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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횡재세’ 시동은 걸었는데…목적지도 갈팡질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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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국회가 지난주부터 이른바 ‘횡재세’ 법안 심의에 돌입했다. 횡재세를 다루는 여러 법안 중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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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지난주부터 이른바 ‘횡재세’ 법안 심의에 돌입했다. 횡재세를 다루는 여러 법안 중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중심으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사실상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은행들의 초과이익을 기여금 형태로 걷는 게 뼈대다.

횡재세는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자동으로 은행들 이익이 커졌으니 빚 부담이 커진 취약계층 등을 위해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인식에 뿌리를 둔다. 은행업은 국가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만큼 인·허가제로 운영되며, 다른 산업에 견줘 높은 수준의 공공성을 요구받는다는 점도 횡재세 논의의 핵심 배경이다.

다만 민주당 횡재세 법안은 부과 기준이나 근거가 모호하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는 횡재세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기되는 지적이다. 앞서 횡재세를 도입한 이탈리아도 여러 부작용으로 제도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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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재세 부상 배경은

횡재세는 기준금리가 2년 넘게 빠르게 오르면서 은행들의 이익이 손쉽게 늘었다는 비판 속에서 부상했다. 시중은행을 포함한 국내은행 이자이익(이자수익-이자비용)은 2020년 41조2천억원에서 2022년 55조9천억원으로 35.7% 증가했다. 올해도 3분기까지 44조2천억원의 이자이익이 났다.

예금금리보다는 대출금리가 더 빨리 올라 이익을 키웠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2021년 8월부터 올해 10월(가중평균금리·잔액기준)까지 평균 대출금리가 2.40%포인트(2.79%→5.19%) 뛸 때 평균 총수신금리는 2.05%포인트(0.67%→2.72%) 올라가는 데 그쳤다. 이는 대출은 약 70%가 변동금리 대출이라 시장금리 변화가 빨리 반영되나 예금은 약 55%가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고 시장금리에 둔감한 요구불예금인 터라 시장금리 반영 속도가 느려서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와 2022년 상반기 중 늘어난 국내은행 이자이익의 약 40%가 예대금리차 확대에 기인했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은 “정책금리가 인상되면서 자연스럽게 은행들의 이자이익이 늘었다. 그것 자체를 횡재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대출자 입장에서 금리가 올라 상환 부담이 커졌다면 ‘횡재손(실)’이 발생했다고도 볼 수 있다”며 “횡재세를 걷어 ‘횡재손’이 발생한 대출자의 부담을 덜어주거나 취약계층 지원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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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재’ 구분 가능한가

횡재세 논의의 첫 출발점은 무엇을 횡재로 볼 것이냐다. 시장금리 상승에 따라 이자이익이 늘어난 현상을 토대로 횡재의 범위를 잘 발라내어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작업이 간단하지 않으며 횡재세 도입이란 총론에는 공감하는 전문가들도 세부 방안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실제 전문가들 의견은 분분하다. 문재인 정부 때 금융당국 고위 임원을 지낸 한 전문가는 “횡재는 뜻밖의 재물을 일컫는데, 금융업은 본질적으로 시장금리 변동과 이익이 연동되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번 금리 상승기에서 발생한 이익을 ‘뜻밖’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럽 중앙은행(ECB)은 정책금리를 인상하면서도 은행 대출 관련 유동성 공급 등 양적완화 정책을 병행했다. 이에 유로지역 은행들은 예금금리 인상을 통한 자금조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정책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만 올라 초과이익이 발생하자 횡재세 논의가 이뤄진 것이다. 양적완화 정책이 없는 한국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횡재 이익’ 구분도 난제다. 은행들은 기준금리가 1%대로 낮았던 2019년에도 40조7천억원, 0%대였던 2020년에도 41조2천억원의 이자이익을 거뒀다. 이는 은행의 이자이익 증가엔 금리 상승에 다른 예대금리차 확대외에도 대출 자산 자체가 늘어난 영향 등 여러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 대출 자산은 취약계층 지원 등 정부 정책 뒷받침으로도 꾸준히 늘어났다는 점에서 횡재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국내은행 대출잔액은 2022년 말 기준 2165조8611억원으로 5년 전(1504조3333억원)에 견줘 661조5278억원(44%) 불어났다.

민주당 횡재세 법안은 이러한 논란의 지점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법안은 ‘횡재’를 ‘금리변동 등 특수한 상황’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정의한다. ‘횡재 이익’도 ‘해당 회계연도의 순이자수익이 지난 5년 평균의 120%를 초과하는 경우’라고 규정하나 이 기준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설명은 없다. 그 대신 초과이익의 산정방법, 감면 및 예외 사유 등을 모두 정부 대통령령에 위임했다. 횡재세로 걷는 기여금도 금융위원회가 부과·징수·사용 등을 모두 맡는 걸로 돼 있다. 총론만 있고 각론은 없는 탓에 쟁점을 둘러싼 법안 논의 자체가 쉽지 않은 셈이다.

4대 금융지주 소속의 한 선임연구위원은 “횡재세 도입 취지나 명분에는 공감한다”며 “문제는 세부 방안 설계인데 이를 둘러싼 논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입법이 추진되고 있어 아쉽다. 입법 과정에서 좀더 세부 방안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되레 취약계층 피해?

새로 검토되는 제도인만큼 예기치 못한 부작용도 따져볼 필요도 있다. 우선 은행들이 횡재세 납부를 기피하기 위해 이지이익을 인위적으로 줄일 가능성이다. 4대 금융지주의 한 고위 임원은 “은행들은 이자이익이 횡재세 기준치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면 전략적으로 규제 회피를 위해 영업 행태 조절에 나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취약계층의 대출 문턱 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취약 계층은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출 금리도 높아 은행 입장에선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고객이다. 또 규제 회피 과정에서 인위적 예금·대출금리 조정은 금리 왜곡을 불러와 자칫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 지금 도입이 맞나

도입 시기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현재는 기존 대출의 부실화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올 9월 말 국내은행 연체율은 1년 전보다 0.18%포인트 뛴 0.39%로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은행 입장에선 손실을 흡수하기 위해 더 많은 자본을 쌓아둘 필요가 있는 환경이다. 전문가들은 물론 금융당국도 꾸준히 충당금 확대를 강조하는 까닭이다. 자본 확충이나 충당금 확대의 기본 재원은 횡재세와 같은 ‘이익’이다. 현재 민주당의 횡재세 법안에는 대출 부실화 대응 비용이 반영돼 있지 않다.

이런 까닭에 횡재세로 초과 이자이익을 거둬 직접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보다 지금은 이 이익을 은행들의 손실 흡수 능력 강화로 쓰는 것이 더 맞는 것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적지 않다. 은행들이 취약계층 빚 부실의 손실을 흡수해주는 것도 공공성 강화의 일환이라는 생각이다.

이탈리아도 비슷한 문제 인식 아래 횡재세를 대폭 수정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은행들이 납부할 횡재세의 2.5배를 충당금으로 적립하면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올 10월 제도를 바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의 공공성 역할엔 경제 위기 때 잘 버텨 취약계층 및 기업에 원활한 자금을 공급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손실 흡수 능력 강화가 지금 시기에 초과 이자이익을 더 잘 쓰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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