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Stories:
산업

기후위기의 골든타임과 양치기 소년 딜레마

Summary

코로나19 같은 재난은 서서히 진행되기에 골든타임을 놓치기가 쉽다. 픽사베이 “개미구멍은 천길 제방을 무너뜨리고, 굴뚝 틈새는 백척 집을 불태운다.”(한비자) 중국 위나라에 치수의...

코로나19 같은 재난은 서서히 진행되기에 골든타임을 놓치기가 쉽다. 픽사베이

“개미구멍은 천길 제방을 무너뜨리고, 굴뚝 틈새는 백척 집을 불태운다.”(한비자)

중국 위나라에 치수의 달인으로 불리는 재상이 있었다. 그 비결은 평상시에 산책삼아 제방을 돌아다니다 작은 구멍을 막고 다닌 것이 전부였다. 흙으로 쌓아올린 제방에는 개미, 땅강아지, 지렁이 때문에 작은 구멍이 난다. 그리고 큰비가 와서 작은 구멍으로 물이 새기 시작하면, 구멍이 점점 커지다 결국 제방이 무너지게 된다. 제방을 지나가다 작은 구멍으로 물이 새는 것을 보고 밤새 틀어막아 마을을 구한 네덜란드 소년의 영웅담도 들어봤을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우리나라 속담도 있고, 바느질 한 땀이 나중의 아홉 땀을 막는다는 서양 속담도 있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기적절한 대응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교훈과 속담은 흘러넘친다. 코로나19 팬데믹도 시기적절한 대응으로 막을 수 있었을까? 이것이 팬데믹 복기의 첫 번째 질문이다.

문명에 남긴 커다란 생채기가 무색하게, 코로나19는 조용하게 시작되었다. 겨울이 되면 감기 유행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2019년 겨울에는 중국 우한 중앙병원에 감기 환자들이 유난히 많이 몰려들었다. 거기에다 의사들이 관찰하기에 계절성 감기치고는 급격한 호흡 곤란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너무 많았다. 설명이 되지 않는 괴질에 대한 불길한 소문은 병원 울타리를 넘어 퍼져나갔다. 한 달이 지나도 상황이 진정되지 않자, 중국 정부는 원인 불명의 폐렴 유행을 세계보건기구에 공식 통보한다.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고 환자의 샘플에서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2020년 1월7일 확인된다. 이후 다른 국가에서도 감염자가 급증하기 시작하자, 3월11일 국제보건위기가 선언이 되며 길고 긴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렇게 막대한 충격을 줄 것이라는 것을 전문가조차 예측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심각성을 파악했어도, 당시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바이러스 확산이 시작되어 팬데믹을 되돌리기에는 한참 늦은 상황이었다. 흔히 어떤 사고나 재난의 징후가 포착된 순간에서 적극적 개입으로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간을 골든타임이라 표현한다. 심장마비가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예다. 심장마비가 일어나면 인체의 구석구석에 산소와 영양 물질을 공급하는 혈액 순환이 중단된다. 다행히 누군가 발견해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면 뇌, 신장, 심장, 폐 등 중요 장기들이 차례로 망가지면서 죽음의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다발성 장기부전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심폐소생술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이처럼 심장마비에서 골든타임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기회의 순간이다.

골든타임의 개념을 팬데믹으로 확장하기 위해 용어를 정리해보자. 심장마비라는 위기는 삶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상태(state)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다발성 장기부전이 발생하면 죽음으로 균형이 무너지면서 급격한 상태 전환이 일어난다. 죽음으로의 전환이 일단 일어나면 삶으로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다. 이처럼 발생하면 이전 상태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결정적 전환을 임계전이(critical transition)라고 한다. 골든타임은 심장마비 발생에서 임계전이 직전까지 심폐소생술이 통하는 시간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말에서, 호미로 막는 것이 가능한 시기가 골든타임이며 둑이 터지는 임계전이가 발생하면 가래로도 막을 수 없다.

딱딱한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대로 임계전이는 물리학에서 처음 도입된 개념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개별적 요소들이 모여 구성되는 집단에서 발생하는 사건에는 임계전이의 특성이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개별 세포의 집합인 인체에서 발생하는 심장마비, 감염, 암 등의 질병도 임계전이 현상이다. 얼음, 수증기, 나무의 집합에서 일어나는 눈사태, 태풍, 산불 등의 자연 재해도 임계전이다. 배의 침몰, 비행기 추락, 댐의 붕괴 등의 문명사회의 재난도 임계전이다. 사람 집단에서 일어나는 소문, 유행, 심지어 전쟁까지도 임계전이 현상이다. 이처럼 임계전이는 적용되는 집단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급격한 변화라는 것이 기본 개념이다. 질병이나 사고는 임계전이의 피해가 개인 수준에 그치는 것이다. 만약 사회 집단 수준에서 방대한 피해를 유발하면 재난이나 재해가 된다. 그리고 인간의 실수로 일어나면 사고 혹은 재난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개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은 질병이고, 코로나19가 전 세계 인류에게 확산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재난이다. 재해가 아닌 재난인 이유는 팬데믹의 원인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만약 팬데믹을 자연이 원인인 재해로 취급한다면 원인을 찾으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현재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의 임계전이는 기온 상승 1.5도 시점이다.

코로나19의 진행 경과를 역으로 추적해 보면, 팬데믹 임계전이가 일어난 시점은 2020년 1월 초순으로 특정된다. 따라서 팬데믹의 골든타임은 2019년 말에서 2020년 초까지다. 우한 지역에 감기 환자가 유난히 많아지기 시작했을 때 이미 팬데믹의 골든타임이 시작된 것이다. 만약 이때 우한을 락다운했다면 팬데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유난스러운 감기의 증가를 팬데믹의 징후로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들의 경고가 기우로 취급받는 동안 임계전이가 진행된 것이다. 심장마비는 누가 봐도 골든타임의 시작이 명확하지만, 재난의 골든타임에는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기에 심각성을 인지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위험을 체감하는 경우는 이미 임계전이가 일어나 재난이 시작된 상황이 된다.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대중이 인식했을 때도 팬데믹 임계전이가 끝난 상황이었다.

위험의 예측엔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마주하게 된다. 픽사베이

과학자들의 양치기 소년 딜레마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팬데믹 골든타임으로 간다면 세계를 구한 영웅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확률이 더 크다. 우한 중앙병원의 의사와 질병 통제센터의 경고의 목소리도 묻혔는데, 갑자기 나타나 당장 락다운을 하지 않으면 팬데믹이 삼년 이상 세상을 휩쓸 것이라 소리치고 다녀봐야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혹시 사람들을 믿게 만들어도 영웅은 고사하고 거짓말쟁이라는 수모나 안 받으면 다행이다. 미래에서 온 사람의 말을 믿고 락다운을 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의 예측과 경고는 항상 이런 딜레마에 빠진다. 이제부터 이것을 (착한) 양치기 소년의 딜레마라 부르기로 하자.

양치기 소년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동화다. 하지만 이 소년이 늑대 냄새를 멀리서도 맡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살짝 틀어보자. “늑대다!”라는 외침은 거짓말이 아니라, 다가오는 늑대 냄새를 맡고 경고를 한 것이다. 하지만 달려온 동네 사람들은 늑대를 볼 수 없다. 거짓말이면 처음부터 늑대는 없었을 것이고, 경고라면 사람들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늑대는 도망을 갔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소년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거짓말쟁이가 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재난이나 재해의 위기를 감지한 과학자들은 이런 양치기 소년의 딜레마에 빠진다. 경고의 목소리를 높일 것인가? 아니면 조용히 있을 것인가? 물론 과학자에게도 직업윤리가 있으며, 여기에는 전문가로서 위험이 예측되는 경우 경고하는 것도 포함된다. 문제는 위험 예측이 이분법으로 양단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조건 위험하다 혹은 안전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것은 점쟁이나 가능하다. 과학적 예측은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한 확률적 계산을 의미한다. 재난 발생 가능성이 90% 이상이라면 당연히 목소리를 높여 경고할 것이다. 하지만 70%, 혹은 60%라면 경고를 해야 할까? 반대로 40%라면 안전하다고 이야기해야 할까? 이처럼 위험의 예측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과학자는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항상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위험의 예측은 과학의 영역이지만, 경고라는 행위를 결정하는 근거는 과학이 아닌 과학‘자’에 대한 사회의 도덕성 평가다.

위험 예측 전문가의 목적은 재난을 막는 것이다. 결과론으로 판단하면 위험 예방 조직은 존재 이유가 없다. Tingey Injury Law Firm/unsplash

결과만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의 위험

윤리학은 사람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옳고 그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도덕적 판단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의무론과 목적론으로 구분된다. 의무론은 행위의 의도, 목적론은 행위의 결과에 기준을 둔다. 양치기소년의 경고 행위에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해보자.

먼저 의무론으로 접근하면, 늑대의 습격을 막기 위한 선의의 경고라면 도덕적, 심심해서 장난을 치려는 악의의 경고라면 비도덕적 행위다. 목적론으로 접근하는 경우 양치기 소년의 목적(직업윤리)이 늑대의 습격 예방이라면 경고는 도덕적, 목적이 마을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이라면 경고는 비도덕적 행위가 된다. 이렇게 동일한 행위와 결과에 대해서도 사회 집단이 가진 판단 기준에 따라 상반되는 도덕성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통하던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의 연결이 강했다. 서로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밀해서, 누가 어떤 행위를 하면 그 동기가 선의인지 악의인지 판단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처럼 마을 중심으로 생활이 이뤄지던 사회에서는 의무론이 자연스럽게 적용된다. 이 경우는 행위의 결과보다는 사람들의 평판이 중요했다. 착한 사람이 하는 일은 착한 일, 나쁜 놈이 하는 일은 나쁜 일이다. 평상시에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도덕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반대로 한 번 찍히면 도덕성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생활이 마을을 벗어나고 서로의 연결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의무론은 점차 적용이 어려워졌다. 점차 많은 사람들의 행위의 결과가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데, 모든 행위의 의도 파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도덕성 평가는 목적론으로 점차 기울게 된다. 결과가 목적을 달성하면 착한 일이고 달성하지 못하면 악한 일이 되는 것이다. 사회가 점차 전문화 분업화하면서 목적 달성을 위한 도덕성이 강조되어 왔다. 목적론이 극단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능력주의다. 공부를 잘하면 착한 학생, 돈을 잘 벌면 착한 사장이다.

날이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현대사회에서 목적론이 도덕성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행위의 ‘목적’에 대한 결과에 기준을 두는 것과, 발생한 ‘결과’에만 기준을 두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목적이 합리적으로 설정되지 않은 경우는 사회적 부작용이 발생한다. 팬데믹 골든타임에 전문가들이 위험을 강력하게 경고해서 봉쇄를 이끌어 내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팬데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봉쇄는 해당 지역에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한다. 행위의 결과로 막아낸 미래의 피해는 보이지 않고, 행위의 부작용은 현실에 드러나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들은 경고가 정확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과잉 대응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과잉 경고에 대한 책임을 묻기 시작한다. 이처럼 드러난 결과만으로 판단하는 것을 결과론이라고 한다.

결과론의 부작용은 팬데믹의 위험 예측처럼 거창한 일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도덕적 목적이 사고 예방인 안전부서가 있다. 이들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면 업무와 관련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회사의 전산 시스템을 관리하는 부서라면, 임직원이 네트워크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유지 관리하는 것이 도덕적 목적이다.

문제는 이런 특성을 가진 집단에 대한 성공과 실패의 성과 분석이 비대칭이라는 것이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성공은 측정이 불가능하다. 사고가 날 때만 성과 실패가 측정된다. 그 결과 사고가 나지 않으면 “너네 부서는 하는 일이 뭐야?”라는 말을 듣고, 사고가 나도 “너네 부서는 하는 일이 뭐야?”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렇게 결과론으로 판단하면 위험 예방 조직은 존재 이유가 없다. 만약 결과론에 입각해 조직을 없애거나 축소시키면 사고가 터지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목적론과 결과론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위험 예측 전문가의 목적은 재난을 막는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도덕적인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경고를 받아들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경고를 무시하면 재난이 닥칠 것이다. 픽사베이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

우리는 지금 팬데믹의 진행 경과를 자세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골든타임의 복기를 하는 중이다. 따라서 누구나 골든타임 시기에 우한을 봉쇄하는 것이 도덕적이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괴질의 정체가 코로나19인지도 모르던 당시 상황에서 봉쇄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타임머신을 상상할 필요도 없이 지금 당장이 기후위기의 골든타임이다. 이미 과학자들은 기후위기라는 불편한 진실을 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다. 이 경고를 받아들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경고를 무시하면 팬데믹은 비교도 되지 않을 재난이 닥칠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결과론에 입각해 현재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따지고 책임을 묻는다면, 과학자들은 점점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과학자들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서 한 목소리로 위기를 경고하는 것은 아니다. 목적론적으로 정말 위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 발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의 최종합의문은 국가이기주의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미래의 위기보다 현재의 손익계산으로 탄소배출 규제는 지켜지지도 않을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후퇴하였다. 탄소배출 문제의 이해당사국에서 개최한다고 결정되었을 때부터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결과다. 위기 대응문제는 결과론이 적용될 수 없는 영역이다.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식의 영역인 도덕을 연구하는 학문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 들겠지만,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면 도덕적 판단도 복잡해진다. 몇년 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윤리학 교양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우리 사회가 너무 급격히 발전하면서 도덕적 판단의 충돌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 사이의 갈등과 공감을 다루는 것은 과학이 아닌 인문학이다. 위기를 예측하는 것은 과학이지만,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사람들의 소통과 공감이다. 문명이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과학과 인문학의 균형은 더욱 중요해진다. 과학이 다루는 자연 법칙은 사람의 사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주철현/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의학교육센터장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