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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과 불황 닥친 미술판…결실 잇따른 문화재동네

Summary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에 따라 금박을 입힌 구리글자를 붙여 복원한 광화문 새 현판. 욕망대로 각자도생했다. 올해 한국 미술판은 이런 특징을 드러내며 퇴행의 양상을 드러냈다. 공공...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에 따라 금박을 입힌 구리글자를 붙여 복원한 광화문 새 현판.
욕망대로 각자도생했다.

올해 한국 미술판은 이런 특징을 드러내며 퇴행의 양상을 드러냈다. 공공미술관의 관장 선임이나 운영, 정책 과정 등 미술제도 측면에서 정의와 공정, 배려 등을 찾기 어려웠다. 상부의 노골적인 압박으로 임기가 보장된 관장이 중도사퇴하고 관장을 뽑는 과정에서 비전문가 등용이나 특정인사 밀어주기 논란이 속속 불거졌고, 공인 의식을 팽개친 일부 공공미술기관장들의 출세지향적 행태도 드러났다. 여러 퇴행적 징후에도 공론이나 담론은 거의 작동하지 않아 미술판의 자정 기능이 사라졌다는 한탄이 이어졌다.

미술시장은 심각한 거래 침체 속에 불경기의 늪 속으로 빠져들었다. 퇴행과 암울한 사정을 위안할 거리가 없지는 않았다. 이건희 컬렉션의 여전한 인기와 흥행몰이, 블록버스터 전시의 흥행에 힘입어 엠제트(MZ) 세대를 위시한 대중 관객이 급증했다. 한국에 아직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역동적인 아트신이 있다는 사실이 프리즈 키아프의 대형 페어를 찾은 외국 미술인과 관객들을 통해 널리 세계에 알려졌다.

현대미술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케이팝에 이어 케이아트로 명명된 한국 미술 기획전들이 현지의 명문 미술관에서 잇따라 열려 높아진 한국의 문화력을 실감하게 했다. 문화재계는 서울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월정사 경내 국립 오대산사고본 박물관 건립 등의 가시적인 복원 성과들이 잇따라 나왔으나 연말 경복궁 담장에 낙서훼손을 하는 사고가 일어나 문화유산 보존관리에 다시금 경종을 울렸다.

지난 5월5일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개막식에서 작업모를 쓴 채 팬티 차림으로 퍼포먼스판을 벌인 뒤 카메라 앞에 선 성능경. 올해는 그의 활약이 단연 돋보이는 해였다.
제도의 퇴행과 위기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공립미술관장 인선을 놓고 파행과 논란이 잇따랐다. 내후년까지 연임이 예정됐던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지난 4월 중도 사퇴했다. 그는 자신의 재임 중 활동에 대한 여러 차례의 감사가 거듭되고, 감사결과가 기관에 통보되기도 전에 먼저 언론에 공표되고 자신과 수하 직원들이 계속 불려 나가 검찰 조사받듯 추궁당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다며 명백한 의도를 가진 정권의 사퇴 압박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뒤이어 공모를 통해 지난 9월 김성희 후임 관장을 임명하는 과정도 뒷말이 적지 않았다. 전대 관장 공모과정에서는 사실상 필수적으로 받았던 역량평가를 임명하기 한달 전 돌연 정부가 시행령을 고쳐 아예 삭제하고 이런 사실을 다른 후보자들에게 알리지도 않은데다 상업갤러리 큐레이터 출신으로 미술관장 경력이 전혀 없는 인사를 전격 임명했다는 점에서 여러 흠결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연말 선임돼 올해 3월 중순까지 대구미술관장이던 기획자 최은주씨는 불과 석달 만에 자리를 내던지고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말을 갈아타면서 공인의 윤리의식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 국공립 미술관장에 전문가로 포진한 큐레이터들의 공적인 윤리의식이 도마에 올랐고, 이런 와중에 대전과 수원 등 지자체 미술관장을 아예 행정직 공무원으로 대체하고 제주와 경남에서는 지역 작가를 관장으로 뽑는 복고적 퇴행적 양상이 도드라졌다.

올해 봄 열린 광주비엔날레에서 일어난 박서보예술상 파동도 빼놓을 수 없다. 단색조 회화를 주도한 원로작가 박서보를 기리는 예술상을 창설해 시상했다가 광주 정신과 관계가 없고 당시 독재정권에 부역한 인사의 기념 시상을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반발이 일어나 불과 한달 만에 상이 폐지된 해프닝이 일어났다. 하지만 사달을 일으킨 비엔날레 재단은 관계자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행보를 보여 빈축을 샀다. 박서보 작가는 내놓은 재원을 회수하고 광주비엔날레와 절연한 뒤 지난 10월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미술시장의 불황에도 지난 9월초 열린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에는 많은 관객들이 몰렸다. 코엑스 3층의 프리즈 전시장에 나온 제프 쿤스의 게이징 볼 조형물과 그 앞 관객들의 모습이다.
대중관객은 크게 늘었다 국외 거장과 국내 근현대 대가들의 특별전시가 많은 관객들을 동원했고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의 공공미술관 순회전도 성황리에 진행돼 미술에 대한 대중적 저변이 크게 확대됐음을 실감하게 했다.

리움에서 열린 이탈리아의 풍자적 개념미술 대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는 20만 넘는 관객을 모으며 개관 이래 최대 관객수를 기록했고 함께 열린 조선백자 전도 관객들의 반향이 컸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20세기 미국의 리얼리즘 거장 에드워드 호퍼 전도 주최쪽 추산 30만 이상의 관객이 찾았다.

호암미술관의 김환기 회고전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장욱진 회고전에는 15만명과 17만의 관객이 몰렸다. 특히 관객 중 젊은 20~30대 엠제트 세대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감상 수요는 물론 장래 미술시장 소비자의 새로운 세대교체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징후들이 뚜렷했다. 하지만 ‘퀄리티’로 흔히 이야기하는 전시의 질적인 내용성 측면에서는 리움이 수년간 준비해 절찬을 받은 김환기의 역대 최대 회고전과 아트선재의 서용선 특별전 ‘내 이름은 빨강’ 등 일부 전시 외에는 수작을 찾기 어려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들이 특히 심각했다. 10월 열린 실험미술대가 김구림 회고전의 경우 작가와 전시 출품작 협의가 개막 때까지 진척되지 않고 불화가 불거져 결국 작가가 전시 자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최악의 상황을 낳았고 봄에 열린 실험미술 기획전도 미술사적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과거 미술관에서 했던 기획전 내용을 거의 되풀이하는 재탕 수준의 전시를 내보이는데 그쳐 실망감을 낳았다.

리움의 개념미술 대가 김범 전의 경우도 그가 1990년대 이후 한국미술판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게 된 역사적 배경 등이 거의 언급되지 않은 채 명작 진열전을 만드는데 급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80줄 원로 신예작가와 40대 재일 미술사가의 분투 올해 미술판에서 가장 도드라진 활약상을 보인 인물로는 80줄 신예작가로 꼽힌 실험미술가 성능경(79)씨를 단연 손꼽는다. 1970년대 초반 이래 사진 재활용 등의 비물질적인 개념미술 작업과 신문 읽고 오리기 등의 퍼포먼스 아트를 지속해온 그는 백아트, 자하미술관, 갤러리현대의 개인전에 이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실험미술전 주력 작가로 참여했고, 뉴욕 리만머핀갤러리 개인전도 열면서 작가 인생 50여년만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활짝 꽃피우는 인생 역전의 무대를 펼쳤다. 아트선재의 대형 기획전 ‘내 이름은 빨강’과 전남 신안의 옛 염전창고, 서울 문화비축기지의 탱크 전시장에서 암태도 항쟁 벽화 연작 전을 뚝심있게 이어 나가면서 더욱 숙성된 회화 세계를 선보인 서용선 작가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미술사학계에선 ‘재일조선인미술사 1945-1992’(연립서가)를 펴낸 재일동포 미술사가 백름(44)씨의 성과가 단연 빛을 냈다. 남한에서는 친북한 세력으로 인식되면서 기존 한국 미술사 서술에서 사실상 배제되었던 일본 안 총련계 혹은 좌파 성향 조선인 미술가들이 현지 미술계에 남긴 다기한 발자취들이 백씨의 책을 통해 처음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그들이 식민지시대 말기부터 고도성장기를 거쳐 90년대 초반까지 재일민단 작가·일본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지속해나간 창작활동의 40년 역사를 살펴보고 정리한 이 저술 덕분에 올해 한국 미술계는 더욱 풍성한 역사적 자양분을 흡수할 수 있었다. 20세기초 세계미술사를 격동시킨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의 간행물 ‘베시’를 국내 처음 번역하고 해제를 붙인 김민수·서정일 연구자의 책 `사물의 혁명’(그린비)도 숨은 노작으로 평가할 만하다.

미술시장의 불황 침체 접어들어 팔 만한 스타작가와 작품 트렌드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시장 하강기조가 본격화한 가운데 한국 화랑계 관계자들은 관계자들의 한탄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 미술시장을 대변했던 단색조 회화와 실험미술에 이어 밀어붙일 작품 흐름과 대안이 감감한 것이 문제다. 유한층 컬렉터는 외국계 화랑의 다채로운 국외작가 작품에 눈길을 돌리고 있는 흐름 속에 위기론도 확산됐다.

실물경기의 세계적인 하강 흐름 속에 국내 미술 시장도 휩쓸렸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낙찰 총액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각각 약 64%, 약 39% 감소했다. 경매시장도 3분기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낙찰총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16%, 약 14% 줄어드는 등 침체 기조가 역력했다.

감상하는 관객들이 들끓긴 했지만 프리즈와 키아프 같은 국내외 대표 아트페어들도 올해는 시장 침체 분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프리즈는 메이저 화랑들이 명품과 유명스타작가 작품들을 여전히 다수 판매하면서 매기를 이끌었지만, 전체 실적은 공개하지 않았고 지난해보다 매출액이 현격히 줄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미술사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재일동포 미술사가 백름씨의 노작인 ‘재일조선인미술사 1942 - 1992’.
미국의 한국미술 전시 바람

예년에 볼 수 없었던 대규모 한국미술 전시가 현대미술의 본고장인 미국 도처에서 잇따라 열렸다. 한류 영향으로 서구에서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징표로 해석된다. 미국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1960~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소개하는 ‘한국 실험미술 1960-1970년대’ 전시가 9월부터 시작됐다.

전시와 함께 이건용과 성능경, 김구림 등 실험미술 작가들의 퍼포먼스가 진행돼 눈길을 모았다. 뉴욕을 대표하는 또 다른 미술관인 메트로폴리탄(메트) 미술관에서도 올해 한국실 개관 25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계보’가 11월 시작돼 메트 소장품과 리움미술관 등에서 대여한 12세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미술품 30점을 선보였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한국계 미국 작가와 한국 작가 28명을 소개하는 대규모 현대미술 전시인 ‘1989년 이후 한국 미술’ 전이 10월 개막했고, 샌디에이고 미술관에서는 한국미술을 주제로 한 첫 기획전인 ‘생의 찬미’전이 마련됐다.

고무적인 복원 성과와 뒤끝사고 문화재동네는 지난 10월 경복궁 월대와 광화문 현판 교체 복원이 마무리됐고 11월엔 오대산사고 박물관이 월정사 들머리에 새로 들어서는 등 기념비적인 복원사업 마무리됐다. 그러나 연말 터진 경복궁 담장 낙서 훼손사건은 문화재 당국을 일순 긴장시켰고 미국 뉴욕의 전위예술그룹 미스치프의 작업행위를 따라서 했다는 20대 용의자의 치기 어린 발언은 국민들을 허탈하게 했다.

지난 9~10월 일본에서 고려불화와 알려지지 않은 조선초기의 회화유산들을 대거 공개한 규슈박물관과 후쿠오카미술관의 기획 전시가 큰 관심을 모았지만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적 시각이 노골적으로 표출된 용어 사용과 도록의 해설 내용 등이 공개되면서 우려와 비판을 받았다.

전문서로는 고광의 연구자의 역저 ‘고구려문자문화’(동북아재단)와 중국 절강대학 출판사에서 펴낸 한국미술사 소개 자료집 등이 나온 것도 학계의 성과로 꼽을 수 있을 듯하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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