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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총장 김대진 “클래식, 케이팝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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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경기아트센터 제공 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음악원. 셔츠에 넥타이 차림을 한 김대진(61) 총장이 지휘자로 나섰다. 피아노 ...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경기아트센터 제공

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음악원. 셔츠에 넥타이 차림을 한 김대진(61) 총장이 지휘자로 나섰다. 피아노 15대에 팀파니가 합류한 ‘피아노 오케스트라’였다. 단원은 김 총장을 포함해 교수와 재학생, 졸업생 등 30명. 피아노 1대에 2명씩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첫 부분에서 60개의 손이 일제히 내리치는 타건은 독특한 웅장함을 자아냈다. 10월4일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피아노페스티벌 개막 공연 리허설이었다.

“우리나라 음악교육의 장단점이 다 담겨 있어요.” 김 총장은 이런 연주 방식의 문제점부터 짚었다. 연주자의 개성 발현이 어렵다는 것. “엄청난 절제와 훈련이 필요해요. 개성과 창의력엔 걸림돌이죠.” 하지만 이를 상쇄하는 장점도 빼놓지 않았다. “좋은 앙상블엔 이런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30명 연주자가 소리를 딱 맞춰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전체 리허설만 7~8차례, 그에 앞선 그룹별, 파트너별 사전 연습도 필수다. 피아노 1대의 솔로 연주로 시작하는 공연은 ‘2대의 피아노 소나타’(바르톡), 4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는 ‘탄호이저 서곡’(바그너)으로 이어진다. 압권은 15대의 피아노가 연주하는 베토벤 5번 교향곡 1~4악장. 때론 피아노 1대가 독주악기처럼 연주하는 등 곡의 흐름에 따라 피아노 편성을 달리한다. 입체적 음향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김 총장은 졸업생과 짝을 이루며, 바로 옆 피아노엔 이진상(42) 교수가 앉는다.

이런 연주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 한예종 개원 30주년 공연에서도 30명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2018년 한예종 25돌엔 피아노 25대에 50명이 연주했다. 그것도 변칙적인 박자에 리듬도 복잡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었다. “불가능하다 싶었던 무모한 도전이었는데, 그게 되더라고요.” 그는 “처음엔 25주년, 30주년 숫자에 맞춰 진부하게 시작했는데 피아노의 모든 가능성을 점검하는 실험 정신이 있더라”며 웃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개원 25돌을 맞아 2018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노 25대로 선보인 피아노 오케스트라 연주 장면. 한예종 제공

두 명이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탄곡은 네 손이 빚어내는 화음과 어긋남이 묘미다. “피아니스트는 원래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는 데 취약해요. 연탄곡에선 남의 소리를 들어야 해요. 피아니스트에게 제일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형식이죠.” 김 총장은 최근 피아니스트 박재홍(24), 지난해엔 문지영(28)과 각각 연탄곡을 연주했다. 2021년과 2015년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제자들이다. “청중은 잘 모르실 텐데, 연탄곡 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라든지 이런 말을 슬쩍슬쩍 건네요.” 제자들과 하는 연탄곡 연주는 그에게 일종의 교습이었던 것.

박재홍, 문지영에 앞서 김선욱(35), 손열음(37)이 제자다. 세계적인 콩쿠르 우승자를 많이 배출한 그에게도 콩쿠르는 여전히 딜레마였다. “연주자가 자신을 알리는 방법 가운데 가장 공정하고 정당한 방법이 콩쿠르죠. 하지만 그것이 목표가 돼버리는 건 큰 문제지요.” 그는 “콩쿠르를 통해 한예종이 알려졌고, 거기에 누구보다 앞장선 제가 이제 와서 콩쿠르 문제를 지적하는 건 굉장히 이중적”이라면서도 “사실은 콩쿠르가 이렇게 커질 줄, 이토록 학생들의 목표가 돼버릴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한국이 ‘콩쿠르 강국’일지언정 ‘클래식 강국’은 아니라는 게 그의 지론. 저변은 약하다는 거다.

“세계로 뻗어 나간 케이(K)팝을 좀 배웠으면 좋겠어요. 이 많은 클래식 영재들을 왜 수출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는 “이 나이쯤 된 제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라면서도, 인재는 넘치되 시장은 좁은 국내 음악계 현실에 답답해했다.

최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선임된 제자 김선욱에 대해선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김 총장 자신도 피아니스트에서 출발해 수원시향, 창원시향 지휘자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문자라도 보냈느냐고 묻자, “보내지 않았다”며 “여러 느낌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저는 한참 늦게 지휘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김선욱은 지금 세계에서 알아주는 피아니스트이고 유럽 연주도 많아요. 속된말로 잘 나가는 젊은 피아니스트죠.” 그러면서 오래전 기억을 꺼냈다. “한예종 영재교육원에 들어온 초등학교 5학년 김선욱과 첫 레슨을 할 때였어요.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말러 교향곡을 치고 있더라고요. ‘너 피아노 배우러 온 거지 뭐하는 거냐’며 크게 뭐라고 했지요.”

그는 “김선욱이 언젠가 지휘를 할 줄은 알았다”며 “그냥 지휘만 하는 것과 상임 지휘자는 전혀 다른 건데 그걸 경험해보는 건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 지휘자라는 게 모든 음악인이 꿈꾸는 정상적인 욕망”이라며 “김선욱이 피아노를 계속 치고, (다른 일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아노에 대한 깊이가 더해질수록 더 좋은 음악가, 더 좋은 지휘자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김대진(61)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경기피아노페스티벌에서 연주자 30명이 피아노 15대를 연주하는 ‘피아노 오케스트라’를 선보인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한예종 교수로 재직하다 최근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으로 떠난 피아니스트 손민수(47)와 그의 제자 임윤찬(19)에 대해선 살짝 아쉬움도 엿보였다. “자신의 행복을 좇는 걸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어요. 저는 여기서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본인들은 생각이 다르니 그건 존중해야죠.” 그는 “이제 우리나라 선생님들까지 스카우트하는데 이건 사실 기분 좋은 일”이라며 웃었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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