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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장악 논란 속 저물어가는 방송의 ‘대항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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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신임 한국방송(KBS) 사장(왼쪽 셋째)과 임원진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아트홀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왜냐면] 홍...

박민 신임 한국방송(KBS) 사장(왼쪽 셋째)과 임원진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아트홀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왜냐면]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방송계는 어수선하다. 한국방송(KBS)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한국방송만의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방송은 새로운 사장이 임명된 뒤 2주 정도 지나면서, 하루에도 10개 넘는 북한 관련 뉴스를 쏟아내며 북한전문 방송으로서 어색하지 않은 자기 색깔을 찾아가고 있는 면도 있다.

한국방송의 야단법석에 시선을 뺏기고 있던 사이, 그 못지않게 어수선한 일들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다. 제이티비시(JTBC)는 지난 10월부터 구조조정에 나섰는데, 100명 넘는 수준의 직원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부서별로 구조조정 인원을 할당한 모양인데, 바로 옆에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를 퇴사시켜야 하는 상황이니 어떤 갈등과 난감함이 있을지 어렴풋이 짐작만 된다.

26일 에스비에스(SBS)에서는 박정훈 사장이 물러나고 방문신 신임 사장이 선임되었다는 발표가 났다. 박정훈 사장은 탁월한 경영실적으로 방송계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는 인물인데, 재임 7년 만에 경영전문가가 퇴진하고 보도국장 출신의 새로운 사장이 선임된 것이다. 현재 에스비에스에 콘텐츠 제작과 경영전문가로서의 능력보다 당장 더 시급하게 필요한 무엇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장된 평가일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제이티비시 구조조정과 에스비에스 사장 교체가 우리 방송의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케이(K)-컬처를 대표하던 우리 방송산업의 ‘대항해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10년간 우리 방송은 수출액만 약 3배가 넘게 커졌을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해 왔다. 중국과 동남아뿐이던 수출시장이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중심까지 확장되었고 국내 방송사들이 미국의 대형 스튜디오들까지 인수하는 등 가히 우리 방송의 대항해 시대라고 부를만한 사건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국내 방송산업에 뚜렷한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티브이엔(tvN) 등 채널을 운영하는 씨제이이엔엠(CJ ENM)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불안한 분위기가 감지되더니, 연이은 제이티비시의 구조조정은 국면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확연한 신호로 느껴진다. 사실 지난 몇년 동안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의 성장에 힘입은 국내 콘텐츠의 약진은 화려해 보였지만, 그 이면에서는 콘텐츠 제작비용의 급격한 상승 속에서 플랫폼과 콘텐츠의 균형이 흔들리는 등 한국 방송산업 생태계 전반에 불안 요인이 늘어가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방송산업에서 더욱 현명한 대응이 요구될 때, 정치의 바람은 우리 방송을 무기력과 침묵의 바다로 이끌며 화려했던 대항해 시대의 마감을 앞당기고 있는 듯하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 미디어산업 경쟁력을 제고하는 공론장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일년 반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영방송의 사람 바꾸기와 실체도 모를 가짜뉴스 잡기에만 열중했을 뿐 정작 미디어 산업에 대한 변변한 논의 한번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국정과제였던 ‘미디어콘텐츠융합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그리고 방통위로 나뉜 부처 간 견제와 갈등 속에서 정작 알맹이 없는 논의로 변죽만 올리다 이제는 흐지부지되어 간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이렇게 국정의 모든 영역에서 일관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면 대단한 능력이다.

방송은 창의성과 혁신을 핵심으로 하는 창의산업(Creative Industries)이다. 차라리 멈춰 버린 정부 행정전산망처럼 어쩔 수 없이 눈에 드러나는 문제라면 어떻게라도 대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방송산업은 정치적 압력과 정책적 무능에 의해 보이지 않게 창의성과 혁신을 잃어가고 있기에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과연 누가 책임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쉽게 가늠되지도 않는다. 항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방송판 정치놀음에 도낏자루 썩힐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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