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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로’ 이전에 데이팅 예능 원조 ‘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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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시작한 ‘나는 솔로’ 자기소개 장면. ‘나는 솔로’는 이엔에이가 에스비에스 플러스와 함께 제작하면서 아이피 문제가 해결됐다. 이엔에이 제공 ☞한겨레 뉴스레터 H:730 ...

2021년 시작한 ‘나는 솔로’ 자기소개 장면. ‘나는 솔로’는 이엔에이가 에스비에스 플러스와 함께 제작하면서 아이피 문제가 해결됐다. 이엔에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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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제인 비연예인 남녀들의 만남 프로그램 ‘나는 솔로’는 이엔에이(ENA)와 에스비에스 플러스(SBS PLUS)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제작비 문제도 있지만, ‘나는 솔로’가 차용한 설정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에스비에스에 있어서다. ‘비연예인 남녀가 특정 공간에 머물며 데이트권을 획득하려고 경쟁하고 이름 대신 다른 호칭으로 부른다’는 설정은 에스비에스(SBS)가 2011~2014년 방영한 ‘짝’에서 시작됐다. ‘짝’이 인기를 끌자 다른 방송사에서 유사한 설정의 게임과 예능 프로그램 코너를 선보였고, 에스비에스는 법정 공방 끝에 2017년 대법원으로부터 ‘짝’에 대한 창작성을 인정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무대 배경, 게임 규칙, 소품, 진행 방법 등 다양한 요소들이 제작 의도나 방침에 따라 선택되고 배열되어 다른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특징이나 개성이 나타난다면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봤다. 이후 ‘짝’과 같은 형식으로 이엔에이와 디스커버리채널이 만든 ‘스트레인저’는 2020년 방영 당시 에스비에스에 아이피(IP·지식재산권) 사용료를 지불했지만, ‘나는 솔로’는 에스비에스 플러스가 함께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아이피 문제가 해결됐다.

‘짝’이 ‘나는 솔로’까지 이어지며 독창적인 포맷의 생명력을 증명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피에 대한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케이(K)-콘텐츠 불법 유통 근절대책’을 다각도에서 마련하는 등 아이피는 정책적으로도 중요한 화두가 됐다. 한국방송(KBS)은 2013년 끝난 ‘김승우의 승승장구’ 저작권을 2018년에 등록했고, 문화방송(MBC)은 영상과는 별개로 ‘진짜 사나이’ ‘복면가왕’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몇몇 프로그램은 포맷을 따로 등록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진다.

2020년 시작한 ‘스트레인저’ 자기소개 장면. ‘스트레인저’는 방영 당시 에스비에스에 사용료를 지불했다. 이엔에이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집계한 드라마·예능 등을 포함한 영상물 저작권 등록 건수는 2012년 505건에서 2020년 1915건, 2021년 2643건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예능 프로그램만 따로 집계해보니 2020년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문화방송은 2016년 약 15건에서 2020년 약 50건, 에스비에스는 2017년 4건에서 2021년 약 20건을 등록했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과거에는 예능에서 저작권 등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면 최근 수년 사이 그 중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저작권 등록이 아이피의 고유 권한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송 등 문제가 불거질 경우엔 증빙 자료로 활용된다. 최근 채널이 많아지고 프로그램이 쏟아지면서 방송사끼리 저작권 침해로 인한 법적 분쟁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2021년 티브이(TV) 조선은 엠비엔(MBN) ‘보이스트롯’이 자사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과 유사해 저작권을 침해한다며 방송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티브이 조선이 소송을 취하하면서 법정 공방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방송사끼리 아이피 소유권을 두고 갈등을 드러낸 사례다.

요즘에는 아예 독창적이다 싶으면 침해 요소를 발 빠르게 차단하는 추세다. 에스비에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저작권 등록을 다른 프로그램보다 빠르게 했다. 에스비에스 관계자는 “화자가 다른 상대와 대화하듯이 과거 사건을 얘기하는 콘셉트가 중요해서 비슷한 프로그램이 나올 경우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1~2014년 방영된 ‘짝’의 자기소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이런 흐름은 예능 프로그램 포맷 수출과도 관련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21년 콘텐츠산업 조사’를 보면, 방송 프로그램 포맷 수출액은 2020년 1288만달러(약 163억원), 2021년 1491만달러(약 189억원)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 케이블 방송사 관계자는 “예능 프로그램은 드라마보다 제작비가 적고 바이블이라고 하는 설정을 잘 만들어놓으면 꾸준히 판매할 수 있어 장기적인 아이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씨제이이엔엠(CJ ENM)은 2013~2015년 방영한 ‘더 지니어스’의 포맷을 지난 13일 영국 최대 민영방송사인 아이티브이(ITV)에 수출했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 특성상 아이피 소유권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한쪽에선 나온다. ‘더 지니어스’와 넷플릭스가 방영한 ‘데블스 플랜’을 비슷하다고 보느냐 그러지 않느냐에는 자의적인 해석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또 ‘짝’처럼 저작권을 주장하려면 대개 소송을 거쳐야 하는데 그런 다툼들이 시장의 성장을 더디게 만든다는 우려도 있다. 또 다른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예능은 흐름을 타기 때문에 비슷한 설정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포맷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방송사끼리 저작권 공방은 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아이피가 중요해진 시대에 각 방송사와 창작자 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해주는 건강한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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