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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무엇이 ‘정상’인가…장애와 비장애 ‘위계는 없다’

Summary

찰스 다윈이 1837년에 그린 방사형 모양의 ‘생명의 나무’ 그림. 위키피디아 장애의 반대말은 ‘할 수 있음’이다. 따라서 장애는 어떤 기능이나 역량이라는 사회적 기준에 미치지 못...

찰스 다윈이 1837년에 그린 방사형 모양의 ‘생명의 나무’ 그림. 위키피디아
장애의 반대말은 ‘할 수 있음’이다. 따라서 장애는 어떤 기능이나 역량이라는 사회적 기준에 미치지 못함을 뜻한다. 이런 용어가 특별한 상황에서 지니는 사회적 쓰임새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을 통해 누군가를 정의할 때는 이 말이 지니는 한계에 유념해야 한다. 장애라는 표현에 녹아 있는 ‘위계’ 때문이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생물학의 오해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생물학의 핵심을 이룬 아이디어는 ‘존재의 큰 사슬’(scala natura)이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분류할 때 최고의 정점에 인간을 두고 그 아래 동물들을 위계에 따라 나누고 그 아래 식물 그리고 맨 밑바닥에는 광물 같은 비생명체를 둔 것이 ‘존재의 큰 사슬’이다. 이는 중세 교부 시대에 종교적 색채가 가미된 채 계승되었고, 근대에 형성된 계통분류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전통이 지금도 ‘진화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 중 하나는 인간을 모든 진화의 정점으로 보는 것이다. 생명의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가장 진화한 생명체이고 그 정도에 따라 동식물, 미생물에 대해 서열을 매긴다. 인간과 유인원을 비교하면서 유인원은 진화가 덜 된 것으로 보면서 일종의 서열을 매긴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은 인과관계와 목적론적 측면에서 ‘존재의 큰 사슬’ 전통과 크게 다르다. 자연에는 미리 정해진 계획이나 위계가 있어 이를 반영하는 형태로 생태계가 구성된다는 전통적 이해와 다르게 진화론은 경쟁, 적응, 유전적 변이와 같은 자연적 과정이 진화의 인과관계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자연 개체가 지고한 목적을 향해 완성되어가는 도정에 있다는 전통적 이해에 반해 진화론은 자연 선택이 미리 정해진 목표 없이 작동하며 진화가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진화론에는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진화론이 묘사하는 생명의 나무는 방사형으로, 수도 없이 뻗어 나오는 여러 가지 중 하나가 인간이 속한 가지다. 진화론에서 인간은 생명의 역사 가운데 아주 최근에 발생한 변종일 따름이다. 지성, 이성, 추론능력 등은 인간의 특징일 뿐이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위계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세상에 적응하고자 분투하며 다른 동물과 식물도 개별적 특징을 가지고 생명 유지에 힘쓴다. 이러한 쉼 없는 분투 과정이 생명의 나무를 형성한다. 그리고 생명의 나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아서 계속 새로운 가지를 뻗어내며 그 자태를 바꿔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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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 ‘정상성’ 기준으로 인간 줄세우기

인간중심주의적 관점, 즉 생명에 위계를 두는 방식을 좀 더 확장하면 인간들 간에도 어김없이 위계를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매겨진 서열을 통해 ‘비장애중심주의’가 그 면모를 드러낸다. 인간에게 적용되는 세부적인 위계는 사회적 기능이나 역량 등을 통해 규정된다. 이것들로 구성된 ‘정상성’이 하나의 정점을 형성하고 여기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따라 인간의 위계가 나뉜다. 이러한 위계 매김의 한복판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비장애를 중심으로 위계를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결정을 하는 비장애중심주의다.

사람에게는 어떤 가치 체계를 믿는 속성과 그렇게 믿는 자의 규모를 키우려는 속성이 있다. 인간의 믿음에는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고, 이를 위해선 더 많은 동조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단화된 믿음을 이념이라 한다. 비장애중심주의는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지닌 집단적 믿음이다. 세상은 장애가 없는 비장애인들에 의해 유지·운영·발전되고 장애인은 그 혜택에 의존해 산다고 한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체계와 규칙은 비장애인들에 맞춰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장애인이 배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집단적인 믿음은 비장애인의 배타적 이권을 위해 존재한다. 지하철 이용을 비롯한 대중교통 체계에 보행 장애가 있는 사람의 보행권을 보장하는 것은 이러한 집단적 이념의 바깥에 있다. 비장애중심주의라는 믿음의 강고함은 이렇게 기본적인 권리마저 아주 손쉽게 배제한다.

비장애중심주의는 장애가 발생하는 과정과 관련돼 큰 오류를 지닌 믿음 체계다. 우선 선천적 장애의 경우 유전적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가 집단에 유전적 다양성을 도입함으로써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변종은 다양하고 심지어 무작위로 발생한다. 변종은 위계를 구성하지 않고 진화 과정에 동참하면서 진화의 흐름이 존재하게 된다. 변종의 하나인 겸상 적혈구 형질이 다른 지역에선 빈혈을 유발하지만 말라리아가 만연한 지역에선 진화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예이다. 또한 우리는 살면서 후천적으로 다양한 재해나 사고로부터 장애를 얻는다. 더욱 일반적인 후천적 장애 형성 경로는 자연적 노화다. 보행능력, 시각, 청각, 인지기능의 퇴화 등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 장애에 이르게 된다.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우리는 예외 없이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장애를 맞이하게 된다. 즉 우리 중 누구도 비장애의 견고한 성곽 안에 내내 머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성은 애초에 없다. 탁 트인 벌판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 개체들이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이념이 없는 동물은 동료의 장애를 인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나이 든 암컷 범고래는 젊은 세대에게 사냥 기술을 가르치고 환경을 탐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끼리 무리에서 부상당하거나 나이 든 개체는 무리의 사회적 결속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장애에 대한 이해와 소통은 생명의 본질에 대한 공감 속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생명은 비교 대상이 아니며 등가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맨 아래에서 나온다. 생명의 지류들은 모두 복개되고 그 위엔 비장애의 세상이 펼쳐져 있다. 생명은 위계 없이 지하로 흐르지만 그것이 관리되고 운영되는 일들은 복개된 지상의 것이 되었다. 복개된 세상에서 밀리고 밀려 지하 맨 밑바닥으로 내려온 생명들은 아래로 흐르는 지류의 물소리, 생명이 내는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건네는 생명의 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서울대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생화학·면역학 등을 공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수용체 개발, 노화와 면역 사이의 연관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부단히 모색 중이다. ‘탐구한다는 것’, ‘이타주의자’, ‘소년소녀, 과학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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