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ories:
정치

총선 승리가 아니라 정치 회복이 민생 살린다

Summary

윤석열 대통령이 10월31일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열린 환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국회의원 총선거는 중요합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0월31일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열린 환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국회의원 총선거는 중요합니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총선이 정권의 향배를 결정합니다. 총선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세력이 집권합니다.

대통령제는 좀 다릅니다. 총선에서 야당이 이겨도 정권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도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입니다. 법률과 예산은 국회 소관입니다.

대통령이 소속한 정당과 국회 다수를 차지한 정당이 다르면 여소야대 국회라고 합니다.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가기 힘듭니다. 이중 권력구조인 대통령제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여소야대로 인한 국정 난맥을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가지 방안이 가능합니다.

첫째, 정계 개편을 해서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바꾸는 것입니다. 여당과 야당이 합당하거나 여당이 야당 및 무소속 의원들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둘째, 대통령이 아예 야당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대연정입니다. 대통령이 권력의 절반을 포기해야 합니다.

어느 방안이 쉬울까요? 다 어렵습니다.

상대적으로 첫번째 방안이 우리에게 좀 익숙합니다. 경험해봤기 때문입니다. 1990년 3당 합당, 1996년 신한국당 의원 영입,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의원 영입이 그런 사례입니다.

두번째 방안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아직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승자 독식 대통령제 권력구조, 그리고 대화와 타협에 의한 정치문화 부재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 야당 공격도 ‘총선용’

저는 지난해 3월9일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고 윤석열 대통령이 과연 여소야대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이 난제를 풀지 못하면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이 호언장담한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계 개편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테니, 더불어민주당과 대연정을 하는 방안이 어떠냐고 칼럼으로 제안도 해봤습니다. 정치의 기존 문법에서 자유로운 대통령이니 대연정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궁금증과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기존 정치의 문법에서 자유로운 대통령이 아니라, 정치를 아예 모르는 대통령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 야당에 협력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야당에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정치는 명분과 실리를 주고받는 고난도 기술입니다. 야당에 협력을 요구하려면 뭔가 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인사와 정책에서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든가, 야당 대표와의 회담을 정례화해서 국정의 파트너로 예우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무조건 도와달라는 것은 야당을 대통령의 들러리로 여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야당의 협력을 얻지 못하자 윤 대통령은 태도를 바꿨습니다. 대선 출마 때 사용했던 ‘이권 카르텔’이라는 개념을 다시 끄집어내 야당을 공격했습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 맹종 세력, 추종 세력’이라고 색깔론을 폈습니다.

윤 대통령이 야당을 거칠게 공격하는 이유는 두가지로 추정됩니다. 첫째, 감정적으로 싫기 때문입니다. 둘째, 내년 총선용입니다. 총선에서 이겨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바꾸려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은 올 초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총선에서도 여당이 다수당이 돼야 공약했던 정책을 차질 없이 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하면 거의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국회 다수당으로 만들어줘야 자신이 제대로 일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당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의대 정원 확대, 경기 김포시 서울 편입, 공매도 금지를 추진하는 것도 물론 총선용입니다. 총선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입니다. 총선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총선 만능론’입니다.

국회선진화법이 막는 다수당 독주

정말 그럴까요? 총선에서 이기면 정권이 성공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아닙니다. 총선 만능론은 오류입니다. 윤 대통령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면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돼도 공약했던 정책을 차질 없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가지 이유입니다.

첫째, 국회선진화법입니다. 소수 야당이라도 야당이 협력하지 않으면 정부·여당이 국회에서 법률안과 예산안을 마음대로 통과시키기 어렵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180석을 확보하고도 법률안과 예산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했습니다.

둘째,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 역전입니다. 지금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 대통령에게 꼼짝 못 하는 것은 공천 때문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노동·연금·교육 개혁은 여러 집단의 이해를 조정해야 하는 복잡한 작업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3대 개혁을 자기 일처럼 나서서 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흥미로운 것은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치인과 언론도 ‘총선 만능론’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이재명 민주당 대표까지 그렇습니다. 이 대표는 11월6일 총선기획단 1차 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번 선거는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민주당 문제를 넘어서서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분수령 같은 선거입니다. 윤석열 정권의 오만한 폭정을 심판하고 위기에 놓인 민생을 구하는 출발점으로 만들 책무가 우리 민주당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국회를 무시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퇴행하는 폭주·역행을 하고 있는 판인데, 혹여라도 총선에서 우리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과연 이 정부의 퇴행과 폭주가 어떻게 될 것인지 보지 않고 훤히 알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가요? 정치에서 모든 선거는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내년 총선이 정말로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분수령일까요? 이 대표도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총선 만능론이라는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총선 만능론은 쉽게 말해서 “총선에서 우리 편이 이기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요, 우리 편이 지면 모든 것이 잘못될 것이다”라는 주장입니다. ‘총선 승리 천국 도래, 총선 패배 지옥 추락’인 셈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요설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엄밀히 말하면 총선 만능론은 상대편을 악마화해서 우리 편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밀어 넣으려는 ‘스핀 닥터’들의 선거용 전술에 불과합니다.

총선 결과와 민생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한번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총선에서 이기면 누가 좋을까요? 당선되는 국회의원들이 좋습니다. 이기는 쪽을 찍은 유권자들은 기분이 좋을 수는 있겠지요. 그것도 잠시입니다. 총선에서 어느 쪽이 이기든 국민의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총선·대선 승리 연동, 딱 한 차례

총선에서 이긴 정당이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잡을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총선 결과와 다음 대선은 별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1996년 4·11 총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이 139석으로 1당을 차지해 승리했습니다.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에 그쳤습니다. “디제이는 끝났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무소속 의원 영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한 뒤 노동법을 날치기했습니다. 역풍이 불었습니다. 외환위기가 닥쳤습니다. 1997년 12월18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2000년 4·13 총선에서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이 133석으로 1당을 차지했습니다. 다들 “다음 대통령은 이회창 총재”라고 했습니다. ‘이회창 대세론’이었습니다. 2002년 12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2004년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152석 과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4대 개혁 입법을 밀어붙였지만, 야당의 강한 반발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2007년 12월19일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2008년 4·9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53석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정권은 비틀거렸습니다. 2011년 10·26 재·보선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됐습니다. 정권이 넘어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나서서 새누리당을 만들었습니다. 그 힘으로 2012년 4·11 총선, 12·19 대선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2016년 4·13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으로 1당을 차지했습니다. 국회의장이 민주당으로 넘어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당했습니다. 2017년 5월9일 대선에서 정권이 넘어갔습니다. 총선 결과가 다음 대선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경우는 이때가 유일했던 것 같습니다.

2020년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은 180석의 압승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2021년 4·7 재·보선에서 서울시장·부산시장을 넘겨줬고, 2022년 3월9일 대선에서 정권을 넘겨줬습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이번 총선은 나라의 명운을 결정할 정초(定礎) 선거”라고 주장한 논객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엉터리 전망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2024년 4·10 총선 결과와 3년 뒤 2027년 3월3일 대통령 선거는 거의 관련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년 총선 결과가 아니라 정치의 회복입니다. 국민은 선거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훨씬 더 절박합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총선 승리에만 매달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당장 대화를 시작해서 정치를 회복하고 민생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참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