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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돌보며 함께 다시 시작”…‘시대의 책사’ 고 정태인 1주기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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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은 정태인 박사(1960~2022)의 1주기 추도식에 참여한 80여명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지난해 10월 21일 2년여에 걸친...

지난 20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은 정태인 박사(1960~2022)의 1주기 추도식에 참여한 80여명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지난해 10월 21일 2년여에 걸친 암 투병 끝에 정태인 선생의 62년 생은 마감됐지만, 그의 책과 강연, 연구와 정책, 인간적인 만남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며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추모행사 1부는 정건화 랩2050 이사장의 사회로 ‘추도식’이 진행됐고, 2부는 독립연구자 정태인 박사의 뜻을 이어가기 위한 ‘정책 학술포럼’이 이어졌다. 고 정태인 박사와 절친한 사이였던 정건화 랩2050 이사장은 추모행사장을 가득 채운 추도객들을 향해 “겸연쩍게 웃는 웃음이 매력인 고인도 자신을 위한 자리에 약간 민망해하면서도 웃을 것 같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 정태인 박사를 추모하는 1주기 추모 행사가 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렸다. 1부 추도식의 진행을 맡은 정건화 랩2050 이사장이 고 정태인 박사의 발자취를 소개하고 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고 정태인 박사는 제도권 학자나 대학교수보다 현장의 정책가를 지향했다. 경제학자이자 독립연구자로서 열심히 글을 쓰고, 강연하고, 방송도 하면서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정신적 은사로 모셨던 고 박현채 선생처럼 “민중이 원하면 공부해서 무조건 쓰고 말해야 한다”는 신념을 끝까지 이어갔다.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뒤에도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기후위기, 동아시아의 평화에 관한 연구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추도사 낭독에 나선 이정우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는 “박현채 선생이 갑작스레 돌아가신 뒤 실의에 빠진 정 선생이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고 이야기했었다. 경제참모 겸 방송토론 코치로서 당시 노무현 후보를 정말 열심히 도왔다”고 회고하며, “공부를 많이 하고, 사심 없던 희귀한 ‘시대의 책사’를 일찍 데려간 건 하늘의 책사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까”라며 고인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참여정부 국정홍보비서관을 역임했던 노혜경 시인은 ‘정태인적 인간’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그를 떠올렸다. 노 시인은 “정태인적 인간이란, 냉소하거나 체념하는 법 없이 희망을 믿는 인간을 일컫기 위해 만든 용어”라며,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주었던 자세와 태도는 사랑을 지닌 사람·낙관하는 의지를 지닌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고 정태인 박사 부인 차정인 여사가 지난 20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1주기 추도식에서 가족인사를 전하고 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이날 추도식은 214명이 ‘함께하는 사람들’에 참여했으며, 랩2050,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생태문명원, 좋은동네연구협동조합, 지속가능시스템연구소,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살아 생전 인연이 깊었던 마르그리트 멘델 캐나다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장,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국장은 추모영상으로 진한 그리움을 전했으며,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정태인 박사와 가까운 인사들도 무대에 올라 그를 애도했다. 추도사 뒤 딸 정승연씨와 부인 차정인 여사의 가족인사로 이어졌다.

2부 추모 학술포럼은 그가 생의 마지막까지 붙잡고 고민했던 주제들에 대한 관심의 환기와 계승의 취지를 담아 △학문의 위기-독립연구자와 지식생태계, △지정학적 위기-동북아 평화로의 길, △불평등 위기-사회적 경제로 해법 찾기, △기후위기-생태경제를 향해 등 총 4개 세션으로 구성됐다. ‘청년, 그리고 정태인이 꿈꾸는 세상 - 청년에게 자리를 내주자’는 추모 학술포럼의 제목엔 “민주화 세대는 실패했다. 지식인 대부분 기득권으로 세상을 바꿀 힘을 잃었다. 청년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고인의 평소 지론이 담겼다.

고 정태인 박사를 추모하는 1주기 추모 학술포럼이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병권 ‘기후를 위한 경제학’ 저자, 이재경 좋은동네연구소협동조합 연구위원, 김소연 사단법인 시민 연구위원, 황순식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과정,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경미 연세대 박사후연구원, 윤형중 랩2050 대표.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자신을 독립연구자로 규정했던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 지식생태계와 독립연구자의 존재조건을 탐색하는 연구를 수행한 이재경 좋은동네연구소협동조합 연구위원이 첫번째 발제에 나섰다. 이재경 연구위원은 “고인이 ‘독립연구자’ 보다 ‘독립운동가’에 가까운 삶을 사셨다”며 고인의 용기와 소신, 민중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연구자였음을 강조했다. 그는 학문의 분과화에 맞서 파편적 지식을 종합하고, 총체적 이해와 현장 변화를 지향하는 지식생태계 복원을 위해 “대학 외부의 다양한 학문적 거점과 공동체를 진지처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소연 사단법인 시민 연구위원은 “연구자들이 독립해 자율성을 확보해야 할 상대는 대학이 아니라 국가권력과 시장자본”이라며, “시민사회 지식생태계 복원을 위해선 공적 자원의 배분에서 대학 소속이 아닌 연구자들이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황순식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과정, 이경미 연세대 박사후연구원, 장윤석 독립연구자 등이 각각 ‘지정학적 위기-동북아 평화로의 길', ‘불평등 위기-사회적 경제로 해법 찾기', ‘기후위기-생태경제를 향해'를 주제로 발제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윤형중 랩2050 대표,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이 토론자로 나섰으며, 김병권 ‘기후를 위한 경제학’ 저자의 좌장으로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마지막 기후위기 세션의 토론자로 나선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경제는 사회에 둘러싸여 있고, 사회에는 상품의 교환에 기반을 두지 않는 수많은 관계와 가치가 있다”는 정태인 선생님의 통찰을 언급하며, “위기가 깊을수록 희망은 귀하다.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정직한 실천에 기반한 성실한 희망을 만들어가기 위해 서로를 돌보며 함께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다.

서로 배려하는 것. 지치지 않도록!!
계속 고려해서 안정성 있는 원칙을 찾아내는 것.
앞으로 며칠 더 노력해서 공존의 원리를 찾아내는 것.
짜증을 없애는 것. 인내는 매우 중요. 자, 다시 시작!

2022년 9월 29일 고 정태인 박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 추모행사 자료집 바로가기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약력]

·1960년 2월 7일 삼형제 중 차남으로 어머니의 친정(고향)인 괴산에서 출생. 이후 서울에서 자람
·1978년 서울 숭문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입학, 경제학과 졸업(1983년)
.198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입학
·1985년 11월 3일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 차정인 여사와 결혼. 슬하에 두 딸을 둠
·1986년-1987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 연구원 활동, <기사연 리포트> 발간. 이 시기 <녹두서평>에 ‘식민지 사회 성격규명을 위한 시론’ 게재하고, 이로 인해 2년여 동안 진보적 경제·노동 이론가로 암약하며 수배생활 겪음
·1988년 한국사회과학연구소(한사연) 경제연구실 정건화, 조석곤 등 대학원 후배들과 함께 <동향과 전망>, <월간 동향> 등 발간에 참여
·1990년 8월 석사학위 받고, 1991년 3월 서울대 경제학과 박사과정 진학
·1991년부터 월간 <말> 편집위원으로 활동. 이 시기 PC통신 ‘나우누리’에 개설된 ‘21세기 프론티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경제전문가이자 논객으로 활약
·1995년 8월 17일 평생의 스승으로 따르던 박현채 선생 돌아가시고 “내 스스로도 왜 이리 과장을 하는가 싶을 정도로 상실감이 든다”며 방황
·2000년부터 기독교방송, 문화방송, 한국방송 등에서 방송을 하다 2002년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 선거본부에 참여
·2002년 1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하고, 2003년부터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 대통령 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기조실장, 청와대 경제보좌관실 국민경제비서관 역임. 초기 노무현 정부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리움
·2005년 5월 말 사직 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강연과 기고 활발하게 펼침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 경선 심상정 캠프 정책팀 합류
·2009년 칼라TV 대표
·2011년-2015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원장
·2015년-2019년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2019년부터 ‘독립연구자’로 스스로를 칭함
·2019년 정의당 그린뉴딜경제위원회 위원, 2020년 정의당 총선공약개발단장
·2020년 북한대학원대학교 ‘사회주의경제에 관한 논쟁 재검토’ 논문으로 박사학위 취득
·2021년 7월 경기연구원 프로젝트 연구자로 근무 중 실신, 검진 결과 폐암4기 진단. 이후 투병 1년3개월 동안에도 불평등과 기후위기, 동아시아의 평화에 관한 연구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음
·2022년 10월 21일 향년 62세 별세. 양평 별그리다 추모공원에 수목장으로 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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