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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만능 살풍경 그려낸 조정래 “내 안의 욕심 바꿀 단초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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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작가 조정래(80)가 4년 만의 신작소설인 ‘황금종이’의 집필 과정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지금 세상이 엉망인 것은 지식인들의 99%가 지은 ...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작가 조정래(80)가 4년 만의 신작소설인 ‘황금종이’의 집필 과정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지금 세상이 엉망인 것은 지식인들의 99%가 지은 죄로 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해냄 제공

“운동권이 자기 욕심, 권력욕에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변질되었고 존재가 희미해졌다. 지금은 매도의 대상이 된 현실이다. 자신의 이익 앞에 흔들리는 게 인간의 보편적 욕심일지 모르겠다.”

그런 세계로부터 안간힘을 쓰며 ‘항심’을 지키는 인물이 있으니, 운동권 출신 변호사 ‘이태하’다. 작가 조정래가 ‘천년의 질문’(2019)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소설 ‘황금종이’(전 2권)에서 빚어낸 인물이다. 캐릭터로서의 이태하가 얼마나 현실적인가 비관하는 대중이 이 시대 윤리의 풍향계를 흔드는 바람의 실체일 것이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쓸 때만도 아침 9시부터 글감옥에 스스로를 가둬 새벽 2~3시까지 육필로 원고지를 채워갔던 조정래가 하루 4시간, 5매씩을 목표로, 그러다 15~20매씩까지 이야기에 떠밀리듯 치고 나가 애초 계획보다 석달 이르게 완성한 작품이 ‘황금종이’다. 여든 나이, 등단 53년에 이르러서다. 황금만능주의, 즉 돈을 좇아 벌어지는 온갖 살풍경이 거장의 필치와 혜안, 무엇보다 분노와 슬픔의 정동을 따라 펼쳐진다. 드라마를 보듯, 한 사건 한 사건씩 조명된다.

대통령이 ‘부자 되세요’라 덕담하고, 초등생 과반이 장래희망을 “부자”라 답하는 시대, “돈에 환장하고 미쳐 돌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이태하는 작가가 염원하는 “소설적 구원”이자 “삶의 탈출구”다. 군부독재 시절 학생운동으로 이름을 날리다 돌연 잠적하고선 대학 졸업 전 사법고시를 통과해 전도유망한 검사가 된 이태하. 하지만 재벌수사에 대한 신념으로 조직과 충돌하면서 검사를 그만둔다. “검사의 90퍼센트 이상이 반공주의자이고, 보수주의자이고, 출세주의자라는 말”을 이태하는 곱씹을 뿐이다.

소설에선 이태하 변호사가 만나는 사건들이 옴니버스식으로 이어진다. 죄다 돈 싸움이다. 특히 유산 다툼과 같이 부모의 재산이 발단이 된다. 부친의 장례식을 마친 당일 유언입네, 법입네, 위아래가 있네없네 유산 분쟁을 벌이는 4남매의 이야기는 ‘큰 싸움, 작은 싸움’ 편을 구성하는데, “부모가 남긴 돈 앞에서 모든 자식들은 다 쌈박질하게 돼 있어. (…) 다만 큰 돈 앞에서는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작은 돈 앞에서는 작은 싸움이 벌어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란 태하의 말을 압축한다.

조정래 작가의 신작 ‘황금종이’(전 2권). ‘황금종이’란 제목을 두고 조 작가의 대학생 손자도 곧 돈을 의미하지 않냐고 답했다고 한다.

사건과 사건 사이 대학 1년생 이태하를 데모 현장에서 도서관으로 내몬 선배 한지섭과 재벌수사의 후과로 변호사 시장에서도 고립된 이태하를 돕는 대학동창 박현규, 서울 강남 5층 상가건물을 인수하자마자 월세를 네 배 올린 김 사장에게 쇠망치를 내리친 식당 세입자 강남길 부부 등이 등장하고, 인물과 인물은 또 만난다.

소설은 어제치 사건기사를 단편 하나씩으로 복원한 듯 시의적이고 구체적이면서 ‘페이지 터너’의 속도를 발휘한다. 대체로 중상류층의 “큰 싸움” 그러나 치졸한 탐욕전이 몸통이란 점에서, 바닥을 향하는 이태하와 한지섭의 태도는 귀하고 올돌하다. 다만 작가는 친구 윤민서가 부탁하는 수임료 10억원짜리 사건의 딜레마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태하로 마무리하는데, 작가의 도리없는 비관 속 의지로 낙관해보려는 최선의 방식이자 바로 당대 대중에게 이제 답을 묻겠다는 작가의 결기가 담긴 방식이다.

조정래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어떤 꼴인가, 짐승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할 정도로 짐승적 삶을 살며 야비하게 돈에 휘말린 상황을 수십 가지 사례로 보여주고자 했다”며 “내 안의 욕심이라는 악마가 얼마나 큰가 깨닫고,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 철학적 사고의 단초가 소설로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근현대 3부작’으로만 1500만부를 판매한 대문호라 할지언정, 독자가 찾지 않으면 무용한 일일 터. “(탐욕에 관한 한) 종교도 실패했다”는 조정래는 “써봐야 안 된다, 하지만 써야 한다, 그게 내 소임이다. 나 자신을 상대로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작가로서의 삶에 후회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태백산맥’ 집필 때 술을 끊는 등 절제와 금기의 항목만 마흔 가지가 넘는 삶을 유지 중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소설’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작가 조정래는 영혼과 내세를 주제로 한 소설을 마지막 소설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등단 60주년 때의 출간이 목표다. 해냄 제공

“(오른쪽 눈과 왼쪽 귀 등에 문제가 생겨) 2시간 이상씩 읽기가 어렵지만 이미 자료를 보고 있다”며 “영혼과 내세에 관한 주제의 소설로 문학인생을 마칠까 계획한다”고 예고했다. 그는 “책도 기증하면서, 하나하나 삶을 정리해온 지 2년 됐다. 그게 올바른 노년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회한이 아니라 각오였다. 대미의 소설은 등단 60주년(2030년)에 맞춰 나올 전망이다.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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