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으로서 일본의 조선 상대 범죄 입증하고 싶었죠”
Summary
히구치 유이치 전 고려박물관장. 길윤형 기자 “저는 일본인이니까 일본이 (조선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 행위를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이니치 조선인’...
히구치 유이치 전 고려박물관장. 길윤형 기자
일제가 조선인에게 끼친 피해 중심
여러 실증적 연구 업적 낸 시민연구자
일경이 만든 조선인단체 연구 대표작
잡지 ‘재일조선인사연구’ 53호째 발간 “일본, 쌀 수탈 위해 조선 식민지배
아베 총독 1945년 상신서 연구할 터” 그가 한반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메이지학원대학 때였다. 졸업을 앞두고 우연히 읽은 ‘조선민족해방투쟁사’라는 북한 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 책을 통해 일본에 조선인이 살고 있으며 새 역사를 만드는 것은 민중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회인이 되면 조선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대학을 마친 그는 조선에 대해 알고 싶어 당시 북-일 교류를 추진하던 공산당 계열 단체인 일조협회(1955년 설립)를 찾아갔다. 이를 계기로 한반도에 관심 있는 일본인 연구자·언론인들이 모여 만든 일본조선연구소(현 현대코리아연구소)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금병동(1927~2008)·박경식(1922~1998) 등 자이니치 역사 연구자들과 만나게 된다. 특히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1965)이라는 선구적 저작을 남긴 박경식이 숨진 뒤 그가 만든 재일조선인운동사연구회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재일조선인사연구’라는 잡지(지난 10월 53호 발행)를 발행하는 중이다. 그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평범한 조선인들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이다. “일본이 왜 조선을 식민지배 했을까요. 쌀 수탈을 위해서였습니다. 식민지배를 시작한 뒤 조선총독부는 조선에 일본식 농법을 도입합니다. 조선 농민에게 값싼 쌀을 생산하게 해 일본의 국내 물가를 안정시키고 식량 위기를 넘긴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강제동원 노동자들에게 (공장이나 탄광 등에서) 폭력을 행사해 일을 시켰다고 하지만, 더 심한 것은 (식민지배 말기) 쌀을 공출할 때였습니다. 경찰 입회 아래 공출독려원과 면 서기가 집집을 돌며 숨긴 쌀이 있는지 찾으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농민 개개인은 고립돼 있으니 조직적 저항을 할 수 없었습니다. 생산한 쌀을 다 공출해가면, 조선 농민이 먹게 되는 건 만주에서 생산한 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이었습니다.” 여든이 넘었지만 그의 집필 의지는 여전해 보였다. 현재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는 조선의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1875~1953)가 1945년에 쇼와 일왕에게 올린 상신서이다. “일본 내무성이 1945년 한해에만 조선에서 100만명을 노동 동원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1년에 무려 100만명입니다. 이를 천황에게 보고하며, 일본의 조선 지배에 대해 설명합니다. 다음엔 그에 대한 책을 쓰려 합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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