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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피해자에 “국가가 배상하라” 첫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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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되어서 수용 기간 고통을 겪고, 아주 어려운 시간 보내신 원고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452호. 판사가 선고에 앞서 위로를 전...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되어서 수용 기간 고통을 겪고, 아주 어려운 시간 보내신 원고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452호. 판사가 선고에 앞서 위로를 전하자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얼어붙었던 표정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형제복지원 구금이 정부의 잘못이라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받는데 5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법원이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처음으로 내놨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늦었지만 배상 판결을 받게 돼 다행”이라면서도 “여전히 진행 중인 다른 재판에서도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하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재판장 한정석)는 이날 오후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대한민국)는 원고에게 수용 기간 1년당 8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판결에 따르면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손해배상금은 1인당 8천만원에서 최대 11억2천만원까지다. 원고들이 청구한 금액 203억원 가운데 145억8천만원(72%)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1975년 내무부훈령(부랑인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으로 원고들을 단속하고 강제 수용했는데 이 훈령은 법률유보·명확성·과잉금지·적법절차·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한 위헌·위법적 훈령”이라며 “이에 따라 강제 수용된 점도 위법한 조치이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정부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 사건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하고, 그 법리에 따르면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위자료 액수 산정 기준과 관련해선 “피해자들이 감금 수용·구타·강제 노역 등으로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원고들 상당수가 미성년자 시기에 감금돼 학습권이 침해당한 점, 유사한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억제·예방할 필요성이 큰 점, 불법 행위로부터 35년이나 지났지만 배상이 지연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7월20일부터 시설이 폐쇄된 1992년 8월20일까지 한국 정부가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해 폭행과 강제 노역 등 인권침해를 벌인 사건이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해 8월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했다. 2018년 문무일 총장이 눈물의 사과를 한 뒤 일부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했으나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날 판결이 나오기까지 5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피해자들은 승소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정부의 항소 가능성과 아직 진행중인 다른 피해자들의 재판 결과를 걱정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강호야(58)씨는 “조금이라도 일찍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정부가 항소를 포기하길 바란다”며 “다른 진행중인 사건에서도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해서 피해자들이 순조로운 판결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과 부산지법 등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 200여명이 520억원을 청구하는 국가 손해배상 사건 16건이 진행중이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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