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분기(6~9월)에 우리나라 전체 가계가 운용한 여유자금이 1년 전과 비교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은 늘지 않은 가운데 주택 구입을 위한 고금리 대출이나 물가 상승에 따른 목돈 지출이 증가하는 바람에 가계 여윳돈이 쪼그라든 것이다.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023년 2분기 자금순환(잠정)’ 통계를 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가 2분기 중 거래한 순자금운용(금융자산 운용총액에서 금융부채 조달총액을 뺀 자금) 규모는 28조6천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분기의 가계 순자금운용액(52조9천억원)에 견줘 거의 반토막 수준이고, 올해 1분기(76조9천억원)와 비교하면 62.8%(48조3천억원)나 줄어든 규모이다.
이처럼 가계 여윳돈이 대폭 축소된 것은 소득 정체에다 물가와 금리 상승 등에 따른 지출 및 빚 부담 증가가 겹친 때문이다. 송재창 한은 자금순환 팀장은 “2분기 들어 소득 회복 흐름이 주춤한 가운데 소비 증가세는 지속되고 주택거래가 되살아나면서 주택 투자에 들어간 자금이 증가해 가계의 순자금운용액이 크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2분기에 가구당 월평균 처분가능소득(383만원1천원)은 전년동기 대비 2.8% 감소한 반면에 지출(365만2천원)은 4.1% 증가했다. 특히 월평균 이자비용(13만1천원)이 42.4%나 늘어 여유자금 축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득 부진 등으로 가계의 재무 상태가 나빠진 가운데서도 부채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대출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계의 자금조달(부채)은 올해 1분기 중 7조원이 줄었다가 2분기 석달 동안에는 15조8천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분기별 가계의 자금조달 증가액은 지난해 2분기 36조1천억원에서 3분기 9조4천억원, 4분기 4조6천억원, 올해 1분기 마이너스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온 부채 축소(디레버리징) 흐름이 2분기에 반전한 것이다.
가계의 외부자금 조달 증가는 4월 이후 주택거래가 회복되면서 주택 투자를 위한 대출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라고 한은은 파악했다. 2분기 중 가계의 일반 장기대출금은 11조5천억원이 증가했고, 특례 보금자리론 등 정책금융이 포함된 ‘기타 금융기관 대출’은 8조4천억원이나 늘어 집값 급등기였던 2021년 2분기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쪼그라든 가계 여윳돈이 주택 투자에 몰리면서 2분기 중 주식 투자나 예금으로 간 가계 자금운용은 줄었다. 2분기 가계의 주식 운용자금은 2조4천억원이 줄어 지난해 4분기 이후 3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고, 예금은 28조2천억원 증가했지만 전년동기(39조3천억원)나 올해 1분기(62조2천억원)에 견줘보면 증가세는 뚜렷하게 둔화했다.
가계와 함께 다른 주요 경제주체인 기업의 투자 위축을 보여주는 자금 흐름도 2분기 자금순환표에 뚜렷하게 나타났다. 금융부문을 제외한 전체 기업의 자금조달액(대출 조달 및 직접 조달)에서 자금운용액을 뺀 순자금조달이 2분기 21조1천억원으로, 전년동기(52조4천억원)에 견주면 절반 이상 줄었다. 국민경제의 자금순환 흐름에서 기업은 가계와 달리 자금의 외부 운용액보다 외부자금 조달액이 더 많아 순자금조달이 발생하는데, 2분기에는 2021년 2분기(3조천억원) 이후 순자금조달 규모가 가장 적었다. 송재창 팀장은 “높은 대출금리에다 경기 불확실성과 투자 부진 지속 등으로 대출 수요가 줄어들고 1분기에 급증한 회사채 발행도 2분기에는 크게 줄어 기업 순자금조달의 축소로 이어졌다”고 해석했다.
일반정부의 자금 흐름도 움츠러드는 양상이 뚜렷했다. 일반정부의 순자금조달액은 1분기 23조1천억원에서 2분기 8조7천억원으로 급감했다. 전년동기(22조3천억원)와 비교하면 61% 줄어든 규모이다. 경기 부진 등으로 국세 수입이 감소했지만 정부가 지출을 더 크게 줄인 결과이다. 정부 국세 수입은 지난해 2분기 107조2천억원에서 올해 91조5천억원으로 15조7천억원 감소했는데, 정부 경상지출은 같은 기간 178조3천억원에서 135조9천억원으로 42조4천억원이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우리나라의 모든 경제부문이 보유한 총금융자산은 6월 말 기준으로 2경4581조5천억원으로, 2분기 중 311조4천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전체 가계의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은 1분기 2.21배에서 2분기 말 2.22배로 소폭 상승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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