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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커피 마시자’에 ‘스토킹 무죄’…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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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스토킹 사건을 기소하면서 일부 범죄사실의 발생 시각과 구체적인 내용을 적지 않아 법원의 판단 대상에서 배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형사소송법은 “공소사실의 기재는 범죄의 시일, 장소와 방법을 명시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이 같은 요건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해당 공소사실을 제외한 나머지 범죄행위만 심리했고, 결국 무죄로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지난 24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74)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ㄱ씨는 손녀를 등하교시키면서 다른 학부모 ㄴ(40)씨를 알게 됐고, ㄴ씨의 거부 의사에도 ‘커피를 마시자’는 등 지속적으로 접촉한 혐의(스토킹범죄)로 약식 기소됐다. 이후 ㄱ씨 요구로 정식 재판이 열렸다.

검찰은 공소사실에 “ㄱ씨는 2022년 3월29일부터 4월13일까지 일방적으로 11회에 걸쳐 피해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고, 4월13일 ‘이런 연락 너무 불편하다. 앞으로 안 하셨으면 좋겠다’는 거절을 받았다”고 적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ㄱ씨는 5월2일 통학버스 정류장에서 ㄴ씨와 마주치자 손으로 ㄴ씨 팔꿈치를 치며 ‘커피 한잔하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으며, 그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ㄴ씨를 발견하자 휴대폰으로 ㄴ씨를 4회 촬영했다”고 기재했다.

박 판사는 5월2, 3일 하루 간격으로 두차례 접근을 한 행위만 판단 대상으로 삼은 뒤 “스토킹 범죄의 정의인 ‘지속성·반복성’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며 무죄 판단했다. 앞선 11차례의 카카오톡 메시지 발신은 시기가 특정되어 있지 않고 개괄적이기 때문에 유무죄를 가려야 하는 공소사실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 판사는 판결문에 각주를 달아 “경찰이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위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날짜와 시간, 내용을 특정한 것과 (검찰의 공소장이) 구별된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위해 검사는 세 가지 요소(시일, 장소, 방법)를 종합해 다른 사실과 식별이 가능하도록 구체적 사실을 기재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다.

검찰은 ‘11차례 카카오톡 메시지도 공소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한겨레에 “당연히 (카카오톡 메시지도) 공소사실이라고 생각하고 기재한 것이다. 재판부와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사건 경험이 많은 오선희 변호사는 “공판검사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을 것”이라며 “공판검사가 공소장을 변경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앞선 11차례 카카오톡 메시지(의 시일, 장소, 방법을 누락한 문제와 별개로 해당 메시지)와 그 뒤의 행위를 연결해 ‘지속적·반복적 행위’로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공소장에 11차례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왜 정신적 불안감을 조성했는지 설명이 있어야 했다”며 “스토킹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불친절한 공소장”이라고 지적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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