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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말의 빚 독촉

Summary

책거리 게티이미지뱅크 매주 100권은 족히 되는 책 무더기 가운데 10권 가량만 추려내야 하는 작업은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회의 중엔 종종 이런 말도 나옵니다. “예전 같았으면 ...

책거리

게티이미지뱅크
매주 100권은 족히 되는 책 무더기 가운데 10권 가량만 추려내야 하는 작업은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회의 중엔 종종 이런 말도 나옵니다. “예전 같았으면 다 머리기사로 크게 썼을 만한 책들인데, 몇 권만 고르자니 어렵네요.” 독서 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따라 출판시장의 위기가 유례 없이 심각하다는 아우성 속에서도, 지식과 경험의 누적은 과연 불가역적인 모양인지 책은 나날이 진보하고 있습니다. 대강의 주제뿐 아니라 새로운 세부 주제들까지 발굴하여 탐사하는 연구자들, 섬세하고 유려한 필치로 자신의 경험과 사회를 잇는 필자들, 탄탄한 기획력으로 끊임없이 개성 있는 책들을 만들어내는 출판사들…. 회의 때 탁자 위에 올라온 책들만 보면, ‘이렇게 좋은 책들이 나오는데 왜 출판은 위기라고 하는가’ 고개를 갸웃하게 될 정도입니다.

책과 독서에 대해 제 나름대로 만들어본 이론 가운데 ‘부채 이론’이란 게 있습니다. 책은 볼 때마다 ‘빚을 갚으라’ 독촉하는 빚쟁이처럼, 표지와 책등 등 자신의 온몸을 동원해 ‘나를 읽어야 한다’는 부채감을 심어주고 압박하는 존재입니다.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들을 다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실제로 빚을 갚느냐 마느냐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책을 읽어야 할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놓지 않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이론은 ‘책을 왜 읽어야 하나’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피하고 싶어서 만든 것이랍니다.

해마다 그래 왔듯, 한 해의 끝을 맞아 또다시 한겨레가 꼽은 ‘올해의 책’ 20권의 목록을 공유합니다. 최고의 책도, 필독서도, 많이 팔린 책도 아닌, 그저 한겨레의 눈으로 다시 호명하고 싶은 책들입니다. 1년 동안 나온 수없이 많은 좋은 책들 가운데 20권만 꼽아야 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잊고 있던 부채를 실감하는 데에 모쪼록 이 목록이 도움이 되길 빕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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