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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이 되고서야 우리 부부는 헤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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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6일 경기도 양주의 자택에서 모지민·제냐(예브게니 슈테판)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모지민 무용수가 쓰다듬는 고양이의 이름은 ‘모모’다. 류우종 기자 ‘...

2023년 11월6일 경기도 양주의 자택에서 모지민·제냐(예브게니 슈테판)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모지민 무용수가 쓰다듬는 고양이의 이름은 ‘모모’다. 류우종 기자

‘이상하고 아름답고 낯선 줄리엣’.

2023년 9월20일 엘지(LG)아트센터 서울 공연장에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줄리엣이 무대에 올랐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오늘날 언어로 해석한 작품인데, 주인공 ‘줄리엣’ 역을 ‘드래그 아티스트 모어(毛魚·털 난 물고기)’로 알려진 모지민(45) 무용수가 맡았다.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이자, 2022년 대종상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모어>(I am More), 직접 쓴 에세이 <털 난 물고기 모어>를 본 관객이라면, 이 무대와 그의 고백이 겹쳐 보였을 것이다. “아빠/ 난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발레리노가 아니라/ 그런데 난 둘 다 되지 못했어요./ 나는 딸도 아니요 아들도 아니요./ 나는 없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입학했지만 뺨을 맞으며 “그 여성성 버려”란 소리를 들었다. ‘평범한 발레리나’는 결코 될 수 없었다. ‘애증 덩어리’ 같았던 이태원 클럽 무대의 ‘드래그 아티스트’를 거쳐 ‘퀴어 무용수’로 탄생한 뒤에야, 발레란 숙원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발레공연 가운데 왜 하필 ‘로미오와 줄리엣’이었을까. 그는 “모두가 아는 사랑 이야기인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와 남편의 사랑을 빗댈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동성부부인 그와 러시아인 남편 제냐(예브게니 슈테판)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2023년 11월6일 경기도 양주시 자택을 찾았다.

2023년 9월20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한 <연극연습5. 번안 연습-로미오와 줄리엣 and more>. 사진 모지웅

1998년 장한평~2023년 양주시

꽃향기가 느껴지는 집이었다. 테이블 위엔 유자차가 담긴 분홍 찻잔이, 부엌 옆방엔 가수 이상은의 테이프를 비롯한 음반과 책이 가득했다. 가을 숲이 보이는 거실에서 고양이 모모가 어슬렁거리자, 두 사람이 모모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었다. 어느 평범한 부부의 일상이었다.

“1998년, 서울 장한평의 ‘예우’라는 바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때 남편은 <서울헤럴드>란 언론사에서 일했는데, 그 언론사가 근처에 있었거든요. 에스엔에스(SNS)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에요. 일하는 지인을 보러 바에 놀러 갔는데, 그 지인과 제냐가 아는 사이였어요. 둘 다 아는 사람을 보러 왔다가 만난 거죠.”(모지민)

그의 인생에 나타난 남편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영화 <모어>에 잘 나타나 있다. ‘(성별) 정체성의 혼돈을 언제부터 느꼈냐’는 트랜스젠더 친구의 물음에 “나는 태어나서부터, 그냥 배 속에서 던져져 나왔을 때부터”였다고 답한 그는, 곧이어 성전환수술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수술하려다가 너무 무서웠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수술을 안 하고 살다보니, 몇 달은 괜찮다가 몇 달은 죽을 만큼 고통스럽기도 하고. (수술하고 싶은 생각은) 이제는 완전히 클리어(끝). ‘지민아, 너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뭘 해도 아름다워. 뭘 해도 아름다워.’ 그게 가장 중요했는데, 나는 제냐 때문에 다 넘겼어.”

제냐에게 지민 역시 그랬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요, 저에겐. 제가 만약 결혼한다면 당연히 지민이지 누구겠어요. 지민 이외엔 없어요.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자식의 정체성을 놓고 단 한 번도 ‘넌 왜 그렇냐’고 야단치지 않았던, 시골 농부 부모님은 제냐를 집에 데려갔을 때도 늘 그렇듯 따뜻한 밥상을 내놨다. 남편 제냐는 쌀밥에 파김치를 얹어 한 그릇을 뚝딱했다.

“시골에선 다 경운기를 운전해요. 그런데 아빠는 저한텐 (제가 그 일과 안 맞았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시킨 적이 없어요. 저희 집이 3남1녀인데, 형제 중에 저만 운전을 못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엄마 아빠는, 남들이 나를 손가락질할 때도 그냥 온전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나를 온전히 지켜주셨구나. 부모님은 고학력도 아니고, 예술을 배운 것도 아닌데. 부모가 아니라 정말 ‘신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고요. 제냐를 데리고 갔을 때도 너는 가족이라고. ‘가족’이란 2음절은 제가 들었던 가장 아름다운 말 중 하나였고, 우리 부모님은 정말 다르구나 생각했어요.”(모지민)

1999년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에서 사진 찍은 모지민·예브게니 슈테판 부부. 모지민 제공

장미꽃 흐드러지던 날 결혼식을 올렸지만

법이 이들 부부를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2017년 장미꽃이 흐드러지던 한강변에서 야외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비를 맞아야 하나 다른 날로 바꿔야 하나 했는데, 당일이 되니 그 어느 날보다 더 화창한 거예요. 장미꽃이 막 흐드러지고 나무도 흐드러지고. 하객들이 돈 들여서 한 것인 줄 알 정도로요. 정말 자연이 선물해준 풍경이었어요. 한강, 구름, 날씨, 바람, 모든 게 완벽했고 저는 또 공연하는 사람이니까 공연하면서 식을 치렀어요.”(모지민)

두 사람은 이쯤에서 ‘결혼식날 샹송 <라비앙 로즈>를 불렀는지, 연습만 하고 부르진 않았는지’를 놓고 가볍게 티격태격했다. 웃으며 실랑이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는 ‘오래된 부부’의 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사회 통념을 반영하는 법의 세계는 현실과 달랐다. 미국·유럽·대만 등은 ‘동성결혼’을 인정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이 만난 지 25년이 흘렀지만, 이들은 여전히 부부인 동시에 부부가 아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니라면 언제 ‘생이별’에 처할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 제냐는 한국인이 아닌, ‘비자’가 필요한 러시아인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화학 박사학위를 받고 대전의 화학연구원에서 일하게 돼서 1996년 한국에 왔는데, 저는 화학 말고도 관심 분야가 정말 다양했어요. 다른 일도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서울헤럴드>란 러시아어 신문사에 들어갔죠. 그 일을 좋아했고 잘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회사가 없어졌어요.”(제냐)

1998년부터 일한 신문사는 2012년 문을 닫았다. 러시아인 위주로 운영하는 회사인데도, 고용노동부는 외국인고용 비율 관련 규정(한국인 직원 5명을 둔 다음 외국인 직원 1명을 둘 수 있다)을 적용했고 가난한 신문사는 이 규정을 지킬 수 없었다. 직장은 잃었지만 ‘뉴스 블로거’가 돼 러시아 현실을 알리는 차선책을 택했다. 주제는 주로 ‘푸틴의 독재’ ‘정치 탄압’ 등이었다. 러시아 부정선거 규탄, 반전 시위 등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2017년 결혼식을 올린 뒤 사진 찍은 모지민·예브게니 슈테판 부부. 모지민 제공

러시아는 나발니 지지자 처벌·동성애 선전 금지

이런 삶의 궤적은 제냐에게 ‘생이별’을 더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비자가 만료돼 본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한국에 올 수 없는 처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제냐는 공개적인 ‘알렉세이 나발니(러시아의 대표적 반푸틴 정치 인사) 지지자’였는데, 러시아의 정치 상황이 악화하면서 나발니 지지자를 ‘극단주의자’로 규정해 처벌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 정부는 반푸틴 인사와 그 지지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특히 푸틴 집권 이후 2013년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신설해, 검열이 강화되면서 동성애 관계에 있는 자에게 벌금형, 가택연금 등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처벌까지 이뤄졌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김지림 변호사가 이 부부에게 연락한 것은 이맘때였다. 영화 <모어>에는 구직 비자가 만료돼 계속 체류할 수 없는 문제를 고민하는 부부의 모습, 제냐가 한국에서 추방되면 관계가 아예 끊어질까봐 두려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를 보고 법적 문제를 돕기 위해 연락한 것이었다. 동성결혼이 합법인 국가였다면 이렇게 체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고, 난민인정률이 높은 국가였다면 ‘반정부 인사 지지자’ 처지를 이토록 우려하지 않아도 됐겠지만, 우리나라는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데다 난민인정률은 2.1%로 세계 최하위권이었다.

2023년 10월27일, 제냐는 마침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연락받은 이날 오후 2시, 지민은 눈물을 터뜨렸다. 김 변호사의 법적 조력도 컸지만, ‘드래그 아티스트 모어’로서 쌓아온 미디어의 수많은 증거가 그들이 사실상 동성결혼 관계임을 보여줬다. 제냐가 쓴 기사와 블로그 글, 집회 사진들도 증거가 됐다. 김 변호사는 “제냐님의 난민인정은 정치적 사유·성소수자 사유가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증거도 풍부했던 특수한 케이스긴 하지만, 지금처럼 난민인정률이 낮은 시기에 꼭 필요한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희망이 될 수 있는 사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모어> 포스터. ㈜엣나인필름 제공

제냐는 난민인정을 받았다, 지민은 눈물을 터뜨렸다

“저는 탄생부터 불행했던, 무기징역형 불행을 선고받고 엄청난 폭력의 시대를 살았죠.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난 죽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암세포처럼 들러붙어 평생을 괴롭혔어요. 당연히 저만 불행하단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아픔이 있죠. 결론은 이거예요. 그럼에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고, 아름답게 승화시킨 저 자신이 기특했어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죽음에 맞서 싸우면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다보니 책도 나왔고 영화도 나왔고. 이런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해요. 이건 돈으로도 살 수 없잖아요. 이제야 인생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비로소. 정말요. 수억원의 돈을 벌지 않아도 아주 조그마한 것에서 감정을 느낀다면 그건 참 아름다운 인생이고, 그걸 모르고 산다면 불행할 것이고. 감사하게도 저는 이제 그걸 깨달아서 인생이 아름답게 보여요. 앞으로의 작품이나 행위는 더 아름다울 것 같아요.”(모지민)

남편 제냐가 옆에서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손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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