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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추고 느슨하게 하자’는 한경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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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갖고 그래.”(1995년 내란 재판) 여러 어처구니없는 말을 남겼지만, “29만원뿐”(1997년 추징금 납부)과 함께 가장 많이 회자된 전두환씨의 말이다. 지난달 전경련...

“왜 나만 갖고 그래.”(1995년 내란 재판)

여러 어처구니없는 말을 남겼지만, “29만원뿐”(1997년 추징금 납부)과 함께 가장 많이 회자된 전두환씨의 말이다. 지난달 전경련에서 이름이 바뀐 한경협(한국경제인협회)을 보며 이 말을 떠올린다. 55년 만에 바뀐 건 이름 뿐인 듯하다. 기후위기 대응 태도가 특히 그렇다.

최근 한경협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를 애초 계획한 2025년보다 더 미루자거나, 주요 탄소 배출국들이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등의 보고서를 냈다. 기업의 탄소 배출량 정보 공개를 늦추고, 국가 배출량 목표를 더 느슨하게 하자는 취지다. 요컨대 ‘왜 우리만 갖고 그러느냐’는 것이다. 결국 공시 의무화는 2026년 이후로 미뤄졌다.

한국의 탄소 배출량 75%는 연간 배출량이 100만t을 넘는 73개 기업에서 나온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상위 10개 기업 배출량은 46%에 이른다. 이 10개 기업이 배출량 저감 노력을 어찌하느냐에 국가 기후위기 대응 성패가 달려 있다. 이들 기업은 한경협을 통해선 공시 의무화를 미루자면서도 국민을 상대로 한 이미지 홍보엔 열심이다. 그린피스 조사에서 399개 국내 기업 중 41.4%가 녹색혁신 과장 등의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을 하고 있었다. 최악의 사례로 꼽힌 건 해양 멸종위기종의 그림을 라벨에 삽입한 플라스틱병 제품이었다. 사냥감이 될 사슴 캐릭터가 사냥 도구인 엽총을 홍보하는 격이랄까.

기업이 앓는 소리만 할 상황이 아니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이달부터 시범실시 중이다. 제조·운송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가격 경쟁력이 유지된다. 100% 재생에너지 전기를 쓰자는 아르이(RE)100은 또 어떤가. 한국은 30개국이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한자릿수에 불과한 유일한 나라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지난 5년 동안보다 많은 96GW(올해 4월까지)의 새 청정전력 투자계획을 마련했다. 인플레감축법이나 아르이100, 탄소국경조정제도 모두 에너지 전환을 위한 조처다. 국가 전체 전환 속도가 우리 기업의 제품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이 ‘늦추고 느슨하게 하자’ 같은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을 때인가.

박기용 기후변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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