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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되는 국회…윤 대통령 시정연설에서 고성·야유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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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가 한국방송(KBS) 신임 사장 관련 손팻말을 두고 여야가 충돌하며 중단됐다. 연합뉴스 24일 아침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가 한국방송(KBS) 신임 사장 관련 손팻말을 두고 여야가 충돌하며 중단됐다. 연합뉴스
24일 아침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회의에서 모처럼 같은 발언이 나왔습니다. 양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회의 때 상대 당을 비방하는 손팻말(피켓)을 부착하지 않고, 대통령 시정연설 등이 진행되는 본회의장에서 고성과 야유를 하지 않기로 전날 합의했다는 내용입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당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이러한 사실을 밝히며 “국민께 국회가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여야가 지나치게 정쟁에 매몰됐다는 모습을 보이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이런 노력을 앞으로 지속해 함께 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당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러 가지 고성과 막말로 인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며 “대통령 시정연설, 여야 교섭단체 대표연설 시에는 자리에 앉아있는 의원들이 별도의 발언, 말씀하지 않은 것으로 우리가 일종의 신사협정을 제안했고 여야가 이에 대해 합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신사협정’은 홍 원내대표가 국회의장과 여당 원내대표에게 제안해 여야 합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를 보고 이렇게 제안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국감장에선 민주당 의원들이 ‘방송 장악 규탄한다’는 문구를 담은 피켓을 들고 와 여야 의원 간 고성이 오갔고, 회의는 시작 30분 만에 정회됐습니다. 이후 홍 원내대표는 상임위 간사들에게 파행의 빌미를 주는 피켓을 사용하지 말자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사실 국회법에는 회의장에 회의진행에 방해되는 물건을 반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 매번 여야는 피켓 반입을 두고 국회법을 위반했다며 싸우기 일쑤입니다.

홍 원내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정부질문 때 큰 소리를 주고받는 건 일종의 문화로 두더라도 각 당을 대표하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과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 시정연설에서만은 고성과 야유를 자제하자는 것”이라며 “반복되는 안 좋은 관행을 끊어보자는 차원에서 윤 원내대표에게 제안했고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윤 원내대표가 받아들여 줬다”고 했습니다.

사실 국회는 말로 싸우는 곳입니다. 영국 의회를 뜻하는 팔러먼트(parliament)가 말하는 곳이라는 어원을 지녔고, 미국 의회를 뜻하는 어셈블리(assembly)는 함께 모인다는 뜻인 만큼, 국회는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집단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숙의하는 공간입니다. 물론 몸싸움이 빈번했던 ‘동물 국회’ 시절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로 대체로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2019년 선거법 개정안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둘러싼 여야 간 물리적 충돌이 있긴 했지만요.

지난해 4월27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의 수사권 폐지 법안을 처리하기 전 첫번째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리적 싸움이 사라진 공간을 대체한 것은 고성과 삿대질, 욕설입니다. 21대 국회(2020~2024년)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해 5월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 처리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민주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려고 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으로 몰려가 ‘권력비리 은폐시도’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상임위원장석을 에워싸고 항의했습니다. 검찰청법 개정안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는 국회의장실 앞에서 의장을 몸으로 막는가 하면, “XX, 천하의 무도한 놈들”과 같은 욕설과 비난도 난무했습니다.

야당도 ‘공수’가 바뀌면 거칠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달 본회의장에서 대정부 질의에 나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에겐 민주당 의원들 의석에서 고성과 함께 “북한에서 쓰레기가 다 왔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역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한 대정부 질의에서는 야당 쪽의 고성으로 질의가 진행되지 않자 민주당 소속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국민께서 방청하고 계신다. 민주당 의원님들도 경청해달라”고 자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지난 5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야당 간사인 민주당 의원이 ‘지xxx하네’라는 욕설을 내뱉어 추후 사과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정도면 말로 싸우는 걸 넘어서서 말로 폭력을 저지르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21대 국회에서 처음 이런 광경들을 목격한 초선 의원들은 어땠을까요.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처음 국회에 왔을 때 TV로만 보던 고성이나 야유를 보게 돼서 놀랐다”며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흥분해서 함께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 초선 의원은 “본회의장에 초등학생이 관람 왔던 순간이 가장 창피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진행된 이틀 간 초등학생 방청객 앞에서 고성과 야유가 오갔던 장면을 떠올린 겁니다.

다른 초선 의원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졌던 날을 가장 부끄러웠던 날로 꼽았습니다. 그날 민주당 의원들은 체포동의안 제안 설명을 하는 한동훈 장관을 향해 야유와 고성을 내뱉었습니다. 이 초선 의원은 “동참하고 싶지 않았던 적이 많은데 지금이라도 이런 합의가 이뤄져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아직 신사협정에 대한 국회 내 반응은 우호적인 것 같습니다. 한 민주당 소속 다선 의원은 “여당에서는 정쟁을 부추겼던 것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요인이라고 보는 것이고, 민주당도 발목 잡기 프레임에 걸리지 않으려다 보니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정치문화를 개선하려는 긍정적인 노력으로 보인다. 어떤 것이 국회 관례인지 몰랐던 초선 의원들에게는 한번 정리해주고 가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양당의 신사협정은 계속 지켜질 수 있을까요. 당장 이번 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이 첫 시험대가 될 것 같습니다. 원래 홍 원내대표는 대통령 시정연설 등에서 박수를 치는 것도 금지하자고 제안했는데, 여당 쪽에서 난감해 하는 바람에 합의는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인지, 민주당 일각에선 “대통령 시정연설에서 야당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마저 포기하면 어떡하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고 합니다. 지난해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은 보이콧했습니다. 올해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지난 4월12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국회를 견학 온 초등학생들이 전원위원회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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