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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이적표현물 기준 맞춰 전시 불허한 국회 전시 자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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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 작가의 작품 ‘모내기’ 국회 의원회관 전시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국회의원회관 전시회 허가 자문위원회’가 1999년 대법원이 이적표현물로 판단한 신학철 작가의 작품 ‘모내기’...

신학철 작가의 작품 ‘모내기’

국회 의원회관 전시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국회의원회관 전시회 허가 자문위원회’가 1999년 대법원이 이적표현물로 판단한 신학철 작가의 작품 ‘모내기’를 재해석한 작품을 전시 부적합 판단을 내린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자문위는 사회윤리 침해 우려 등을 판단의 이유로 들었다. 이 결정은 지난 4월 국회 사무처 내규 개정 뒤 출범한 자문위가 내린 첫 전시 부적합 결정이다. 자문위는 이적표현물로 규정된 작품을 변형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전시할 경우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주최 쪽은 자문위가 임의적인 기준으로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자문위는 지난달 30일 회의를 열고 윤미향 무소속 의원과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야당 의원 20명이 공동주최한 ‘표현의 자유와 국가보안법 전시회’가 사회윤리를 침해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부적합 결정을 내렸다. ‘국회의원회관 회의실 및 로비사용 내규’상 자문위는 신청 전시가 타인의 권리나 공중도덕, 사회윤리 등을 침해 했는지를 따져 전시 허가 제한 사유가 있는지 판단하고 국회 사무총장에게 의견을 낸다.

주최 쪽이 준비한 작품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피해를 받은 이들이 만든 작품 또는 구술 자료들이다. 1999년 대법원이 이적표현물로 판단한 신 작가의 ‘모내기’ 작품을 25개 조각으로 분할한 뒤 뒤섞은 설치 미술 작품, 2020년 5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안소희 전 민중당 파주시 의원의 경험 구술자료와 인터뷰 음성 등이 포함됐다.

주최 쪽은 자문위가 부적합 판단을 내린 것을 확인한 뒤 국회사무처 등에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최 쪽은 항의의 뜻으로 모내기를 재해석한 작품 전시 대신, 빈 캔버스를 전시하는 방식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자문위는 그때야 전시 적합 판정을 내렸다. 전시는 지난 7∼8일 열렸다.

자문위의 전시 부적합 판정은 지난 4월 자문위 설치 뒤 처음이다.

국회 사무처는 지난 1월 민주당 의원 등 12명이 공동 주관한 ‘2023 굿바이전 인 서울’ 전시회를 허가했는데, 전시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풍자한 작품이 있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개막 전날 전시 허가를 급히 취소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국회사무처는 지난 4월 전시 신청 시 작품 사진을 미리 제출하고, 미술과 법률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가 전시 적합성을 심사할 수 있도록 내규를 고쳤다. 이를 두고 당시에도 국회 사무처가 사전 검열에 나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

신학철 작가의 1987년작인 모내기는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상단에 배치된 사람들은 잔치를 벌이는 반면, 하단에 있는 사람들은 외세를 상징하는 코카콜라나 양담배 등을 쓸어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1989년 검찰은 이 작품이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라며 신 화백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기소했고, 10년간의 재판 끝에 대법원은 1999년 모내기가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최종 판단했다.

검경의 수사와 기소, 사법부의 판결을 두고 문화계와 시민사회계 등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큰 논란이 이어졌다. 2004년 유엔인권이사회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9조에서 규정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한국 정부에 유죄판결 무효화와 보상 등을 권고하기도 했다.

주최 쪽은 이번 자문위 결정이 자의적이고 시대착오이라고 주장했다. 24년 전 이적표현물 판정 자체를 두고도 논란이 있는 데다 모내기를 25개 조각으로 분할해 형태를 단번에 알아볼 수 없는 작품마저 전시를 불허하는 건 과도한 제한이라는 것이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한겨레에 “자문위가 자의적인 기준으로 전시 작품을 검열하고 있다. 반헌법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전시회는 승인하면서 헌법에서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국회에서부터 억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문위는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는 작품을 입법공간인 국회에 전시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국회사무처는 “자문위가 (국가보안법의 피해를 주제로 한) 전시 취지에는 동의하나, 작품을 변형한다 하더라도 해당 작품의 전시는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입법부인 국회에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는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자문위의 판단이다”라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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