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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많은’ 한국, 난민 인정은 꼴찌…“낯선 존재에 경계심…이해·소통 필요”

Summary

유엔난민기구(UNHCR)의 ‘2022 글로벌 동향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전세계 강제이주민은 1억840만명으로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중 3530만명은 전쟁이나 자연재...

유엔난민기구(UNHCR)의 ‘2022 글로벌 동향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전세계 강제이주민은 1억840만명으로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중 3530만명은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삶터를 잃고 국경을 넘은 난민이었다. 올해는 한국이 1992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해 이듬해 발효된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우리나라가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해 이듬해부터 시행한 지 꼭 10년째이기도 하다.

지난해 한국 정부의 유엔난민기구 기여금은 2820만달러(약 380억원), 민간 부문의 후원금은 4920만달러(약 664억원)로, 유엔난민기구 파트너십 주요 10개국 중 하나다. 한국은 특히 민간 후원금이 정부 기여금보다 많고, 기업보다 개인 후원이 더 많은 몇 안 되는 나라로 꼽힌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난민 인정률은 세계 주요국 가운데 꼴찌 수준으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2022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난민 신청은 1만1539건이었다. 이 가운데 심사 완료는 절반가량인 5463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141명에 그쳤다. 난민 인정률 2.6%. 한국이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 이후 30년 내내 인정률 2% 안팎을 넘나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10분의 1 수준이다. 난민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심하다. 이처럼 현저한 불균형의 이유는 뭘까?

난민 캠프서 느낀 ‘인간의 너그러움’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의 전혜경 대표는 “어려운 처지의 인간에 대한 공감과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의 공존”으로 설명했다. 전 대표는 다음달 1일로 한국대표부에 부임한 지 꼭 1년을 맞는다. 2008년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가 설립된 이후 첫 한국인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2001년 유엔난민기구에 들어가 2006년까지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일했으며, 그 뒤 유니세프 칠레 대표부 대표와 뉴욕 본부 사무국장, 유엔난민기구 아프가니스탄 사무소 부소장, 미얀마 대표부 대표 등을 지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무교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년간 특기할 만한 감회가 있나요?

“두 가지 점에서 놀랐습니다. 하나는 한국 사회가 난민이나 이주민에 대해 이전보다 좀 더 열려 있다는 것. 많은 외국인 난민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해 생활하고, 난민 지원 엔지오(NGO·비정부기구) 들의 활동도 활발했어요. 다른 하나는, 한국도 선진국인데 아직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모든 아동이 법적 지위·국적에 상관없이 출생국 정부에 출생 사실을 등록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가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어요.”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와 난민 이슈가 어떤 관련이 있나요?

“한국 체류 외국인들은 대부분 출신국의 주한 대사관에 가서 신생아 출생 등록을 하는데, 난민과 비호 신청자(자신이 난민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직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는 자국 대사관에 갈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난민 인정자의 자녀도 출생 등록을 못 하면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거죠. 뒤늦게나마 공론화가 되고 입법이 추진되고 있어 다행입니다.”

―전 세계에서 난민을 포함해 강제 이주민이 1억명을 넘었고 해마다 최고 기록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미 발생한 분쟁 상황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분쟁이 발생하면 또 난민이 생기는 게 안타깝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초에도 튀르키예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에서 큰 지진이 나고 수단에선 기근이 심해져서 난민과 이재민이 많이 나왔어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째인데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또 전쟁이 터지고…. 대형 자연재해와 분쟁이 많아 복합적으로 더 힘들어지는 같습니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죠.”

전혜경 대표가 지난해 9월 미얀마의 한 난민 캠프를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제공

―세계의 난민 캠프들을 직접 돌아볼 기회가 많았겠네요.

“아프리카·아프가니스탄·미얀마 등 여러 곳의 난민 캠프를 가봤습니다. 보건위생·식량·물·교육 등등 부족한 게 많아 힘들죠. 그런데 저는 많이 배워요. ‘인간의 힘’이라고 할까,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는 분들의 삶의 의지가 매우 강해요. 서로 구호물품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라며 양보하고, 오히려 그분들이 무엇이든 기여하고 싶어 합니다. 인간의 너그러움을 그런 곳에서 발견하는 게 놀랍고 감동적이죠.”

―팔레스타인은 그 자체로 거대한 감옥이자 난민 캠프 같은 곳인데, 가자지구에서 또다시 전쟁이 터졌습니다.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는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가 맡지만 우리도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봅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정치화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인도주의적 구호는 순수하게 인도주의적으로 할 수 있도록 비정치화하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한국은 2024년부터 2년 동안 유엔 안보리 이사국(비상임)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한국이 그런 부분에서 건설적인 다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나 무력 충돌뿐 아니라 기후변화, 자연재해, 산업개발과 도시화 등에 따른 환경 난민도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새로 발생한 난민만 6090만 명인데, 지진·홍수 등 자연재해와 기후 변화에 따른 난민이 53%(약 3260만 명)를 차지해 전쟁난민(약 2830만 명)보다 많았는데요.

“기후변화와 환경 재난이 분쟁을 더 악화시키는 현상에도 주목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인도주의 업무 기구이지만 환경, 개발 관련 기구나 세계은행 같은 다른 분야의 기구들과도 협업하죠. 예를 들어, 그 기구들이 당사국 정부와 업무 협약을 할 때 난민 수용 지역도 포함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난민 문제는 수많은 섹터(분야)가 얽혀 있어 유엔난민기구 혼자서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 만큼, 파트너십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일합니다.”

난민들에게 대한민국은 ‘우리나라’

―한국은 유엔난민기구에 대한 재정적 기여는 많은데 난민 인정률은 2% 안팎으로 매우 낮습니다.

“그게 제 의문이기도 했어요. 처음엔 이게 ‘0’이 한개 빠진 거 아냐? 이렇게 생각했죠.(웃음) 인정률만 보기보다는 포괄적인 시스템을 봐야 할 것 같아요. 올해가 한국에서 난민법이 시행된 지 10년째잖아요. 난민 문제를 돌아보고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난민들이 한국에 첫발을 들였을 때부터 사회에 적응하고 공동체 구성원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조율하면 좋을지 세심하게 점검하고, 난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이해도를 높여야죠. 난민들은 우리에게 뭘 빼앗으려고 온 게 아니라 다른 선택이 없어서 오는 분들이니까, 그들이 어떻게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도 살펴보고, 그러면 인정률도 더 올라가지 않을까요.”

―난민 신청자와 민간 지원단체에서는 한국 정부의 관리들이 난민 응대와 심사 과정에서 인간적 모멸감을 준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습니다.

“저희 기구가 법무부와 협업해 여러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면접 기술, 난민 신청자의 진술 평가, 신청자의 국가 상황 조사, 난민 심사 전반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또 난민 심사를 할 때 특정 종교나 문화권 출신 신청자들에 대한 응대법, 신청자가 어린이 또는 여성일 경우 고려해야 하는 것들도 교육하죠. 난민 심사도 스트레스가 많은 직종이에요. 극적인 상황, 생사를 넘나드는 얘기들을 많이 듣잖아요. 담당관들이 순환 보직을 하고 정신건강도 보살피면서 동시에 전문성이 꾸준히 쌓일 수 있도록 시스템과 제도로 뒷받침해야죠.”

‘세계 난민의 날’이었던 지난 6월20일 전혜경 대표(오른쪽 둘째)가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대한민국에서 난민,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란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제공

―2018년 예멘 난민 500여명이 제주도에 한꺼번에 왔을 때 한국 사회에선 수용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셌습니다. 특히 “국민이 먼저다”라는 반대 구호는 인도주의적 보호를 ‘우리’와 ‘그들’로 나누고 편견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모르는 것, 낯선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큰 것 같아요. 그런 현상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죠. 지금은 한국도 외국인 체류자들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예멘 난민 논란이 불거졌을 때, ‘기껏 500명인데? 지금 농담하는 거야? 0이 몇개 빠졌나?’ 그랬죠.(웃음) 그런데 몇몇 선진국뿐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나라에서 외국인이 한국에 많이 오고 살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정도밖에 안 됐잖아요. 2021년 8월에 한국 정부가 아프간 난민 390명을 받아들였죠. 그 1년 뒤에 제가 울산에 가서 아프간 난민 정착민들을 만나 뵀거든요. 처음엔 학교든 택시든 동네 슈퍼든 (주민들의) 거부감이 심해서 힘들었다는데, 지금은 아프간 아이들이 한국 친구도 많고 학교에서 그냥 보통 아이들처럼 어울려 지내고, 아프간 여성들도 한국 아줌마들과 친해지고 ‘이제 우리도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거든요. 한국 사회에 적응해 스스로 삶을 꾸려갈 의지를 보이는 거죠. 지금 한국은 심각한 고령화 저출산 국가잖아요. 10년 뒤에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난민을 포함해 훨씬 더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을 거예요. 저희가 그분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유익하게 공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난민이나 이주자들의 사회통합이 ‘흡수·동화’인지 ‘다문화 공존’인지를 놓고도 이견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뭘 원하는지도 중요한 것 같아요. 난민들은 수용국에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해요. ‘내가 죽을 수도 있는데 이 나라에서 나를 받아줬고, 이 사람들이 나를 보호해 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귀화를 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 사회에 기여를 하고 싶은 분들이에요. 안산과 동두천에서 난민 아이들도 만났는데, 우리말 너무 잘하고 대한민국이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고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시민권과 다른 정체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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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 정 많아…알게 되면 잘해줘”

―이른바 ‘가짜 난민’ 논란은 어떻게 보나요?

“가짜 난민은 없어요.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 인정을 못 받은 사람, 인정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인 사람,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밖에 없어요. ‘가짜 난민’이라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분의 관념에서 나오는 거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난민 심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정비하고 제도화하는 겁니다. 효율적이라는 게 신속한 처리뿐 아니라, 충분히 심사숙고한 결정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도록 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거고, 그렇게 시스템에 신뢰가 쌓여야죠.”

―한국 사회가 외국인에 대해 선택적 편견을 갖고 ‘인종차별’을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요?

“한국인은 정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상대를 알게 되면 엄청 잘해줘요. 그런데 난민들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뉴 키즈 온 더 블록’(새로 온 사람들)이잖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랙션(상호작용)이 많아지고 서로를 알게 되면 더 좋게 바뀔 거라 기대합니다. 너무 낙관적인가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 못 하죠.(웃음)”

―난민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포용성 확대를 위한 네트워크를 강조하셨는데, 시행 또는 구상 중인 연대 프로그램이 있나요?

“오는 12월 유엔난민기구 본부에서 ‘글로벌 난민 포럼’이 열립니다. 한국 대표부도 그걸 준비하면서 정부 쪽 파트너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어요. 우리 기구의 정우성 친선대사님과 젊은 친구들이 토크 콘서트도 하고, 세계태권도연맹이 이미 2016년부터 요르단 내 시리아 난민 캠프에 태권도 아카데미를 세워서 수업을 해주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대한태권도협회가 그런 일을 해주시기로 했고요. 여러 방면에서 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소통하는 장들을 많이 만들고 있어요.”

―난민 보호라는 인도주의가 국제 정치의 현실과 상충할 때 절망감이나 무력감을 느끼진 않나요?

“어떻게 하면 어려움을 뚫고 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하죠. 현장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그냥 앉아 있지 않거든요. 난민 캠프나 구호 현장에서는 정작 본인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뭐든 나누려 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희도 더 잘하고 싶고 더 많은 분한테 지원을 해드리고 싶죠. 다행히 언제나 도와주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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