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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같은 간병인’ 찾으면서 머릿속엔 ‘가성비’가…

Summary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병원의 아침은 오전 6시 반께부터 시작됐다. 누군가 부스럭대는 소리에 잠이 깰락 말락 하면, 소리의 주인공은 여지없이 엄마 옆 침대를 사용하는 50대 초반 영...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병원의 아침은 오전 6시 반께부터 시작됐다. 누군가 부스럭대는 소리에 잠이 깰락 말락 하면, 소리의 주인공은 여지없이 엄마 옆 침대를 사용하는 50대 초반 영미(가명)씨였다. 영미씨는 함께 병실을 사용하는 환자 네명 중 가장 에너지가 넘쳤다. 아니, 어쩌면 폐쇄병동의 ‘활력왕’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마저 든다. 영미씨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경우는 거의 본 적 없다. 그는 대체로 병실과 복도를 왔다 갔다 하거나 ‘환자 순회’를 하며 수다를 떨고, 스트레칭을 했다. 림프종 말기인 영미씨는 지역에서 치료를 받다 더 이상 도리가 없다는 얘기에 서울행을 택했다.

유일한 혈육 간병…으쓱해진 엄마

영미씨는 함께 있는 보호자를 ‘사촌 언니’라고 했다. 부모, 배우자, 자식, 형제도 아닌 사촌 언니라니.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연 없는 가족 없는 법,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영미씨의 사촌 언니는 영미씨를 살뜰히 살폈다. 그가 가는 곳엔 언제든 함께였다. 보호자용 식비가 아깝다며 편의점에서 햇반을 사와 자신이 집에서 만들어 온 반찬과 영미씨의 환자식으로 나온 반찬을 영미씨와 함께 나눠 먹었다. 영미씨의 사촌 언니가 나눠준 된장깻잎무침을 맛본 엄마가, 내게 레시피를 알아 오라고 할 정도였다.

잔소리도, 독려도 사촌 언니 몫이었다. “영미야, 오늘 얼굴이 아주 좋다. 하나도 안 아파 보인다”, “그래도 밥 먹어야지. 좀 더 먹어” 같은. 영미씨도 사촌 언니를 굉장히 의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언니, 우리 ○○이가 오늘 시험 봤는데, 잘 본 것 같대”, “우리 딸 이쁘지?” 하며 신이 나 자랑했다.

영미씨가 아들과 잠깐 통화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사촌 언니는 “사실 나는 간병인”이라고 털어놨다. 지역 병원에서부터 영미씨를 돌보다 퇴원 뒤에는 서로 집을 오가며 언니-동생으로 지냈고, 영미씨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로 병원을 옮겼을 때 언니는 주저 없이 영미씨를 따라나섰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300㎞ 이상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면서까지 영미씨와 함께한 이유에 대해 언니는 “정이 들었고, 짠해서”라고 했다. 왜 사촌 언니라고 했냐는 질문엔 “가족이 보호자로 있는 환자와 간병인이 보호자로 있는 환자를 의료진이 달리 대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설마 의료진이 보호자 여부에 따라 환자를 다르게 대할까 싶었지만, 의료진의 부족함 없는 진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의 마음을 병실에 있는 누구도 모를 리 없었다.

엄마가 지내는 병실의 환자 네명 중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있는 이는 엄마와 영미씨, 두명이었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기에 환자도 보호자도 쉬이 친해졌다. 나와 영미씨의 언니는 때때로 폐쇄병동 밖 출입이 금지된 환자들의 요청을 받아, 병원 내 편의점에서 음료수·햇반·라면 같은 물품을 ‘구매 대행’하기도 했다. 물론, 주문이 많은 어떤 날은 ‘내가 모두의 간병인도 아닌데, 왜 자꾸 시키나’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오기도 했다.

혼자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 속이 상했던 건지, 보호자가 없는 환자들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보이려 했다. 아들만 둘인 ㄱ씨는 아들의 안부 전화에 “어유, 뭘 또 전화해”라며 혼잣말을 크게 했다. ㄴ씨는 “아들이 반찬을 만들어 왔어요. 아들이 반찬을 잘 만들어”라고 하기도 했다. 병실엔 혼자 있지만 실은 혼자가 아니라는 자기 암시일 수도, 아니면 외로움을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발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유일하게 혈육으로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내게로 시선이 향했다. “역시 딸이 있어야 해.” 아들만 둘인 ㄱ씨가 말하자 엄마는 “우리 딸들이 착해요”라며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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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없는 나, 늙으면 누가 돌봐주지?

엄마의 조혈모세포는 쉽게 채집되지 않았다. 보통 다발골수종은 재발이 잦기에 추가로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을 것에 대비해 넉넉하게 채집한다. 채집 기간이 길어지면서 엄마가 무균실에 들어가는 시점도 미뤄졌다. 그 말은, 내가 병동 밖으로 나오는 것도 연기된다는 뜻이었다.

그제를 어제로, 어제를 오늘로 ‘복사+붙여넣기’ 한 것 같은 병실 생활에서, 내 낙은 걸그룹 블랙핑크의 노래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이었다. 강렬한 영상과 사운드 뒤로 전사처럼 단단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하루에도 수십 차례 돌려 봤다. 그러다 어떤 날은 블랙핑크 멤버 제니에게 빠져서 한참 동안 제니에 대해서 탐구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배우 배용준을 제외하고 스타 ‘덕질’을 해본 경험이 없는 내가 나이 마흔에 아이돌에 빠지다니, 신선했다.

‘덕질’하는 아이돌이 하나둘 늘어갈 때쯤, 세포 채집량이 채워졌다. 그 뒤 내 임무는 엄마가 무균실에서 나와 준무균실에서 회복할 때, 엄마를 돌볼 간병인을 구하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환자를 맡기는 일이니, 영미씨의 ‘사촌 언니’처럼 엄마를 ‘가족같이’ 돌봐줄 간병인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내 고민을 들은 한 간호사가 무균실에서 이제 막 나온 한 간병인을 두곤 괜찮은 분이라며 뜻을 물어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그 간병인은 힘든 무균실 생활 탓에 당분간 쉬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누군가를 24시간 돌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갖기 어렵고, 최소한의 통잠도 자기 힘들다. 환자의 어두운 기운을 온몸으로 떠안으며 감정노동도 해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가족 같은 간병인’이라는 바람 앞에 ‘가성비’라는 단어를 자동으로 떠올렸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돌봄노동 값’이 환자 보호자가 되니 숨 막히는 비용처럼 다가온 것이다. 돌봄과 가성비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웠다.

우리의 경우 아픈 엄마를 돌보는 건 주로 자식이고 간병인의 도움은 잠깐인데, 자식이 없는 나는 늙으면 누가 돌봐줄까. 병원 진료에 동행해주는 대행 서비스나 간병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을 테다. 모든 돌봄을 비용으로 처리할 내 미래가 눈앞에 그려져 문득 쓸쓸해졌다.

그런 불안감 때문인지, 요즘 거의 매주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며 우스개로 조카들에게 세뇌를 시킨다. “이모 늙어도 이모랑 놀아줘야 돼”, “이모 늙으면 1년에 한번은 찾아와줘”라고. 조카들이 지금은 “나중에 이모한테 효도하겠다”며 어버이날에 내 카네이션도 만들지만 그 마음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걸 안다. 그래도 그 마음이 예뻐서 나중에 느낄 쓸쓸함은 조금 미뤄두기로 했다.

소소

갑작스레 ‘엄마 돌봄’을 하게 된 케이(K)-장녀가 고령화사회에서 청년이 겪는 부모 돌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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