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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청법 개정 3년…성매매 아동·청소년 여전히 범법자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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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엔 성매매 피해를 입은 여성 청소년 대부분이 17~18살 가출 청소년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대중화한 2010년대 중반부터 ‘학교 안 청소년’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10년 전엔 성매매 피해를 입은 여성 청소년 대부분이 17~18살 가출 청소년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대중화한 2010년대 중반부터 ‘학교 안 청소년’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중학생 비중이 늘었다. 2020년대 이후엔 피해자 절반 이상이 초등학생이다. 성착취 피해가 아동·청소년들에게 넓게 퍼지고 가해 방식도 진화하고 있는데, 정부와 사회는 모르쇠하고 있다.”

성착취 피해 여성 아동·청소년 상담·의료·법률 등을 통합 지원하는 ‘십대여성인권센터’(센터)가 올해로 설립 10년을 맞았다. 조진경 센터 대표는 지난 4일 한겨레와 만나 센터 설립 이후 10년 동안 ‘악화한’ 현실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 대표는 “성매매 피해 여성 상당수가 10대 때부터 피해를 겪기 시작한다는 현실을 깨닫고” 센터 문을 열었다. 지난 10년 동안 센터를 거쳐 간 아동·청소년만도 3만3691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 9.2명꼴로 상담한 것이다. 채팅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성착취 관련 게시글을 모니터링해 경찰·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신고한 건수도 1만1187건이다. 

2020년까지 성매매 아동지원 유일
10년간 하루 평균 9.2명 상담하고
성착취 게시글 1만여건 신고했지만
피해자 어려지고 가해방식은 진화

14일 ‘성매매는 성착취다’ 법률 포럼
“위장·함정수사에 성매매 포함시켜야”

조 대표는 2001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일하며 성매매 여성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성인 여성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의 성매매 피해도 심각하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그해 봄 ‘기지촌 이주 여성 인권실태’ 조사를 위해 야근을 하던 중 필리핀 노방 수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필리핀 청소년이 이태원 클럽에서 일하다가 성폭행을 당했다”며 지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15살이었던 피해자는 이태원 클럽에서 댄서로 일하기 위해서 25살로 위조된 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입국 한 달 만에 클럽 매니저에게 성폭행을 당한 상황이었다. 조 대표가 사건을 알게 됐을 땐, 이미 ‘화간’(합의한 성관계)으로 수사가 마무리되는 단계였다. 피해자가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면서, 사건은 가해자와의 합의로 종결됐다. 조 대표는 “당시 기지촌 실태조사를 도우려는 외국인이 여성부 장관 초청장을 받고도 입국하는 데 6개월이 걸렸는데, 피해 청소년은 (댄서) 오디션에 뽑힌 지 2주 만에 위조된 여권으로 입국했다”며 “한국과 필리핀 정부가 성매매 산업을 묵인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그동안 ‘성매매는 성착취’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2020년 성매매한 아동을 ‘대상 아동’이 아닌 ‘피해 아동’으로 보고 처벌하지 않도록 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는 데 앞장선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그는 당시 법 개정을 위해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면담하고 나오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발목인대가 파열되기도 했다. 조 대표는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한 지 8년 만에 개정 가능성이 커졌을 때라, 멈출 수가 없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느라 고생 좀 했다”며 웃었다. 센터는 아청법이 개정돼 전국에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 지원센터’ 17개가 생기기 전까지,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을 지원하는 국내 유일한 단체였다.

23년째 성 착취 지원 현장을 지켜오면서 두려운 순간도 있었다. 2004년 성매매 방지법이 시행됐을 땐, 성매매 업주 30여명이 조 대표가 소장으로 있던 ‘다시함께 센터’에 쳐들어오기도 했다. 두려운 건 물리적 폭력이 아닌 “함께 일하는 동료를 잃는 것”이었다. “업주의 위협이나 각자의 사정 등으로 함께 걷는 동지가 줄어든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달라지지 않은 현실도 그를 분노케 한다. 아청법이 개정된 지 3년이나 됐지만, 수사·재판 기관이 성매매한 아동·청소년을 여전히 피해자가 아닌 범법자 취급하는 게 대표적이다. 조 대표는 “경찰이 성매매했다고, 성매매 광고를 했다고 여전히 피해 아동·청소년을 입건하고 있다. 아청법이 개정되면서 성매매를 했어도 아동·청소년은 피해자라고 법이 인정한 건데, 이를 처벌하는 게 말이 되냐”고 비판했다. 센터는 최근 한 청소년이 성매매 광고혐의로 1심에서 보호처분을 받자 항고했다. 그는 “법이 바뀌었는데도 수사·재판 기관이 이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뿐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2021년 12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 녹화 영상을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결정을 했다. 또 여성가족부 지원 사업이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중복사업이란 지적을 받아, 센터가 10년 동안 진행해온 ‘사이버 또래 상담사업’도 접어야 했다. 위기에 처한 아동·청소년들이 기댈 곳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국회 등에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의 작품 전시회를 개최하며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란 제목을 단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서 ‘당신’은 “방관하고, 묵인하고, 침묵하는 우리 모두”다. 2018년 열린 첫번째 전시회 ‘우리가 여기 있다’(Here I am)가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의 존재를 드러내는 전시였다면, 두번째 전시는 여전히 피해 아동을 비난하고, 메타버스·게임·채팅앱으로 수단을 확장한 가해자를 방관하는 우리의 이야기다.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희망을 본다. “전엔 ‘성매매 여성은 피해자’라고 말하면, 100명 중 98명~99명은 ‘자발적으로 성매매한 건데 왜 피해자’냐고 따졌다. 지금은 한 60명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10살 생일을 맞은 센터의 발걸음은 여전히 분주하다. 여전히 성매매를 피해로 보지 않는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 14일엔 ‘성매매는 성착취다’라는 제목의 법률 포럼을 연다. 성착취 목적 대화와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에 한해서만 가능한 위장·함정 수사 특례에 성매매를 포함하는 활동도 할 예정이다.

“사실 나는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 활동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나. 그래도 피해자들이 존재하기에 해야 했고, 해야 한다.”(웃음)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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