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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선생님 시대에 ‘선생님’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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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과거 친정에 갔을 때 일이다. 약국 갈 일이 있었는데 친정엄마가 한 곳을 콕 짚으며 꼭 거기로 가라고 거듭 권했다. 약사가 아주 친절하고 좋다고 했다. “내가 선생님...

게티이미지뱅크

과거 친정에 갔을 때 일이다. 약국 갈 일이 있었는데 친정엄마가 한 곳을 콕 짚으며 꼭 거기로 가라고 거듭 권했다. 약사가 아주 친절하고 좋다고 했다. “내가 선생님인 걸 어떻게 알았는지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고 했다.

해당 약국에서 처방전을 내고 기다렸다. 얼마 후 내 이름이 불렸다. “류승연 선생님~”. 설명이 이어졌다. “선생님, 이 약은 어떤 약이고요~”. 집에 와서 그 약사 정말로 친절했다고 얘기를 하는데 순간 엄마 표정이 이상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선생님이래?”

알고 보니 약사는 모든 고객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정년퇴직한 교사였던 엄마는 선생님으로 불리는 게 좋았다. 그런데 전제가 있었다. 일반 호칭으로 사용되는 선생님이 아니라 교원을 지칭하는 선생님이라는 말에 자부심을 느꼈다.

“왜 아무한테나 선생님이래”라는 엄마의 말에는 교원으로서의 자부심과 약사에 대한 원망이 두루 섞여 있었다. 살면서 ‘선생님’이란 호칭에 아무런 의문을 품어보지 않는 난, 그 상황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몇 년 뒤 소설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비슷한 상황을 발견했다. 한 교사가 교원이 아닌 모든 학교 구성원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불편함을 느낀다고 했다. 아마 친정엄마가 느꼈을 불편함과 같은 종류의 마음이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내가 어떨 때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상대에게 ‘당신을 존경(존중)합니다’는 의미를 담고 싶을 때 ‘선생님’ 또는 ‘쌤’이란 호칭을 사용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특수학교에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에게 ‘선생님’이라 부르고, 아들의 활동지원사에게 ‘선생님’이라 하고, 독서모임 등 여러 모임의 일원에게도 이름 뒤에 ‘~쌤’을 붙여 부르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살짝 놀랐다. 호칭 자체에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는 직업군이 사실상 선생님밖에 없다는 것을 번뜩 깨달은 것이다.

작가님, 피디님, 사장님, 감독님, 교수님 등등 ‘님’자가 붙은 수많은 직업이 있고 ‘님’자가 붙지 않는 더 많은 직업군이 있지만 어떤 직업도 직업명 자체에 존경이나 존중의 의미를 함께 포함하진 않는다. 판사의 경우 “존경하는 재판관님”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그건 승소를 위한 작업적 멘트일 뿐이다.

그런데 선생님만은 다르다. 선생님만은 이미 호칭 자체에 존경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어린 시절 가르침이 아직도 무의식 속 ‘명령어’처럼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선생님’이란 단어가 점점 더 확대 사용되면서 너도나도 선생님으로 불리는 세상이 되고 있다. 선생님이라는 말을 다시 교원에게 돌려주어야 할까. 아니면 이런 변화의 추세를 받아들여야 할까. 교사 직업군 자체가 들썩였던 2023년을 마무리하며 선생님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꼽씹어 본다.

류승연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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