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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 대작들 잇따라 광주로…김환기 말년 점선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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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 작가의 2021년 작 유화 ‘검은 소파’. 노형석 기자 흐르는 시간은 어느새 흘러내리는 물감이 되었다. 화가의 붓에 묻힌 물감은 세월의 켜가 잔뜩 쌓인 시커멓고 허연 소파를...

한희원 작가의 2021년 작 유화 ‘검은 소파’. 노형석 기자

흐르는 시간은 어느새 흘러내리는 물감이 되었다.

화가의 붓에 묻힌 물감은 세월의 켜가 잔뜩 쌓인 시커멓고 허연 소파를 화폭에 빚어냈다. 지금 광주시립미술관 3층에 차린 한희원(68) 화가의 초대전 ‘존재와 시간’(내달 17일까지)의 끝자락에서 회심을 권하듯 바라보이는 ‘검은 소파’의 모습이다. 남도 산하와 사람들의 현장을 항상 주시했던 그의 시선은 이제 사람과 자연, 시간과 공간의 심연을 찬찬히 파고들어 가고 있다.

가을 녘 그림 애호가들은 광주로 발길을 돌려도 좋다. 가을 녘 남도에서 활동했거나 활동 중인 리얼리즘, 추상 모더니즘 대가들의 전시가 잇따라 펼쳐지고 있다. 3층 5∙6 전시실에 펼쳐진 한희원 작가의 ‘존재와 시간’ 전은 작가의 1970~1980년대 거리의 미술과 남도 민중미술에서 시작해 1990년대 이후 남도의 풍경과 인간과 자연의 내면,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작업의 지평을 확장하는 과정을 4개의 섹션을 통해 보여준다. 대학교 시절 작업했던 작품부터 인간 삶의 근원적 본질에 대해 작업한 신작까지 ‘민중의 아리랑’, ‘바람의 풍경’, ‘생의 노래’, ‘피안의 시간’으로 나눠 출품작들이 펼쳐지고 있다.

한희원 작가의 그림 하면 눈망울 같은 별들이 푸른 밤하늘에 반짝이는 낭만적 심상의 풍경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신작과 근작, 과거의 작품들을 보면 철저한 현장 중심의 사생과 사색을 통해 구상에서 추상으로, 현상에서 본질로 이어지는 창작의 벼리를 갈고 닦아왔다는 것을 여실히 짐작할 수 있다.

김보현 작가의 1993~94년작 유화 ‘날으는 새2’. 조선대미술관 소장품이다. 노형석 기자

1978년에 광주 양림교회 지하 작업실에서 그렸던 그의 초창기 대표작인 ‘가난한 사람들’이 특히 눈길을 끈다. 1993년 9월 광주 망월동 5∙18묘지에서 진행된 ‘광주통일미술제’에도 출품되었던 이 작품은 1970년대 남도 도시민의 암담한 현실을 단순한 선과 색을 사용해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담아냈다. 서구 사실주의 화풍의 비조가 된 쿠르베의 대작 ‘오르낭의 매장’의 구도를 단박에 떠올리게 하는 대작 ‘구례가는 길’(1985)은 1980년대 각양각색 남도 서민들의 질박한 단면을 생생하게 포착한 역작이기도 하다.

김환기, 강용운, 양수아, 김보현, 김영중 등 남도 추상화 주요작가 8명의 주요 작품들과 작업 흐름을 간추려 보여주는 아카이브 기획전 ‘추상의 추상’(26일까지)은 4부에 걸쳐 이들의 자료 아카이브와 주요 작품들을 보여주는 일종의 요약형 전시다. 근대기 광주를 비롯 남도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남종화와 자연∙서정주의에 기초한 구상미술이라는 두 가지의 큰 흐름 속에서 움터나온 순수한 점∙선∙면∙색채 표현의 추상작품을 다시금 생각하는 추상(追想)을 통해 떠올린다는 점에서 독특한 동음이의 형식의 전시제목을 붙였다.

김영중 작가의 1992년작 ‘화목’.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노형석 기자

또한 추상미술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시기에 굴곡진 길을 걸어간 이들을 높이 받들어 소중히 여기고 우러러본다는 추상(推尙)의 의미도 전시에 녹아있다고 미술관 쪽은 설명하고 있다.

전남 신안군 섬에서 태어나 진작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의 밤바다에서 우주를 풀어놓은 말년의 대작들을 끌어낸 김환기의 점선화와 비정형의 앵포르멜(informel) 추상형식을 중앙화단보다도 앞서 선보인 강용운, 전쟁기 빨치산 활동을 했던 전력 때문에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 상쟁의 비극에서 차오르는 울분을 추상화면에 터뜨린 양수아, 이념 대립의 시기에도 추상표현주의에 탐닉하며 미국 화단에서 자수성가한 김보현의 인간 추상, 음양 원리에 바탕을 둔 선과 면의 독창적 조형미를 일군 조각가 김영중 등의 수작들을 만날 수 있다.

광주/글 ·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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