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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달러 쏟은 ‘일대일로’ 10년…‘중국몽’은 확장, 일부 국가 ‘빚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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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일대일로 사업으로 건설 중인 인도네시아 반둥-자카르타 고속철도의 모습. 총 142㎞로 이번달 개통했다. 중국 일대일로망 누리집 갈무리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함께 건설하자.” ...

중국 일대일로 사업으로 건설 중인 인도네시아 반둥-자카르타 고속철도의 모습. 총 142㎞로 이번달 개통했다. 중국 일대일로망 누리집 갈무리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함께 건설하자.”

2012년 11월 치열한 내부 투쟁 끝에 중국 최고지도자인 공산당 총서기직에 오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9월7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의 나자르바예프대학에서 그동안 가다듬어온 ‘육상 실크로드’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자신을 상징하는 핵심 대외정책으로 자리잡게 될 ‘일대일로 구상(이니셔티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날 일대일로의 절반인 ‘일대’(하나의 벨트)를 발표한 시 주석은 한달여 뒤 인도네시아에서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내놨다. 일대일로의 또 다른 절반인 ‘일로’(하나의 길)를 소개한 것이었다.

당시 이 계획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중국 정부가 이듬해 실크로드 기금을 만들기로 하고, 2015년 3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외교부·상무부가 공동으로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계획을 합쳐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공동 건설 추진의 비전과 행동’이라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중국을 기점으로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를 육상과 해상으로 잇는 경제·문화 교류 벨트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곧 ‘일대일로 구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케냐 마차코스에 중국과 케냐가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건설 중인 콘자 변전소 건설 현장을 한 노동자가 점검하고 있다. 중국 일대일로망 누리집 갈무리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일대일로 구상은 지난해 말 기준 150여개 국가에서 2조달러(2680조원)대 사업이 진행되는 중국 주도의 글로벌 프로젝트로 성장했다. 중국은 시 주석이 제안한 이 구상이 “인류 공동 발전에 기여하는 국제 공공사업과 협력의 새 모델이 됐다”고 자평한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꿈’(중국몽)을 실현하는 게 중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이를 전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17~18일 130여개국을 베이징에 불러 일대일로 구상 10년을 자축하는 행사를 연다. 이 행사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외국 방문을 자제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참석한다. 시 주석과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일대일로 구상의 핵심 키워드는 기반시설(인프라) 건설이고, 그 대상은 개발도상국이다. 중국은 자본·기술이 부족한 아프리카·동남아시아·남미 등 개발도상국에 항구·댐·도로·다리·철도·가스관 등을 건설해준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민간 대출 혹은 차관 형태로 상대국에 돈을 빌려주고, 인력·기술을 갖춘 중국 기업이 직접 현지에 진출해 건설에 참여한다. 그 때문에 이 구상이 국내 시장 개척에서 한계에 이른 중국 내 자본·건설장비·인력 등을 외국에 진출하도록 하는 사업이라는 냉소 섞인 지적도 나온다.

어찌 됐든 개발도상국은 이 사업에 참여해 다양한 인프라를 확보하는 과실을 얻는다. 일대일로 관련 공식 누리집인 중국 ‘일대일로망’에 올라온 내용을 보면, 이번달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중국 수력국제공정공사가 건설한 변전소가 완성돼 인도됐고,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중국철도자원그룹과 중국전력건설그룹이 참여한 수력발전소가 완공됐다. 지난달에는 우즈베키스탄에 하루 7500t의 시멘트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중국에너지건설이 참여한 가운데 완성됐다.

사업 가운데는 무상으로 이뤄지는 것들도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 부룬디에 대통령궁을 지어줬고, 짐바브웨에는 국회의사당을 선물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지어진 아프리카연합(AU) 건물 역시 중국이 무상 기증한 것이다. 이렇게 중국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100여개 나라와 일대일로를 계기로 체결한 사업의 누적액은 2조달러이고, 완성된 사업은 1조3천억달러에 이른다.

일대일로 사업으로 인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여론조사 결과로도 나타난다.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이치코비츠 가족 재단’이 아프리카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중국은 영향력 부문에서 77%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로 조사됐다. 미국은 67%로 2위였다. 이치코비츠 재단은 “다른 나라들이 아프리카 개발에 거의 참여하지 않을 때 중국은 꾸준히 참여했고, 결국 정상에 올랐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설문 조사에서도 미국·서유럽·한국 등에선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70~80%에 달했지만, 나이지리아(15%)·케냐(23%)·인도네시아(25%)·멕시코(33%) 등 일대일로에 적극 참여한 국가들에선 크게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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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대일로의 ‘그림자’는 매우 짙고 길다. 개도국에 대한 지원이 높은 이자가 붙는 ‘대출’ 형식으로 이뤄지는 탓에,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상환하지 못해 파산하거나 빚에 쪼들리는 나라들이 생겨났다. 저개발 국가의 인프라 구축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사업으로 인해 채무국들이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일대일로가 ‘부채의 덫’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의 자금에 국제통화기금(IMF)보다 약 두배 많은 연 5% 금리를 적용한다. 미국 글로벌개발센터(CGD)는 지난 3월 일대일로 참여국 중 23개국이 중국에서 자금을 과도하게 빌린 탓에 ‘상당히 높은 수준’의 부채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로 인해 파산한 나라도 있다. 중국 국유은행에서 66억달러를 빌렸다가 갚지 못한 잠비아는 2020년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다. 전체 부채 중 중국 부채 비율이 52%에 이르는 스리랑카도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고 현재 중국과 부채 상환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빚을 갚지 못해 2017년 일대일로 사업을 계기로 건설된 함반토타 항구 지분의 80%를 중국에 넘기기도 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미국 등은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일대일로 구상을 ‘부채의 덫’이라고 비판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겨냥해 “기본적으로 부채와 올가미 협정”이라며 “그들(아프리카 등 국가)은 (중국에) 채무가 있고 진짜 곤경에 처했다”고 말했다. 상대국의 상황이나 사업의 적절성 등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 쪽 공식 발표를 보면, 일대일로 계좌에 현재 3천억달러(40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대출 잔고가 쌓여 있다. 서구에서는 이 액수가 과소 계산됐다고 의심한다.

중국은 이런 비판을 부인한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3월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어느 나라에도 대출을 규제하거나 상환을 강제한 적이 없다”며 “대출 계약에 어떤 정치적 조건도 달지 않으며 어떤 정치적인 이익도 추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발전을 추구하는 개발도상국에 돈을 빌려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며, 강제로 돈을 쓰도록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대일로가 ‘부채의 덫’이 아니라는 주장이지만, 내부적으로도 높은 금리 등 일부 부작용을 인정하고 개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차관의 상환 기간을 늘리고, 금리를 낮추는 식으로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부채는 탕감도 한다. 중국은 지난해 8월 진행된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에서 2021년 말 상환 만기인 아프리카 17개국의 대중국 무이자 대출 채무 23건을 탕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탕감 액수는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대출 가운데 탕감 대상인 ‘국가 간 무이자 대출’의 액수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중 일대일로 막아라’…분주히 움직이는 미국·유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핵심 대외정책인 ‘일대일로 구상’이 10년째 진행되고 성과도 내면서, 미국과 유럽이 이를 견제하기 위한 맞대응 사업을 고심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을 끌어안기 위한 인프라 지원 경쟁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일대일로 구상에 맞서기 위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21년 6월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40조달러(5경4200조원)짜리 초대형 글로벌 사업인 ‘더 나은 세계 재건’(B3W) 구상을 발표했다. 다른 주요 7개국 국가들과 함께 2035년까지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는 데 40조달러를 투입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언적인 성격이 강한 이 구상을 지난해 6월 독일에서 열린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구체화시켜 ‘글로벌 인프라 투자 파트너십’(PGII)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출범시켰다. 2027년까지 미국이 2천억달러(271조원), 다른 국가들이 4천억달러(542조원)를 조달해 글로벌 인프라 투자를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초에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지리적으로 맞대응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 구상도 내놨다. 인도·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프랑스·독일 등과 힘을 합쳐 인도·중동·유럽을 잇는 경제회랑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참가국들은 향후 60일 안에 만나 관련 시간표와 행동 계획을 만들 계획이다.

이 사업은 규모 면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동, 중국의 ‘맞수’인 인도, 일대일로에 참여하지 않는 프랑스·독일 등 서유럽 주요 국가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고, 중동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중요 계획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도 2021년 12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대응하는 ‘글로벌 게이트웨이 구상’을 내놨다. 2027년까지 개발도상국에 3천억유로(427조원) 상당의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세계적 관문’이라는 의미가 담긴 글로벌 게이트웨이는 전세계 환경 보호, 보건 안보, 공급망 안정 등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이 구상은 미국이 주도하는 ‘더 나은 세계 재건’ 구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유럽연합은 올해 초 우선 추진할 프로젝트로 △흑해 해저 디지털 케이블 △지중해-북아프리카 연결 해저 광케이블 △카메룬 댐·수력발전소 등 70개 프로젝트 초안을 선정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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