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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 시비 ‘마담 보바리’ ‘악의 꽃’…왜 보들레르만 감옥에 갇혔나

Summary

1857년은 프랑스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마담 보바리’와 ‘악의 꽃’이라는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게 될 문학작품이 발표됨과 동시에 좀도둑이나 다루는 경범 재판에 넘겨졌기...

1857년은 프랑스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마담 보바리’와 ‘악의 꽃’이라는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게 될 문학작품이 발표됨과 동시에 좀도둑이나 다루는 경범 재판에 넘겨졌기 때문이다. 4년이라는 세월을 바쳐 완성한 자기 작품이 반사회적이고 외설적이라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작가 플로베르의 분노는 컸다. 모두가 알다시피 ‘마담 보바리’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스탕달의 ‘적과 흑’ 등과 함께 서양 불륜 소설을 대표하는 소설이며 프랑스 문학사에서 현대소설의 출범을 알리는 명작이다.

또 작가의 개입을 일체 배재하고 등장인물을 그저 지켜만 보는 그의 문체는 독자들이 마치 연극이나 영화를 관전하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부유한 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플로베르는 이웃 할아버지가 읽어주는 ‘돈키호테’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아예 암기해버렸다. 물론 그가 암기한 판본은 아동용 축약본이었겠지만 말이다.

플로베르는 글자를 알게 됨과 동시에 글쓰기를 익힌 천재였다. 9살에 인생 첫 희곡작품을 썼고 10살이 되기 전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할 만큼 글쓰기에 재능이 많았다. 아버지의 반대로 일찍 작가의 길로 들어서진 못했지만 결국 뇌전증이라는 지병을 앓으면서 거의 십자가를 매는 절박한 심정으로 ‘마담 보바리’를 완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거칠게 말하면 한 유부녀가 멀쩡한 남편을 두고 외간 남자들과 불륜을 저지른 끝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이 소설을 ‘드뷔 드 파리’라는 잡지에 연재할 당시부터 이미 독자로부터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항의가 쏟아졌고 잡지사 측은 자주 일부 내용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마담 보바리’는 출간이 되자마자 외설 시비로 재판에 넘겨지는 비운을 맛본다. 그러나 플로베르는 경제적으로 부유했기 때문에 국회의장과 내무부 장관을 거친 세나르라는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서 무죄를 끌어낸다. 그리고 ‘마담 보바리’는 플로베르에게 작가적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마담 보바리’와 함께 외설로 기소된 보들레르는 가난했기 때문에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었으며 결국 유죄를 인정받아 감옥에 갇히는 시련을 겪었다. 당시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공식이 작용했다. 보들레르 입장에서는 ‘마담 보바리’ 사건에서 패배한 검사가 자신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악의 꽃’ 재판을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재판에 임했다는 불운이 작용하기도 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마담 보바리’를 외설 시비로 기소한 검사가 나중에 ‘마담 보바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외설스러운 문서를 작성해서 친구들과 나눠 읽다가 적발되었다는 사실이다.

박균호 교사, ‘나의 첫 고전 읽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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