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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본 왕궁의 원형? 부여서 백제 왕궁 조회당 추정터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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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터에서 나온 적심. 1300여년 전 백제의 임금과 신하들이 만나 인사하고 국가 의례를 치렀던 궁궐의 조회당(조당)으로 짐작되는 유적이 나왔다. 그동안 실체를 몰랐던 7세기 고대...

건물터에서 나온 적심.

1300여년 전 백제의 임금과 신하들이 만나 인사하고 국가 의례를 치렀던 궁궐의 조회당(조당)으로 짐작되는 유적이 나왔다. 그동안 실체를 몰랐던 7세기 고대 일본 나니와 왕궁 원형으로 볼 수 있다는 추정도 나와 주목된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충남 부여 관북리 96번지 유적군에서 고대 왕궁의 조당으로 추정되는, 길이 60m를 넘는 큰 건물터를 찾아냈다고 최근 발표했다. 관북리 유적은 6~7세기 백제 왕조의 사비(충남 부여) 도읍 시대의 가장 유력한 백제 왕궁터로 지목되어온 곳이다. 1978년 상가 건립을 위한 기초공사 과정에서 백제시대 배수로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된 것을 계기로 1982년부터 15차례 발굴 조사를 거쳐 여러 개의 건물터와 도로 흔적 등이 조사된 바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조사 지역 전경. 1호 건물지로 표시된 길쭉한 건물터가 백제시대의 왕궁 조당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연구소 자료를 보면, 지난해 9월부터 발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궁궐 조당터 추정 유적에서는 모두 사비 도읍 시대의 것으로 파악되는 1~3호 건물터와 여러 건축 얼개의 자취(유구)들이 확인된다. 특히 1호와 3호 건물터는 긴 축 방향이 북극성 방향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 특정한 방향 축을 지닌 궁궐 등의 특수 시설임을 보여준다.

주목되는 것은 가장 큰 규모의 1호 건물터다. 지형과 배치 양상, 규모 등으로 미뤄 왕궁 조회당일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연구소 쪽은 보고 있다. 1호 건물터 안에서는 기둥 밑 바탕돌인 초석을 받치는 기초 시설인 적심(積心)과 배수로 흔적 등이 나타났다. 특히 사비 도읍 시대 유적의 건물터에서 발견된 적심은 대부분 흙만 쌓아 만들었으나, 1호 건물터는 바닥부에서 석재를 모래 섞인 점토와 함께 쌓아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적심의 배치 형태를 고려할 때, 단독으로 된 여러 건물이 나란히 선 구조라는 게 연구소 쪽의 분석이다.

건물터에서 출토된 파문 수막새의 모습.

건물터 안에서는 공주 공산성,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 등에서 나온 바람개비 문양의 막새기와와 다양한 문양의 벽돌전이 함께 나왔다. 건물터 주위는 원래 습지 지형이었으나 흙으로 둑을 쌓고 안쪽으로 여러 방향에서 흙을 메우고 공들여 다지면서 보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소 쪽은 “왕궁 등의 시설을 짓기 위해 기반 작업을 하고 정전 등 궁궐 중심 건물의 주변을 둘러싼 긴 복도 얼개의 장랑식(長廊式) 건물을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1호 건물지는 확인된 길이만 약 60m이고 조사하면 북쪽으로 더 영역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부여 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전경.

일부 전문가들은 장랑식 1호 건물터가 6~7세기 동아시아 왕궁에서 의례를 열었던 공간인 조당원의 흔적이란 견해를 내놨다. 1·3호 건물터 북쪽엔 정전 성격의 중심 건물터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왕궁으로 보기엔 영역이 좁다는 반론도 있다. 박순발 충남대 교수(고고학)는 “대형 건물터의 공간 배치 구조가 일본 오사카에 있는 7세기 나니와 왕궁의 조당원 터와 유사해 궁궐 조영 과정에서 백제·일본의 영향 관계가 처음 구체적인 실체를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4일 오후 1시에 조사 현장을 공개할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 사진 도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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