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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쓴소리·펀쿨섹좌...‘기시다 이후’ 노리는 잠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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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자민당에 정치 개혁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조직)가 필요합니다. 당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전모를 밝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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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에 정치 개혁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조직)가 필요합니다. 당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전모를 밝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한때 ‘흘러간 인물’로 여겨졌던 이시바 시게루(66) 전 자민당 간사장은 지난 19일 일본 정계를 강타하고 있는 집권 자민당의 ‘비자금 문제’라는 민감한 현안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는 자민당에 지금은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며 당이 이번 사태를 자체 조사해 과감한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소신 발언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앞선 11일엔 자민당에선 처음으로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사임’ 얘기를 꺼내 들었다. 그는 이날 민영방송 ‘비에스(BS)후지’에 나와 “(2024년도) 예산안이 통과되면 (기시다 총리가) 그만두는 것(방법)도 있다”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어디선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민당의 최대 파벌 아베파가 비자금 사태로 큰 타격을 받으면서 비주류의 대표 인사인 이시바 전 간사장이 ‘차기 총리’감으로 다시 여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모습이다.

자민당 주요 파벌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10~20%대로 급락하자, 나가타초(총리 관저, 국회의사당이 있는 거리)에선 ‘포스트 기시다’에 대한 논의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기시다 총리를 끌어내리려는 ‘기시다 오로시’가 본격화된 상황은 아니지만, 차기 총리 자리를 노리는 다양한 후보가 발 빠르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이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네번이나 도전했다 실패했던 이시바 전 간사장이다. 실제 일본 주요 언론의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차기 총리’ 지지도에서 단연 1위에 올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역시 총리에 대한 의욕을 조심스레 드러내고 있다. 지난 7일 마이니치신문에 차기 총리 도전과 관련해 “(의사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다만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거나 단독 과반을 잃거나 하는 그럴 위기 상황이 아니면 당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의 이 말은 자민당 내엔 파벌을 매개로 일반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논리로 움직이는 자신들 나름의 정치 공학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이시바는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줄곧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왔지만, 2008년 이후 자민당 총재직에 네차례 도전해 번번이 패했다. 국민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세력이 약한 탓이었다.

일본의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는 1차에선 국회의원과 지방 당원·당우들이 절반씩(각각 383표) 투표권을 갖는다. 여기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면 선거는 그대로 종료되지만, 출마자가 3명 이상인 경우가 많아 보통 2차 결선 투표가 이뤄진다. 결선 투표는 1차와 달리 국회의원이 각각 1표씩을 갖고, 지방 당원들의 표는 각 도도부현별로 1표씩으로 줄어든다. 즉,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커지는 셈이다. 이런 자민당 총재 선거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선거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장기 집권’의 문을 연 2012년 9월 선거였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1차 투표에서 1등을 했지만, 2차 결선에서 역전패를 당했다. 이후 그는 7년8개월 동안 이어진 ‘아베 장기 집권’ 시절 당내에서 유일하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인사가 된다.

절치부심한 이시바 전 간사장은 2015년 9월 자신의 소수 파벌을 만들었다. 그러나 소속 의원들은 각료나 당 간부로 기용되지 못하는 등 푸대접을 받았다. 결국 2021년 9월 총재 선거 땐 출마를 포기하고, 12월 스스로 파벌을 해체했다. 총리직 도전을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비자금 문제로 자민당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자 파벌이 없고 할 말을 하는 이시바의 몸값이 갑작스레 올라가게 됐다. 자민당의 한 중진 인사는 아사히신문에 “이번이 이시바에겐 최고의 기회”라고 말했다.

고이즈미 신지로(42) 전 환경상은 이시바와 함께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로 1~2위를 다투는 정치인이다. 그 역시 최근 직접 주도해 초당파 의원모임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22일 여당인 자민당·공명당, 야당인 입헌민주당·일본유신회 등 소속 의원 40여명이 ‘라이드셰어’(승차공유) 공부 모임을 시작했다. 차기 총리를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이 이어졌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기시다 총리와 ‘앙숙’ 관계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스가 전 총리는 지난달 15일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고이즈미가 총리 후보자라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반드시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라며 “시기는 모르겠지만 그런 정치인”이라고 한껏 추켜세운 바 있다. 스가 전 총리는 무파벌 의원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2001~2006년 총리를 지낸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차남이다. 28살인 2009년 중의원에 처음으로 당선됐고 아베 내각인 2019년, 38살의 나이에 환경상으로 발탁된다. 하지만 그해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기후변화 같은 문제를 대할 때는 즐겁고 쿨하고 섹시해야 한다”는 황당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한국에서도 ‘펀쿨섹좌’라는 별명을 얻으며 ‘준비 안 된 지도자’라는 인상을 남겼다.

2021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총리와 맞붙어 패배한 고노 다로(60) 디지털상도 차기 총리를 노리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고노 디지털상은 기시다 내각이 출범할 때부터 각료로 임명된 만큼, 대놓고 독자적 행보를 하기 어려운 처지다.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을 끌어내린 원인 중 하나인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마이 넘버 카드’ 담당 장관으로 정보 오류 등 문제가 터져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차기 총리’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달렸지만 ‘마이 넘버 카드’ 논란 뒤 3위로 떨어진 상태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1993년)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의 장남으로 방위상·외무상 등을 지내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한때 아베노믹스를 비판하고, 탈원전 정책을 적극 주장하는 등 일본 내에선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260만명의 팔로어를 보유하는 등 일반 대중과 적극 소통하고 있다. 그런 거침없는 성격 때문에 당내에선 ‘지도자로는 불안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지통신은 “중견 의원 중심으로 (고노와 관련해) ‘무엇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반응이 나온다. 당이 큰 위기 상황에 빠지지 않는 한 (총리로) 나갈 차례가 될 가능성이 낮다”고 전했다.

기시다 후미오(가운데) 일본 자민당 총재가 2021년 10월4일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총리 지명 선거에서 새 총리로 선출된 뒤 축하 박수를 받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지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위를 기록했던 다카이치 사나에(62) 경제안보담당상도 지난달 15일 ‘일본의 힘’ 연구회라는 국회의원 모임을 만드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월 1~2회 모여 외교·방위·경제·기술·정보·인재 등 일본의 국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다. 아베 전 총리보다 더 극우적인 사상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은 내년 총재 선거와 관련해 “또 싸우겠다”며 출마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의원모임은 내년 총재 선거의 출마를 응시한 정책 마련과 기반 굳히기라는 견해가 있다. 자민당을 뿌리 깊게 지지하는 ‘확고한 보수층’의 지지를 모으기 위한 의도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아베 전 총리가 부재한 상황 속에서 얼마나 독자적인 정치력을 발휘할지가 관건이다.

지난 14일 개각에서 내각의 ‘2인자’ 자리인 관방장관에 오른 하야시 요시마사(62) 전 외무상도 오래전부터 총리가 되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아사히신문은 “역대 총리 중 관방장관 출신이 많아 하야시 장관에게는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전했다. 이 밖에 자민당에서 세번째로 큰 파벌인 ‘모테기파’를 이끌고 있는 모테기 도시미쓰(68) 간사장도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일본 정계에선 2024년도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는 내년 3월이 ‘기시다 오로시’가 시작될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진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대로 가면 자민당 자체의 지지율이 떨어져 정권도 흔들릴 수 있다”며 “내년 봄까지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으면 총리에 대한 퇴진 압박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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