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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인민의 가난 방치하지만…경제적 양극화는 ‘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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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북한 평양 시내의 김일성광장에서 어린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추석 연휴 동안 눈길을 끈 언론 보도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명절이기에 더...

2013년 7월 북한 평양 시내의 김일성광장에서 어린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추석 연휴 동안 눈길을 끈 언론 보도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명절이기에 더욱 충격적인 자살이나 고독사에 관련된 소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끔찍한 현실은 명절을 예외로 할 턱이 없다. 이번에는 1인가구 증가를 반영하듯 고독사 사건도 여러건 발생했다. 안타까운 죽음에는 저마다의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 원인 중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과 관련이 있었다.

엄청난 풍요로움을 영위하게 된 한국에서 가난으로 자살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증언한다. 부는 특정 집단과 계층에 집중되고 중산층은 붕괴하고 있으며, 생존의 위기에 처한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소득 불평등도 문제지만 자산 격차로 인한 부의 불평등은 이미 위기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세계불평등연구소가 발표한 2022년 보고서를 보면, 남한의 상위 10%가 보유한 부는 전체 58.5%에 이르고, 하위 50%가 보유한 부는 5.6%에 불과했다. 자산이 있는 이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되고, 노동 임금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은 인플레이션과 이자 비용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노동 능력이 있는 이들은 근근이 살아갈 수 있겠지만, 건강상의 문제와 가족 돌봄 등의 이유로 노동이 어려운 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빚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북한 정권에 기대어 성장한 ‘돈주’

북한의 양극화에 관련된 기사도 비슷한 맥락에서 주목된다. 남한과의 의도적 비교를 위한 것은 아니겠지만 북한에도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보도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북한 관련 기사에서는 권력자의 사치품 소비의 면면을 흥미 위주로 보도한다. 리설주, 김주애, 현송월 그리고 최선희 등 북한 체제의 주요 여성 인사들의 사진을 전면에 배치하면서 이들의 패션 아이템의 브랜드와 가격을 세세하게 소개하는 식이다. 경제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북한 지도층의 명품 소비는 정권의 부도덕함을 드러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이 분명하다. 또한 평양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의 소비 행태에 대한 보도도 이어졌다. 평양 사람들이 수천달러에 이르는 남한의 가전제품을 과시하듯 소비하고 있으며, 수만달러의 자산을 가진 돈주(북한 신흥 부자)들의 삶은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가와 다를 바 없다는 식이다. 이는 얼마 전 아사자가 속출한다는 보도와 대비돼 북한에서도 극단적인 경제적 양극화가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은, 과연 북한 내부의 경제적 격차가 남한의 경제적 양극화와 비교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북한 경제가 과연 자본주의인 남한과 유사한 부작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북한 경제가 더 이상 사회주의 계획경제로만 설명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학계의 정설이 된 지 오래다. 고난의 행군 이후 아래로부터 시작된 시장화는 북한의 계획경제를 시장 매커니즘을 내포한 혼종적인 형태의 경제 구조로 전환시켰다. 2002년 7월1일에 실시된 ‘7·1 경제관리개선조치’로 종합시장을 비롯한 시장이 합법화되었으며, 2014년에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실시함으로써 기업소의 독립성을 확대하기도 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로는 인민의 생활을 책임질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 아래 이뤄진 조치들이었다. 멈춰버린 식량과 생필품 배급을 대신해 인민들 스스로 시장을 통해서 생존을 위한 필수품을 융통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확대가 경제 구조 전반에서 국가 장악력의 감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토지·기업소·자원 등 생산수단은 국가의 소유이며, 인민들이 시장을 통해 이득을 얻는 것은 국가의 생산수단을 적절한 수준에서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시장에서 성장한 북한의 돈주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라기보다는 유통과 무역 등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집단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들의 자본이라는 것도 절대적인 힘을 지닌 국가권력의 비호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경제수단뿐 아니라 경제활동을 통해 얻는 대부분의 수익과 자본은 여전히 국가권력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돈주들이 자본을 축적하여 민간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현재 북한의 경제적 양극화 상황을 자본주의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불평등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토마 피케티는 그의 저작 ‘21세기 자본’에서 불평등의 문제를 자본수익률(r)과 경제성장률, 즉 소득 혹은 생산 증가율(g)의 관계를 통해서 분석한 바 있다.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의 차이(r>g)가 늘어나기 시작한 1980년대 이래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는 주장이다. 즉, 현재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심화된 경제적 양극화는 부동산·주식·이자 등의 자본수익률은 급격하게 상승한 반면 소득 및 생산 증가율은 미미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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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지배층, 눈과 귀 막는 데 골몰

반면에 북한의 경제적 양극화는 자본과 생산수단을 소유한 극소수 정치권력과 하루하루 노동력을 팔아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대다수 인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인민들 중에서 살림살이가 조금 더 나은 이들도 존재한다. 북한식 표현으로는 ‘머리가 트여’ 수완을 발휘하는 사람들도 있고, 평양에 거주하면서 권력을 활용해 남들보다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과 대다수 인민 사이의 격차는 자본주의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정도인 경제적 불평등과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임이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대다수의 북한 인민들은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보수세력 일각에서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북한에서 불평등이나 이것이 필연적으로 야기할 사회 불안이 아직은 현실화되기 어려운 까닭이다. 다시금 “먹고사는 문제가 바빠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는 한 탈북민의 증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곱씹어봐야 한다.

이렇듯 남북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그만큼 다른 해법이 요구된다. 피케티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건강한 민주주의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가진 자들의 부를 세금을 통해 분배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통 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다수가 가난한 북한 같은 국가에서는 무엇보다 생산력과 기술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교육과 투자 등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생산수단과 자원을 민간에 분배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남한의 민주주의는 실종됐고, 북한의 권력은 인민의 가난을 방치한다. 가진 자의 부를 재분배하는 것에 남한의 기득권이 나설 리 없고, 먹고사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는 인민들의 상황이 북한의 권력자에게도 나쁘지 않다. 해결 방법이 존재함에도 남북의 지배층 모두 해법을 실행할 의지도, 필요도 없다. 그 대신 반공주의·포퓰리즘·민족주의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는 것에 골몰한다. 이렇듯 가난한 이들의 절규는 너무나도 쉽게 잊힌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 학술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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