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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전 미 차관보 “한국은 미·중·러에 더 발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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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면 충돌은 불가피한가. 도화선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될 것인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 한국이 미-중의 패권 각축 속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가?...

‘미-중 정면 충돌은 불가피한가. 도화선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될 것인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 한국이 미-중의 패권 각축 속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가?’

격화하는 미-중 패권 경쟁에 이미 직간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가 피해갈 수 없는 질문들이다. 미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그레이엄 앨리슨은 1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제14회 아시아미래포럼 기조세션2에서 한국이 미-중의 패권 각축 한복판에서 좀더 적극적인 역할과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물론 그는 앞으로 한국이 미, 중 어느 한쪽과 “단일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보다 복잡한 국제 이해관계 속에서 중심을 잡아나가는 데 “큰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날 ‘패권 각축의 시대, 한국의 선택은?’을 주제로 한 화상 강연에서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끝나가고 있다며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를 설명했다. 그는 제임스 매티스 전 미 국방장관의 말을 빌어 “미국 우위 시대는 이제 끝났다”며 하늘과 바다, 우주, 사이버 공간 모든 영역에서 미-중 경쟁이 빚어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칫 두 강대국 간 충돌이 암울한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이름을 딴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미-중의 패권 경쟁의 운명을 설명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500년 간 패권국과 도전국 사이에 16번의 충돌이 있었고 그 가운데 12번이 전쟁으로 귀결됐다고 밝혔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도전국이 기존 패권국을 대체하려고 할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아테네의 부상에 맞서 스파르타가 전쟁을 일으켰던 게 대표적 사례다.

그는 미-중도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 “전쟁을 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발발한다면 향후 수 년 안에 일어날지, 또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모른다면서도, 전쟁 도화선은 대만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상호확증파괴(MAD) 개념을 끌어와 미-중 간 전쟁은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승리 없이 양쪽 다 파괴되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핵보유 강대국인 중국과 미국의 경쟁이 ‘매드’와 경제로 서로 얽혀 있는 “결합된 관계”에 놓인 게 충돌의 가능성을 줄여준다고 봤다.

그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존 에프 케네디 전 미 대통령과 냉전 대결이 정점으로 치닫던 레이건 전 대통령이 소련과 핵 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매드’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라고 밝혔다. 또 중국도 1005년 요(거란) 나라를 무찌를 수 없었던 송이 요와 협정을 맺어 이후 120년간 평화를 누렸던 역사를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 둘 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협조적 경쟁”이란 개념 아래 두 나라가 충돌을 피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삼성과 애플이 부품 시장에서 협력 관계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강조했다. 그는 “협력하고 때론 경쟁하는 과정에서 전략적 개념을 통해서 역사를 지속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마오쩌둥의 한국전쟁 참전 등 의도하지 않았던 전쟁이 일어났던 역사적 경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손석희 전 제이티비시(JTBC) 뉴스룸 앵커와 한 대담에서 한국의 전략적 선택에 대해 조언하면서 한국의 보다 주체적, 적극적인 역할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한국이 대미, 대중, 대러 관계에 있어서 더 발언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은 스스로가 처한 곤경을 파악하고 여기에 적극적인 참여자의 역할, 당사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국이 미-중이 선택한 어떤 전략의 대상에 그칠 이유가 없다”며 “더 명확하고 더 날카롭게 미-중-러 정부에 의견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안보는 미국, 경제적 번영은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이 처한 상황은 “굉장히 다차원적이고 복잡하다”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흑백의 논리에 내몰릴 필요가 없다고 귀뜸했다. 그는 “한국은 ‘맹수’들과 섞여서 사는 것에 더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배경으로 전쟁 뒤 이룬 경제적, 민주적 성취와 기술의 발전 등을 언급하며 한국이 가진 국가적 역량을 높이 샀다.

앨리슨 전 차관보는 1960년대부터 미 국방부 고문, 국방정책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해왔으며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 특별보좌관,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를 지냈다. 또한 1970년대 후반부터 30년에 걸쳐 하버드 케네디스쿨 학장과 하버드 벨퍼 과학 및 국제 문제 센터 소장을 지내면서 ‘결정의 본질’, ‘예정된 전쟁’ 등을 펴낸 세계 최고의 외교안보 전문가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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