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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이 아니었다면 살인자가 됐을 겁니다” 책 한권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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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직후 고아가 돼 남대문 지하도로에서 앵벌이와 도둑질을 하던 아이. 10대 때 학교가 아닌 아동보호소와 소년원을 드나들던 소년. 욱하는 성질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

6·25 전쟁 직후 고아가 돼 남대문 지하도로에서 앵벌이와 도둑질을 하던 아이. 10대 때 학교가 아닌 아동보호소와 소년원을 드나들던 소년. 욱하는 성질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먹질을 해대던 ‘전과 7범’의 사내가 교도소 출소 뒤 출판사 영업부장을 거쳐 대표를 지냈고, 70대인 지금도 지업사 대표를 맡고 있다. 돌베개 전 대표 임승남(71)씨 이야기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가 자신의 인생 역정과 독재정권 치하에서 1970~80년대 출판계에 있었던 일화를 정리한 ‘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다산북스)를 펴냈다.

“그 책이 아니었다면 지금 청송교도소에 있거나 어쩌면 살인자가 됐을 수도 있겠죠. 성질이 고약했어요. 조금만 비위가 상하면 누구든 쥐어팼어요.”

지난 24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지금의 임승남’을 만든 것은 ‘한 권의 책’이라고 했다. 교도소에서 만난 ‘새 마음의 샘터’라는 책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교도소에서 임씨가 특별히 보살피던 동생 ‘엿장수’의 어머니가 그에게 선물한 책이다. 임택근 아나운서가 동서고금의 명언을 엮어 만든 이 책을 당시 그는 교도소에서 하루 세번씩 습관적으로 읽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의 의미를 모른다”는 괴테의 말부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테텔레스의 철학까지 읽고 또 읽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읽고 나를 먼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태어나서부터 그때가지 제 삶을 계속 돌이켜봤어요. ‘앵벌이로 시작해서 건달, 도둑질만 한 것이 내 삶이구나’ ‘나는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았구나’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정말 죽고 싶었지요.”

하루 세번씩 읽은 문구는 수시로 그의 일상에 나타났다. 교도소 조장이 면박을 주거나 꼴사나운 위세를 떨 때, 또 교도소에서 농사짓는 일을 하면서 힘들 때 ‘인내는 쓰다. 그러나 열매는 달다. 참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글귀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난 뒤로는 주먹을 벌벌 떨면서도 주먹질을 하지 않게 됐다.

삶의 태도를 바꾼 그는 1972년 유신체제 때 학생운동을 하다 잡혀 들어온 고대 한맥회 회원 정진영씨를 교도소에서 만났다. 정씨는 임씨의 인간다움을 알아봤고, 출소한 임씨가 신생출판사 영업 배본사원으로 일할 수 있도록 알아봐 줬다. 그는 영업사원을 하면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한 책들을 만났다. 최인훈의 ‘광장’부터 황석영의 ‘객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리영희 기자가 쓴 책들을 읽으며 사회의식을 벼렸다. 그러다 이해찬씨가 주축이 돼 만든 돌베개 경영이 어려워지자 인수해 대표가 됐고, 그 뒤 ‘전태일 평전’ 등을 내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는 돌베개를 안착시킨 뒤 1993년 대표직을 그만두고 지업사를 차려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책은 마음의 양식입니다. 밥을 안 먹으면 배고파서 병들고 죽듯, 책을 안 보면 마음이 약해지고 둔해져서, 인간답게 살지 못합니다. 마음의 성장은 책에서 얻을 수 있어요. 젊은이들이 내면에 자극을 주는 책, 인간을 성장시킬 수 있는 책들을 더 많이 만나면 좋겠습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선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감명 깊었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 한 명이 바뀌었다고 언론 자유가 탄압받는 등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뿌리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마음의 양식을 쌓아 흔들리지 않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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