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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레바논 침공과 닮은 가자 전쟁…바이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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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남부 라파흐에서 이스라엘이 공습한 주거용 주택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희생자를 찾고 있다. UPI 연합뉴스 1982년 6월6일 이스라엘방위군(IDF...

지난 23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남부 라파흐에서 이스라엘이 공습한 주거용 주택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희생자를 찾고 있다. UPI 연합뉴스

1982년 6월6일 이스라엘방위군(IDF)은 레바논을 전격 침공했다. 약 20년간 지속된 길고 긴 전쟁의 시작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갈릴리 평화 작전’으로 명명된 이 침공은 영국 주재 이스라엘대사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아부니달기구’에 암살당하자 그 보복으로 시작됐다. 아부니달기구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경쟁 관계인데, 이스라엘은 이 사건을 기화로 레바논 남부에 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박멸하려 했다. 애초엔 레바논에 40㎞까지만 진공해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소탕한 뒤 48시간 내로 철수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리엘 샤론 당시 국방장관과 라파엘 에이탄 참모총장은 이스라엘군을 더 깊이 진군시켰다.

당시 메나헴 베긴 내각을 장악한 샤론 등 강경파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확전의 길로 갔다.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까지 진격해 봉쇄하다가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력 끝에 9월29일에야 철군했다. 이 작전 동안 이스라엘군은 1만6천명의 난민이 있던 순교자 캠프에서 탱크 공격에 더해 화학탄인 황린탄까지 사용해 2600명을 학살했다. 베이루트 서부의 사브라-샤틸라 난민캠프에서도 이스라엘군의 지원을 받은 우익 기독교민병대가 이틀 동안 고문과 성폭력 등 잔학 행위를 벌이며 2천명을 학살했다. 작전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는 1만9085명이 사망했고 그중 80%가 민간인이었다. 팔레스타인 쪽의 통계로는 4만9600명이 죽었다. 이스라엘 병사 전사자는 364명이었다.

이스라엘, 위험한 ‘가자 점령’ 구상

이스라엘이 베이루트 봉쇄를 풀고 철군하는 조건으로 해방기구도 레바논을 떠나는 타협이 이뤄져 작전은 4개월 만에 끝났으나, 레바논 전쟁은 1985년까지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이 침공으로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라는 더 새롭고 강력한 적을 만들어냈다. 갈릴리 평화 작전을 계기로 세력을 키운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세력인 헤즈볼라 때문에 이스라엘은 2000년까지 레바논 남부에 주둔해 싸워야 했다. 1216명의 병사가 죽었다.

이스라엘은 이 침공으로 2000년까지 레바논 덫에 빠져서 자신들의 ‘베트남 전쟁’을 치러야 했다. 1982년 레바논 전쟁은 또 중동의 지정학을 바꿨다. ‘이란-시리아-레바논의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연대가 반미-반이스라엘 저항의 축으로 부상했다.

지난달 7일부터 계속된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은 여러 점에서 1982년 레바논 전쟁과 동일하다. 이스라엘이 적을 박멸하겠다는 의지만 갖고 시작해, 그 외에는 출구 전략이 없다. 그래서 주변 세력들이 모두 개입하는 장기전이 될 수 있다. 가자에서 이스라엘은 전쟁 종식이나 그 이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레바논에는 국제평화군이 주둔해 전후 관리를 했음에도 전쟁이 계속됐다. 대책으로 거론되는 아랍 국가들의 평화유지군 가자 주둔이나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가자 통치 모두 당사자들은 일축하고 있다.

현재 구체적인 구상으로는 이스라엘의 가자 군사점령만이 유일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7일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과 한 회견에서 하마스와의 전쟁 뒤 “이스라엘은 전반적인 안보 책임을 무기한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점령을 지속하겠다는 말이다. 네타냐후 내각의 극우세력들은 가자 주민을 쫓아내고 재점령하자는 안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 내각에서는 가자를 점령한 뒤 주민들을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로 방출하는 방안을 논의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네타냐후의 보좌관인 마르크 레게브는 지난 18일 미국 엠에스엔비시(MSNBC)와 한 회견에서 하마스 대원들을 지하터널에서 제거하기 위해 이스라엘군이 남부 최대 도시 칸유니스에 진군할 필요가 있다며 주민들의 소개를 요구했다. 그는 주민들이 하마스의 군사력과 시설들을 가려줄 기존의 도시 사회기반시설이 없는 지중해 연안의 서쪽으로 간다면 “다시 이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가자 남부로 몰려든 피난민들을 기존의 도시로부터 다시 소개해, 허허벌판의 임시 난민촌으로 보내서 이집트 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게 하겠다는 의미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흔드는 일을 이스라엘이 저지르면 미국이 묵인하는 패턴이 반복될 수 있다. 가자 난민이 봇물처럼 터진다면 이집트도 어쩔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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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 이후’ 더 강력한 저항세력 나올 수도

이스라엘의 가자 군사점령 장기화는 이미 이스라엘을 상대로 주기적인 교전을 벌이는 헤즈볼라, 시리아·이라크의 미군 시설을 공격하는 친이란 무장세력들의 공격을 상시화할 것이 분명하다. 이스라엘 주변에서 장기적인 저강도, 혹은 고강도 전쟁이 지속된다는 뜻이다. 새롭게 폭증한 팔레스타인 난민 사이에서는 더 새롭고 강력한 저항단체가 출현할 것이다. 1982년 레바논 전쟁이 헤즈볼라라는 새로운 반이스라엘 세력을 만들고, 레바논 등 이스라엘 주변을 전쟁터로 20년간 지속시킨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

가자 전쟁 해법의 유일한 조건은 이스라엘의 무조건적인 공격 중단이다. 거기서부터 정치적 해법이 나올 수 있다. 그것만이 이스라엘이 가자 덫에 빠지지 않고, 주변으로 확전을 막는 방안의 시작이다. 24일부터 가자에서 나흘간의 전투 중지와 인질 석방이 합의됐다. 이를 계기 삼아 휴전으로 가야 한다.

1982년 갈릴리 평화 작전 때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3개월 동안이나 봉쇄하며 공격해 인도적 참상이 지속되자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베긴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화해 폭격 중단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는 “우리 텔레비전에 매일 밤 주민들이 이 전쟁의 상징으로 비치고 있다. 이는 홀로코스트”라고 강력히 질타했다.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이 무기협정을 어겼다며 집속탄 지원도 중단했다. 이스라엘이 베이루트 봉쇄를 풀고 철군한 이유다. 미국이 나서야 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레이건 전 대통령처럼 할 수 있을까? 가자 전쟁은 기로에 섰다.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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