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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접촉하면 “인생 절단”낼 태세…윤 정권, ‘검열 부활’ 꿈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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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 실태를 다룬 다큐영화 ‘차별’의 한 장면과 통일부가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에 요구한 북한 주민 접촉 경위서 공문. ㈜디오시네마·몽당...

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 실태를 다룬 다큐영화 ‘차별’의 한 장면과 통일부가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에 요구한 북한 주민 접촉 경위서 공문. ㈜디오시네마·몽당연필 제공

‘자유’를 외치며 등장한 윤석열 정부 2년차에 김수영의 시를 다시 읽는다. 검열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압사당할 것 같은 좌절감을 토로한 김수영의 시가 ‘지금-여기’에서 커다란 공명을 만들어 내서다. 특히 다시금 되뇌게 되는 김수영 시는 ‘김일성 만세’다. 1960년에 작성된 이 시는 권력의 검열과 통제에 맞서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강조한다. 자유를 탐닉했던 김수영에게 규율에 저항하는 것은 실존의 문제이자 역사적 사명이었다. 하지만 4·19 혁명이 지나고 1년여 만에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김수영은 엄청난 검열에 시달리게 된다. 그즈음에 쓴 시가 바로 ‘김일성 만세’인데, 검열에 숨죽이지 않기로 한 결기를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김수영전집’, 2018)

잘 알려져 있듯 포로수용소를 거치면서 전쟁을 몸소 경험한 김수영이 결코 ‘김일성’을 칭송했을 리 만무하다. 그가 ‘김일성 만세’를 시의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그것이 당시 남한에서 극단의 금기였기 때문이었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과 생각을 말함으로써 남한에서 금지된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고발하는 것이다. 작가라면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김수영은 끊임없이 시와 산문을 썼지만 그의 ‘불온한’ 글은 서슬 퍼런 검열에 먹잇감이 되곤 했다. 자신의 글이 통째로 삭제당하기도 했고, ‘김일성 만세’의 경우에는 2008년에 미발표 유고 중 일부로 발굴되기 전까지 ‘잠꼬대’ 혹은 ‘○○○○○’로 언급되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군부 독재 세력의 검열이 시인을 좌절에 빠뜨렸음에도 그는 더욱 치열하게 글을 쓰는 것으로 저항의 길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자유 신봉 정권 ‘검열의 진화’

60년대 김수영을 고통에 몰아넣었던 사상 검열은 60여년이 지난 현재 법과 자본을 장착한 다양한 장치로 확장되어 더욱 촘촘하게 작동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윤석열 정부는 ‘자유’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자신과 정치적 의견이 다른 이들을 ‘종북’, ‘친북’,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데 열심이었다. ‘진짜’와 ‘가짜’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활용하여 사회 곳곳에 피아를 구분하는 사고방식을 확산시켰으며, 분단과 북한을 적극 활용하여 내부의 ‘적’을 생산해 냈다. 철 지난 반공 이데올로기를 귀환시키고, 해체되었던 사회적 금기가 하나둘씩 복원되었다. 박정희 시대에 반공과 풍기문란이라는 두 가지 잣대가 사회를 규율하는 결정적 메커니즘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보면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마약 및 범죄 사범에 대한 엄벌주의를 강조한 것이나,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를 향한 ‘유흥에 빠진 젊은 세대’라는 프레임의 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다시금 등장한 반공 통치는 남북교류협력에 나섰던 시민단체를 시작으로 평화와 통일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민까지 옥죄고 있다. 남북교류협력 사업 관련 시민단체에 대한 전방위적 감사와 통일부의 남북교류협력 관련 인력과 예산 축소 등은 단순히 돈줄을 막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남북교류협력 사업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다.

더 나아가 통일부는 북한 사람들과 하는 모든 민간 접촉을 규율하고 범죄화하기까지 한다. 예컨대 지난 11월 통일부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대표,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 차별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김지운·조은성 감독에게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재일조선인과 접촉한 사유를 질의하는 공문을 발송하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조선학교의 차별 문제 해결에 힘써온 시민단체 ‘몽당연필’이나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온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중 제9조의2(남북한 주민접촉)를 들이밀며 처벌이 가능하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처벌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 민간의 접촉 자체를 국가의 입맛대로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실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하반기(7~11월)에 북한 주민 사전 접촉 신고 처리 결과를 보면 전체 39건 중에 수리된 것은 6건에 불과한 것도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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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접촉하면 인생 절단 낼 태세

통일부의 경고장은 이미 위축될 대로 위축된 남북교류협력 관련 시민사회의 공간을 압사하기에 충분한 것이며, 학술·종교·문화예술계 전반의 행동반경을 좁히는 효과를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 남북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남북교류협력법이 이렇게 작동할진대,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국가보안법이 향후 어떤 식으로 그 위세를 떨칠지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금처럼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1960년대 김수영이 싸운 검열과는 차원이 다른 방식의 검열 체계가 작동한다는 데 있다. 표면적으로는 ‘법률’에 입각한 ‘정의로운 법 집행’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과태료 징수, 검찰의 기소와 압수수색, 고소와 고발 등을 통해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일상 자체를 위협한다. 정의로운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근근이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시민단체나 풍요롭지 않은 삶을 마다하지 않고 영화 작업에 매진하는 예술가들에게 법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단순히 활동의 위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의미다. 혹여 사안이 중요해서든, 아니면 정치적 노림수 때문이든 검찰이 나서 기소라도 하게 되면 힘없는 개인이나 시민단체는 산산조각이 난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했듯 아무리 대법원에 가서 무죄판결이 나더라도 몇년 동안 검찰 조사와 재판을 거치게 되면 결국 “인생이 절단”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에 의한 규율의 마지막 노림수는 무엇일까? 통일부는 시민사회의 비판이 쇄도할 것을 알면서도 남북 민간 접촉의 엄격한 통제를 천명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정부는 남북 접촉의 법적 문제와 수많은 곤란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는 듯하다. 모두에게 스스로 알아서 민간 접촉을 삼가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종북’으로 몰리기 싫으면 북한하고는 교류와 협력을 말하지도, 상상하지도 말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법을 활용한 새로운 검열의 목표다.

물리적 힘을 동원한 검열은 김수영 시인의 주체성을 말살할 수 없었지만, 법을 통해 삶과 일상을 위협하는 방식은 주체가 자신을 검열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폭력적이다. 그만큼 자기 검열은 주체 스스로 무릎 꿇게 함으로써 자기 비하로 귀결되기에 한없이 위험하기까지 하다. 김수영이 검열을 “수많은 천재의 출현을 매장하는 하늘과 땅 사이만 한 죄”(‘반시론’)로 규정했다면, 2023년 한국 사회를 장악한 새로운 방식의 검열은 자유롭게 사유하며 말하는 주체의 몰락을 목적으로 한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의 학술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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