽)와 닉 서르닉. 위키미디어 코먼스
#가속하라

가속주의자 독본

로빈 매케이·아르멘 아바네시안 엮음, 김효진 옮김 l 갈무리 l 3만원

오늘날 반자본주의 좌파 담론의 상당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주에 제동을 거는 탈성장론에 집중하고 있다. 영국의 좌파 이론가 로빈 매케이와 오스트리아 출신 좌파 이론가 아르멘 아바네시안이 엮은 ‘#가속하라’는 좌파 일각의 이런 ‘감속주의’에 맞서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을 가속하라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생산력 발전의 가속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전망을 준다는 것이다.

‘가속주의자 독본’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는 카를 마르크스의 글 ‘기계에 관한 단상’에서부터 오늘날 좌파의 최전선에서 발언하는 이론가들의 글까지 ‘가속주의’를 옹호하는 글 28편이 실려 있다. 특히 2013년 영국의 정치이론가 알렉스 윌리엄스와 캐나다의 정치이론가 닉 서르닉이 발표한 ‘#가속하라: 가속주의 정치 선언’은 이 책의 출간을 자극한 글이자 책의 핵심을 이루는 글이다. 이 선언은 발표되자마자 여러 나라 말로 번역돼 온라인을 타고 퍼져나가 새로운 좌파 운동을 일으켰다. 이 선언문이 일으킨 파장에 응답해 2014년에 펴낸 것이 이 책이다.

윌리엄스와 서르닉의 선언문은 왜 가속주의가 필요한지를 설득하는 짧고도 단단한 24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사람은 21세기에 들어와 기후위기, 자원고갈, 대량실업 같은 재난들이 가속화하는 데 반해 “오늘날의 정치는 우리 사회를 전환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관념과 조직 방법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능력에 갇혀 있다”고 진단하다. 이런 진단 위에서 선언문은 자본주의의 생산력 발전을 가속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생산력 발전의 가속화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도 추구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가속화 요구와 좌파의 가속화 요구는 어떻게 다른가.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주장을 빌려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속력은 자신이 한 손으로 탈영토화한 것을 다른 손으로 재영토화한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적 재영토화가 아닌 탈영토화하는 가속화, 진보적 형태의 가속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두 사람은 마르크스의 ‘모범적인 가속주의 사상’을 불러온다. “현대의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행동과는 대조적으로 (…) 마르크스는 모더니티에 저항한 사상가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가 착취와 부패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가장 선진적인 경제체제임을 이해한 사람이었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보면 “모더니티 진전은 반전돼야 했던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가치가 형성한 제약을 넘어 가속돼야 했다.” 두 사람은 레닌이 러시아혁명 직후에 쓴 ‘좌익소아병’(1918)의 주장도 인용한다. “사회주의는 현대 과학의 최신 발견 사례들에 바탕을 둔 대규모의 자본주의적 공업이 없다면 상상도 할 수 없다.”

이어 두 사람은 선언한다. “가속주의자들은 잠재적 생산력이 발휘되기를 바란다. 이런 프로젝트에서 신자유주의의 물질적 플랫폼은 파괴될 필요가 없다. 그 플랫폼은 공동의 목적을 지향하도록 용도가 변경돼야 한다. 현행의 하부구조는 분쇄돼야 할 자본주의 무대가 아니라 포스트자본주의를 향해 도약할 발판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옹호하는 것이 ‘기술유토피아주의’가 아님도 분명히 밝힌다. “기술이 우리를 구원하기에 충분하리라고 절대 믿지 말라. 기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정치적 행위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충분하지 않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사회정치체제를 변혁하는 운동이 함께하는 기술발전이라야 좌파적 전망을 열어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기술 발전과 생산력 진보를 거부하는 좌파의 신념이 “좋게 말해서 소박하고 나쁘게 말해서 무지하다”고 비판한다. 좌파라면 마땅히 자본주의가 불러온 모든 기술적·과학적 진보를 이용하고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 이 선언문의 일관된 메시지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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