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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임’ 가능한 자체 예산 지표…국제기준과 통일을

Summary

만약 어떤 기업이 회계 기준을 임의로 만들어서 매출액 규모를 정하고 이익 규모를 발표한다고 하자. 아무도 그 회사의 재무 정보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이를 방지하고자 일정 규모가 ...

만약 어떤 기업이 회계 기준을 임의로 만들어서 매출액 규모를 정하고 이익 규모를 발표한다고 하자. 아무도 그 회사의 재무 정보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이를 방지하고자 일정 규모가 넘는 주식회사는 모두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른 공통된 기준으로 회계장부를 작성하고 이를 공개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이 인정하는 국제정부회계 기준은 당연히 존재한다. 만약 어떤 나라가 국제기준을 따르지 않고, 수입 규모와 지출 규모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서 자의적으로 발표한다면, 그 국가가 발표하는 수치를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대한민국은 국가 통계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서 쓰고 있다. 대한민국이 발표하는 총지출, 총수입, 통합재정수지, 관리재정수지 등의 통계자료는 대한민국 기획재정부가 창의적으로 만들어서 전세계에서 우리만 쓰는 매우 독특한 기준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맞춘 예산 ‘작품’

기재부에 따르면 내년 우리나라 총지출 규모는 657조원이다. 보건·복지·고용에 242.9조원을 쓰고 교육에 89.7조원을 쓴다고 한다. 연구·개발(R&D)엔 25.9조원을 쓴다고 한다. 분야별 배분 내용 금액을 다 합하면 657조원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기재부가 홍보하는 분야별 배분 내용을 다 더하면 661.5조원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아니라면 중복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더 놀라운 것은 배제된 분야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년 우리나라 정부는 통신 분야에도 9.3조원을 지출하고 예비비 지출액도 5조원을 지출한다. 이것까지 합산하면 675.8조원이다. 기재부가 만들어서 사용하는 분야별 배분 내용은 합계조차 맞지 않는 엉터리 자의적 통계 기준이다. 합계조차 맞지 않는 통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연구·개발 금액이 중복됐기 때문이다. 복지 연구·개발에 1조원을 지출하면 복지 분야도 1조원이 늘지만, 동시에 연구·개발 분야에도 1조원이 증가한다. 어차피 이렇게 각 분야 지출액을 중복해서 뻥튀기할 것이라면, 차라리 복지에 300조원을 쓰고 연구·개발에 100조원을 쓴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떨까? 애매하게 중복해서, 마치 각 분야 금액을 합산하면 657조원이 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모든 언론과 심지어는 국회 토론회에서도 이런 엉터리 통계 기준을 통해 내년도 예산 배분 내용을 논한다.

기재부가 발명한 ‘총지출’ 기준에 따르면 올해 총지출액은 639조원이다. 전년 총지출액보다 불과 5.1%만 늘렸다. 정부는 지난 정부의 확대 일변도의 재정정책을 건전재정으로 전환했다고 자평한다. 2022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5.1%만큼만 지출을 증대했다. 건전재정이라는 정부의 홍보가 맞는 말인 것도 같다. 그런데 ‘총지출’이라는 단위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게 아니라 기재부가 만든 독특한 기준이다. 기재부의 총지출 기준에는 융자지출 전액이 포함된다. 1조원을 빌려주는 것과 1조원의 보조금 지급을 똑같이 취급한다. 국가 입장에서는 1조원을 빌려주고 이자까지 쳐서 돈을 회수하면 ‘융자금 회수 수입’이 발생한다. 재정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1조원의 보조금을 지출하면 1조원만큼 국가 재정은 감소한다. 이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국제기준에도 맞지 않고 경제적 실질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번 정부는 기재부에 건전재정을 요구한다. 기재부는 올해 융자금을 5조원이나 줄이고(-10.6%), 출자금을 1.9조원(-18.9%) 줄였다. 기재부가 발명한 총지출 기준에 따르면 융자금 전액과 출자금 전액을 국가지출에 계상한다. 출자금도 주식 등 자산을 취득하는 행위여서 국가의 재정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결국 기재부는 융자금과 출자금을 줄여서 총지출 기준 액수를 5.1%로 제한한 것이다.

국제기준을 통해 우리나라 재정수지를 살펴보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리나라 재정수지 비율은 문재인 정부가 첫 추경을 편성한 2017년, 첫 본예산을 편성한 2018년 ‘역대급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 정부가 5년 내내 적극재정을 펼쳤다는 지난 정부 및 현 정부의 공통된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기재부가 발명한 통합재정수지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재정수지는 12조원(국내총생산 대비 -0.6%) 적자다. 기재부가 발명한 관리재정수지로는 54.4조원(국내총생산 대비 -2.8%) 적자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 기준인 총재정수지(overall Balance)로는 2019년 우리나라 재정수지 비율은 0.4% 흑자다. 코로나19로 2020년 재정수지 비율은 적자(-2.2%)를 기록하지만 2021년 다시 균형재정을 회복한다. 반면, 윤석열 정부가 첫 추경을 편성한 2022년 재정수지 비율은 -1.6%, 올해는 -1.2%, 내년은 -0.9%로 지속해서 적자다. 재정 건전성이 심하게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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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기술’은 이제 그만

기재부는 국민연금 등 기금 수지가 큰 폭의 흑자인 독특한 상황 때문에 이를 제거한 관리재정수지와 같은 국내 기준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국제기준에도 국민연금과 같은 큰 규모의 적립액을 제거하는 재정적 수단이 이미 존재한다. 예컨대 ‘기초재정수지’(primary balance)라는 개념은 과거의 재정 결과에 따른 영향을 제거하는 수단이다. 국가 부채가 많은 선진국은 이자 지출액이 많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민연금 등 기금 적립금이 많아 자산에서 이자 수입이 발생한다. 이에 이자 지출액 및 이자 발생액을 제거한 재정수지가 기초재정수지다.

기재부 재정통계로는 △다른 국가와 비교가 어렵고 △경제적 실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며 △조작 가능성이 있는 문제가 발생한다. 국제기준은 전세계 다양한 학자가 모여 경제적 실질을 잘 반영할 수 있도록 만든 개념체계다. 경제적 실질에 따라 수익과 비용을 인식(발생주의)한다. 반면, 기재부의 총지출 개념은 경제적 실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예산 기술자’가 숫자놀음을 통해 재정지표를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재정 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 대비 -3% 이내로 제한한다. 이미 ‘기술’은 들어갔다. 지난해 추경 때, 자산관리공사에 1천억원 현금 출자를 감액하고 5천억원의 현물출자(주식)를 증액했다. 현금 1천억원은 줄었지만, 주식 5천억원은 추가 지출해서 국가의 실질 재정 건전성은 감소했다. 그러나 ‘관리재정수지’ 지표는 1천억원 개선됐다.

문제는 심각하나 해법은 간단하다. 이미 대한민국 기재부는 국제기준에 따른 재정자료를 국제통화기금과 경제협력개발기구에 제출하고 있다. 국내·국제 기준을 이원화하지 말고 어차피 잘 작성하고 있는 국제기준으로 통일해서 우리나라 재정을 논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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