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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도 최상위 포식자였다…사자 뼈에 남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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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들이 창으로 동굴사자를 사냥한 후 도살하는 장면(상상도). 레딩대 제공 최근 지구촌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화제...

네안데르탈인들이 창으로 동굴사자를 사냥한 후 도살하는 장면(상상도). 레딩대 제공

최근 지구촌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화제를 모았다.

아프리카 사바나지역에 서식하는 야생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했더니, 동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밀림의 왕’ 사자가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였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실험 기간 중 촬영한 1만5천여건의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야생동물들은 스피커에서 사자 소리보다 사람 목소리가 나올 때 40%나 더 빠르게 움직였다. 물웅덩이를 버리고 도망치는 비율도 2배 더 높았다.

최상위 포식자로서의 인간의 위상은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스페인 북부 라가르마동굴에서는 1만6800년 전 동굴사자를 사냥한 뒤 그 가죽을 벗겨 모피로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다.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와 한동안 공존하며 우리에게 2%의 유전자를 물려준 네안데르탈인은 지구촌 먹이사슬 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현생 인류가 도착하기 전 유럽의 네안데르탈인도 사자와 같은 맹수를 사냥하고 그 가죽을 벗겨 이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발견됐다. 튀빙겐대가 중심이 된 독일과 영국 공동연구진은 34년 간격을 두고 발견된 동굴사자 2마리의 유골에 나 있는 상처 자국을 분석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지그스도르프에서 발굴된 동굴사자의 유골. (B)가 이번 연구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창으로 찌른 흔적으로 추정한 세번째 갈비뼈의 구멍이다. (A)는 발굴된 전체 유골과 인공적 변형 자국이 있는 위치, (C)는 절단 자국이 있는 오른쪽 치골. (D)는 절단 자국이 있는 네번째 갈비뼈, (E)는 절단 자국이 있는 대퇴골. 참조용 표시 막대선 길이는 1cm. 사이언티픽 리포트(doi: 10.1038/s41598-023-42764-0)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 도착하기 전

첫번째 증거는 1985년 한 10대 소년이 바이에른주 알프스 기슭의 지그스도르프에서 발견한 4만8천년 전 동굴사자의 갈비뼈다. 두번째 증거는 2019년 독일 중부 하르츠산맥 아인호른회흘레지역의 유니콘동굴에서 발견된 19만년 전 동굴사자의 발가락과 발뒤꿈치 뼈다.

두 사자가 살던 시기 유럽 대륙에선 네안데르탈인이 유일한 인류였다.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 대륙에 도착한 때는 약 4만2천년 전이다.

멸종된 동굴사자는 37만년 전~1만2천년 전 유라시아와 알래스카 북부를 주름잡던 최상위 포식자로, 오늘날의 사자보다 몸집이 20%나 더 컸다. 어깨높이가 1.3m나 됐던 동굴사자는 대초원부터 산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서식하며 매머드, 들소, 말 등의 대형 초식동물과 동굴곰을 사냥했다. 동굴사자란 이름은 동굴에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먹이를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굴에서 유골이 많이 발견됐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1985년 바이에른 알프스의 지그스도르프 근처에서 발견된 약 4만8천년 전의 동굴사자 두개골. 레딩대 제공

누워 있는 사자를 창으로 직접 타격

네안데르탈인은 이 공포의 동굴사자와 조우했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연구진은 수십년째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지그스도르프 동굴사자의 유골을 다시 한 번 면밀히 살펴본 끝에, 오른쪽 세번째 갈비뼈 아래쪽에서 깊게 패인 자국을 새롭게 발견했다. 연구진은 과거 유골 분석 자료 분석과 법의학 기법을 이용해 세가지 사항을 추론해냈다.

첫째, 패인 자국은 창에 찔린 흔적이다. 자국의 모양이 네안데르탈인의 창이 사슴 척추뼈에 남겼던 자국과 비슷하다는 게 추론의 근거다. 둘째, 창은 사자 복부 왼쪽으로 들어가 장기를 관통한 뒤 갈비뼈를 타격했다. 자국이 난 방향이 그 근거다. 셋째, 창은 멀리서 던진 것이 아니라 가까운 거리에서, 옆으로 누워 있는 상태의 사자를 향해 직접 찔렀을 가능성이 크다.

창에 찔려 치명상을 입은 동굴사자는 수컷이었다. 논문 제1저자인 튀빙겐대 가브리엘레 루소 박사과정생(동물고고학)은 “오늘날의 사자 습성에 비춰볼 때 무리에서 쫓겨난 늙은 수사자가 네안데르탈인을 위협하다 당했거나 네안데르탈인의 사냥감으로 찍혔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지그스도르프의 사자 갈비뼈는 인간이 동물왕국의 최고 포식자인 무시무시한 사자를 사냥했다는 최초의 구체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네안데르탈인은 지그스도르프 동굴사자를 사냥할 때 창을 이런 방향으로 찔렀을 것이다(디지털 재구성도). 사이언티픽 리포트(DOI: 10.1038/s41598-023-42764-0)

사자 발톱이 3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이유?

연구진은 이어 독일 중부의 유니콘동굴(아인호른회흘레)에서 발굴된 동굴사자 뼈를 살펴봤다.

이 동굴은 한때 네안데르탈인의 은신처로 쓰였던 곳이다. 유니콘 동굴이라는 이름은 중세시대에 사냥꾼들이 이곳에서 나온 곰 뼈 화석이 유니콘의 것이라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연구진은 이곳의 동굴사자 뼈에 난 절단 자국을 분석한 결과, 동물 가죽을 벗길 때 생기는 자국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발톱과 발 뼈는 동굴 입구에서 약 3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는데, 이는 이것들이 가죽에 붙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가죽이 손상되지 않도록 발톱을 그냥 둔 채 가죽을 벗겨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가죽은 남아 있지 않다.

연구진은 이 가죽이 깔개로 쓰이거나 사냥 전리품으로 보관, 또는 어린아이들에게 사자의 위험성을 가르치는 교육용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이는 네안데르탈인이 문화적 목적으로 동굴사자 가죽을 사용했다는 최초의 증거”라고 말했다.

루소는 “생태적으로 사자와 네안데르탈인은 같은 급의 포식자였을 것”이라며 “이렇게 특별한 동물을 소유하고 전시하는 것은 네안데르탈인의 특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독일 유니콘동굴에서 발굴된 동굴사자 발가락과 발뒤꿈치 뼈. 사이언티픽 리포트(DOI: 10.1038/s41598-023-42764-0)

동물시체 청소부 아닌 영리한 사냥꾼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보다 키가 작고 팔, 다리가 짧지만 뼈는 단단했다. 호모사피엔스보다 큰 두개골은 앞뒤로 길쭉한 모양이었고 코가 컸으며 앞니와 눈썹은 앞으로 튀어나왔다. 또 가슴은 통 모양이었고 골반도 넓었다. 이런 외형적 특징은 초기 연구자들에게 네안데르탈인이 오늘날의 인간과는 거리가 먼 원시적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했다.

과학자들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땅딸막한 네안데르탈인은 살아 있는 맹수를 공격하는 영리한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죽은 동물의 고기를 처리하는 청소부였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뒀다. 이들이 머물렀던 곳에서 동물의 앞다리 뼈가 없다는 점이 주요한 근거였다. 그러나 나중에 앞다리 뼈가 없는 것은 네안데르탈인이 골수를 파먹기 위해 부숴버렸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프랑스 남동부 쇼베 동굴에서 발견된 약 3만4000년 전의 동굴사자 암각화. 호모 사피엔스가 그린 것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후 축적된 연구 결과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우리가 애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다재다능한 인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불을 이용해 음식을 익혀 먹었으며, 음식을 먹은 뒤엔 이쑤시개도 사용할 줄 알았다. 또 사람이 죽으면 매장을 해줬으며, 자작나무 껍질을 가열해 만든 접착제를 이용해 사냥용 창끝을 단단하게 고정했다.

네안데르탈인이 그린 6만8천년 전의 동굴 벽화, 장신구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독수리 발톱, 사슴 뼈에 새긴 조각 자국도 발견됐다. 호흡기관의 해부학적 구조는 거칠기는 하지만 언어를 사용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포르투갈 리스본대의 주안 질라오 교수(고인류학)는 “이번 연구는 네안데르탈인이 우리와 매우 비슷하다는 또 하나의 증거를 추가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초기 구석기와 후기 구석기 시대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기일수록 들여다보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구석기 시대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은 은하계 지도를 작성하려는 오늘날의 천문학자들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98-023-42764-0

First direct evidence of lion hunting and the early use of a lion pelt by Neanderthals.

곽노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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