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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난간에 걸린 국화꽃 한다발…그 애도에서 길어 올린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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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아 4집 ‘리버사이드’ 표지. 금반지레코드 제공 지난해 여름, 가수 정밀아는 서울 마포대교 북단 근처로 이사했다.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정갈하고 단아한 노랫말에 담아온 그다. ...

정밀아 4집 ‘리버사이드’ 표지. 금반지레코드 제공

지난해 여름, 가수 정밀아는 서울 마포대교 북단 근처로 이사했다.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정갈하고 단아한 노랫말에 담아온 그다. 직전까지 살았던 서울 청파동 골목골목은 3집 ‘청파소나타’(2020)가 됐다. 이 앨범으로 그는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등 3관왕에 올랐다. 새 동네는 그에게 또 어떤 노래들이 됐을까?

“작년 9월이었어요. 한강을 산책하다 마포대교를 건너는데, 난간에 뭔가가 매달려 있었어요. 가까이 가보니 국화꽃 한다발이었고, 그 위로 ‘생명의 전화’가 있었어요. 머리가 아득해졌어요. 한참 동안 강물과 국화꽃, 생명의 전화를 번갈아 봤어요.”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밀아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참 많이도 죽었다. 세월호뿐 아니라 주변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도 떠올랐다. 잠자던 슬픔과 휘청이는 마음이 되살아났다. 얼마 뒤 이태원 참사도 벌어졌다. ‘안 되겠어.’ 새 앨범을 위해 전에 써둔 곡들을 다 뒤엎었다. 마포대교 그 장면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4집 ‘리버사이드’가 최근 나왔다. 한강과 애도를 두 축으로 한 앨범이다.

정밀아 4집 ‘리버사이드’ 속지 사진. 정밀아가 직접 찍은 것이다. 금반지레코드 제공

앨범 문을 여는 건 세찬 빗소리다. 지난 장마철 집 베란다 창문을 열고 녹음했다. 올여름 비가 참 많이도 왔다. 오송 지하차도에 물이 들어차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여름엔 포항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정밀아는 첫번째 곡 ‘장마’에서 비에 잠긴 풍경을 보다가 먼 곳에 있는 친구의 안부를 묻는다. 한바탕 퍼붓고 나면 “어제 비는 모르는 일이란 듯 멋쩍게 개인다”.

개고 나면 세상을 또 살아간다. 정밀아는 두번째 곡 ‘서술’로 근황을 전한다. “푸른 언덕(청파동)을 떠나 새로운 곳에 왔어요/… 날씨에 맞게 살뜰히 옷도 잘 챙겨 입어요/ 많이 걷고 가끔은 달려요 숨이 가득 차오를 때까지/… 나는 혼자인 듯 혼자 아닌 사람입니다”라고 노래로 일기를 쓴다. 그는 “저처럼 혼자 사는 분들이 많아선지 이 노래에 특히 공감해주시더라”고 귀띔했다.

앨범과 같은 제목의 타이틀곡 ‘리버사이드’는 한강에 관한 노래다. 마포대교에서 국화꽃을 본 뒤로 그 주변을 늘 걸으며 마주한 풍경을 담았다. 강너머 노을은 아름답지만 바람에 구르는 빈 막걸릿병과 종이컵은 어딘지 쓸쓸하다. 긴 여운의 후주를 지나 6분50분짜리 대곡을 마무리하는 건 한강철교를 지나는 기차 소리다. 한강 둔치 나무를 보고 만든 ‘그림’, 강물을 바라보며 부르는 독백 ‘물결’, 자신과 같은 올빼미족 친구들에게 “좋은 아침 강가에서 우리 만날까”라고 청하는 ‘좋은 아침 배드민턴 클럽’ 또한 한강에서 길어 올린 노래들이다.

정밀아 4집 ‘리버사이드’ 속지 사진. 정밀아가 직접 찍은 것이다. 금반지레코드 제공

앨범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운다’는 가장 무겁고 아픈 노래다. 몇년 전 케이티엑스(KTX)에서 우는 청년과 서울역에서 우는 할머니를 보고 ‘우는 사람’에 관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시초다. 점차 ‘그들이 왜 우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에스엔에스(SNS)와 유튜브에서 우는 소리를 채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쟁으로 울고, 난민이 되어 울고, 지하철 장애인 시위·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 추모 집회에서 울며 소리쳤다.

“울음의 원인은 결코 우는 사람들이 만들지 않아요. 그 뒤에 구조적 원인이 있죠. 그런데 우린 점점 더 그들에게 무뎌지고 무관심해져요. 그게 제일 무서워요. 거대한 주제의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해도 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상기시키기만 해도 좋겠다 해서 만든 노래가 ‘운다’예요.” 그는 우는 사람들 소리를 노래에 스며들게 했다. 수많은 울음이 모여 7분31초짜리 노래가 됐다.

정밀아 4집 ‘리버사이드’ 속지 사진. 정밀아가 직접 찍은 것이다. 금반지레코드 제공

앨범 문을 닫는 건 연주곡 ‘한강 엘레지’다. 그는 올해 초 스페인·포르투갈 여행 중 어느 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모습을 보다 한강의 국화꽃을 떠올렸다. 뒤늦게라도 애도하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 단숨에 작곡했다. 가사를 쓰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때론 구구절절한 말보다 묵언이 더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연주곡에다 미사에서 녹음한 소리, 마포대교 국화꽃 옆에서 녹음한 소리를 더했다. 국화꽃의 주인공은 가고 없지만, 산 자들의 소리, 애도하는 마음은 오늘도 그저 흐른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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