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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랭보 ‘견자의 시학’이 연 프랑스 현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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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 위키미디어 코먼스 프랑스 현대시 155편 깊이 읽기 1권 결함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2권 그리고 축제는 계속된다 오생근 지음 l 문학과지성...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 위키미디어 코먼스
프랑스 현대시 155편 깊이 읽기

1권 결함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2권 그리고 축제는 계속된다

오생근 지음 l 문학과지성사 l 각 권 3만원

샤를 보들레르(1821~1867) 이후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단은 스테판 말라르메,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 같은 빼어난 시인들을 배출했다. 불문학자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프랑스 현대 시 155편 깊이 읽기’는 보들레르에게서 출발하는 프랑스 현대 시를 소개하고 해설한 두 권으로 된 책이다. 첫 권에는 보들레르부터 랭보까지 19세기 시인들의 시와 해설이 담겼고, 둘째 권에는 프랑시스 잠에서 시작해 폴 발레리와 기욤 아폴리네르를 거쳐 초현실주의 시인(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루이 아라공)을 지나 근년에 타계한 이브 본푸아와 필리프 자코테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시인 14명의 시와 해설이 실렸다. 시로 읽는 프랑스 현대 시 역사라고 할 만하다.

시집 ‘악의 꽃’으로 유명한 보들레르는 언어의 새로움과 안목의 새로움으로 프랑스 시 역사에 현대성의 지평을 연 시인이다. 앞선 낭만주의 시인들이 자연을 찬미함으로써 독자의 가슴에 다가갔다면, 보들레르는 우울과 고통과 광기가 들끓는 인간 자아의 심층을 들여다봄으로써 프랑스 시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올려놓았다. 특히 시인을 대중의 대척점에 놓았다는 점에서 보들레르는 현대성의 선포자였다. “이해받지 못하는 데 영광이 있다”라는 보들레르의 말은 시인이 추구하는 것이 대중의 환호가 아니라 언어의 모험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들레르의 이런 반대중주의가 응축된 시가 ‘알바트로스’다. “흔히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시름없는 항해의 동반자처럼/ 깊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따라가는 새를.” 날 수 있는 새 가운데 가장 큰 새 알바트로스는 날개를 펴 하늘을 날 때면 “창공의 왕자”처럼 자유롭다. 그런 알바트로스도 뱃사람들에게 잡혀서는 커다란 날개를 질질 끄는 우습고 추한 것이 되고 만다. 이 시는 알바트로스의 처지를 빌려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이야기하는 시다. 보들레르에게 시인은 지상에 붙들려 놀림감이 된 알바트로스와 같다.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희롱당하는 자가 시인이다. 이때의 대중은 산업화·도시화로 지배층이 된 부르주아지를 가리킨다.

눈여겨볼 것은 보들레르가 부르주아 대중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그 대중의 근거지인 도시 문명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울증이 겨울비처럼 내리는 어둡고 속악한 도시의 진창 속에 머무는 자가 보들레르다. 그러나 시인은 도시의 어둠과 더러움에 지지 않는다. 보들레르가 악(mal)이라고 부르는 것은 죄악과 병고와 불행이라는 뜻을 함께 지녔다. 그러므로 ‘악의 꽃’은 도시의 죄악과 병고와 불행 속에서 피어난 꽃을 뜻한다. 보들레르는 진창 같은 현실을 통해서 현실 너머의 ‘꽃’, 곧 이상과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여기서 보들레르의 상징주의가 탄생한다. 상징주의란 현실의 모든 것을 상징으로 삼아 그 상징이 가리키는 것을 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보들레르는 ‘상응’이라는 시에서 ‘자연’을 ‘신전’으로 묘사한다. 우리가 거니는 숲은 “상징의 숲”이 된다.

이 보들레르의 상징주의를 이어받은 시인이 말라르메다. 말라르메는 ‘바다의 미풍’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육체는 슬프다. 아! 나는 만 권의 책을 읽었건만./ 떠나자! 저곳으로 떠나자!” 23살 때 쓴 이 시에서 말라르메는 책이라는 문자의 세계를 떠나 바다의 미풍을 타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그 상징주의 시학을 시로써 명료히 그려낸 사람이 베를렌이다. 베를렌은 ‘시학’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또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오해의 여지가 없는 말을 골라서 사용하는 일이지./ 불확실한 것이 확실한 것과 결합되는/ 회색빛 노래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네.” 명료성은 상징의 적이다. 상징이 상징으로 살아나려면 명료성을 넘어서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모순어법’(oxymoron)이다. 서로 충돌하는 언어를 병치함으로써 현실에 균열을 내고 그 균열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어야 한다. 상징주의는 언어의 모험이고 정신의 모험이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젊은 날 베를렌은 열 살 어린 랭보와 동성 연인이 돼 브뤼셀과 런던을 돌며 광란의 삶을 살았다. 1872년부터 1873년까지 1년 남짓 계속된 이 동반 여행은 끝없는 다툼으로 이어져 파국으로 끝났다. 절망한 베를렌은 랭보를 권총으로 쏴 손목에 상처를 입혔고, 체포돼 2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랭보는 이 광기 어린 반란 중에 쓴 시를 모아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17살에 첫 시집을 내고 20살에 시 쓰기를 그만둔 랭보의 짧고도 강렬한 창작 이력은 ‘견자의 시학’을 탄생시켰다. 견자(le voyant)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자를 뜻한다. 상징주의가 보들레르에게서 시작됐듯이 견자의 시학도 보들레르에게서 비롯했다. 1871년 랭보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인은 견자가 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또 이 편지에서 보들레르야말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 들리지 않는 세계를 듣는 ‘최초의 견자’라고 찬양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보이는 현실에 짓눌리지 않고 그 현실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랭보는 견자에게 필요한 것이 ‘모든 감각의 이성적 착란’이라고 말한다. 광기 어린 그러나 이성을 잃지 않는 ‘감각의 착란’을 통해 현실을 초월함으로써 미지의 세계를 투시하는 것이다. 이 견자의 시학은 미학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랭보는 시로써 당대 부르주아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탄핵했다.

창작 이력의 마지막에 이르러 랭보는 ‘아듀’라는 작품을 쓴다. “완전히 현대적이어야 한다”라는 유명한 문장이 담긴 시다. 이 말은 유행의 첨단을 달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낡은 것들과 가차없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뜻이다. 랭보는 “정신의 싸움은 인간의 전투처럼 난폭한 법”이라고 말한다.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명령이 미학적 차원을 넘어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의 명령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이 명령과 함께 초현실주의를 비롯한 20세기 현대 시가 시작된다. 보들레르가 제출하고 랭보가 확립한 견자의 시학은 이브 본푸아(1925~2016)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프랑스 시인들을 관통했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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