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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으로 그린 세계…전후의 가을과 제주의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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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의 ‘추경’(1953).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순우리말로 된 색채어 표현을 찾고 싶어졌다. 화가 오지호(1906~1982)의 ‘추경’을 보며 든 생각이다. 옅은 갈색과 노란색으...

오지호의 ‘추경’(1953).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순우리말로 된 색채어 표현을 찾고 싶어졌다. 화가 오지호(1906~1982)의 ‘추경’을 보며 든 생각이다. 옅은 갈색과 노란색으로 덮인 산이 보인다. 힐끗힐끗 발그스름함이 깃들었다. 구김 없이 펼쳐진 맑은 하늘을 표현하는 파란색이 더해졌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들은 계절의 정취를 더한다. 빛과 색채의 화가로 불리는 오지호가 그려낸 가을은 이처럼 곱다.

누군가 한국 근대미술 중 ‘인상주의’ 그림의 존재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오지호를 추천하리라. ‘남향집’(1939), ‘사과밭’(1937) 등의 초기작에서 오지호는 그림자에 스민 빛과 사과나무 아래 보랏빛 잔영까지 살려냈다. ‘초추’(1948)에는 물러가는 녹음과 자리를 엿보는 단풍의 머뭇거림이 보인다. 조선의 계절은 정말 이토록 찬란했을까.

조선의 ‘찬란한 사계’

‘추경’은 어딘가 처연하다. 초기 작품들 속 세밀한 붓질에 비해 윤곽선을 굵고 흐드러지게 칠해서인가. 암갈색과 황갈색의 무거운 색조 때문일까. 계절이 주는 산산함이 떠올라서인가. 1953. 작품의 제작 연도가 눈에 띈다. 한국전쟁 휴전이 선언된 해다. 전쟁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오지호는 빨치산 부대에 납치돼 선전업무에 동원됐다. 군사재판에 회부됐으나 2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어둠에 잠식당한 빛의 화가를 다시 품은 건 고향 남도였다.

오지호는 그 후 광주 지산동에 초옥을 새로 지었다. 화실에는 빛이 잘 들어오도록 채광창을 내었다. ‘추경’은 그때쯤 그려졌다고 전해진다. 양림동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작은 산을 담았다. 심판의 시간을 지나온 안도감과 평생의 멍에에 대한 비애가 보인다. 밝고도 옅은 원색들의 어우러짐에 자연과 계절을 마주한 기쁨도 스며 있다. 숨겨진 듯 깃들어 있는 노란색과 밝은 주황색으로 표현된 단풍에서 빛이 슬며시 새어나올 것만 같다. 그가 살아내서 참 다행이다.

오지호는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익혔다. 일본 최고의 화가였던 후지시마 다케지에게서 유럽의 인상주의와 모더니즘 회화를 배웠다. 그 배움을 그대로 따라가면 쉬울 일이었다. 유학 중 잠시 귀국했을 때 조선의 밝은 태양광선, 빛에 산란하는 색채와 맑은 바람결을 새삼 인식했다. 물들기보다 발견했고 따라가기보다 새로이 길을 내었다. 한국적 인상주의의 시작이었다. ‘도원풍경’(1937)의 움트는 꽃들에서 봄의 환희를 느낀다. ‘돌섬’(1949)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면 벌써 여름이 그립다. 즐겨 그린 여러 점의 ‘설경’ 속 청색과 순백의 청초함에 설렌다.

그는 그저 탐미주의자일까.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하고 싶다. 지조 있는 예술가였다.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전쟁기록화 제작을 끝까지 거절했다. “그림을 가르치시기보다는 정의롭게 살라고 채근하셨다.” 아들 오승우 화백의 회고다.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안으로 자신의 옳음을 지켜냈고 붓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그렸다. 오지호는 결국 삶의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 그의 작품 속 가을빛이 새삼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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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기법으로 변주되는 원색

김현수의 ‘기다리는 숲’(2022). 김현수 제공

국내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는 올해도 화려했다. 현란한 작품들 사이로 초록을 품고 있는 캔버스가 보였다. 다가갈수록 분위기를 타고 들떴던 마음이 살짝 이울어진다. 김현수의 작품과 조우하고 마음을 뺏겼다.

‘기다리는 숲’은 녹음이 마디마디 짙게 채워진 숲을 옮겨왔다. 세상의 모든 초록이 한 폭에 담겨 있는 듯하다. 오롯하게 서 있는 나무와 나무기둥을 쫓아가다 보면 나의 구부러진 등이 곧게 펴진다. 사이사이 비집고 새어나온 풀들을 산책하듯 따라가 본다. 틈 사이에 하얀 집이 숨어 있듯 드러나 있다. 유년 시절의 어떤 장면들이 섬광처럼 스친다. 그 찰나를 붙잡았다. 앞뒤로 풀밭이 넓은 집에 살았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푸릇함이 담겼다. 큰 아름드리나무가 서 있었다. 때로는 할머니와 함께 심은 꽃나무와 덩굴이 자라나 이층 내 방 창문에 닿았다. 그 기억과 온기에 좀 더 머물고 싶어 다시 ‘기다리는 숲’으로 들어가 본다. 축축하게 젖어 있는 갈색의 길에서 흙내음이 물씬 풍겼고 그리움은 짙어졌다.

김현수는 성신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제주미술대전, 광주화루, 신한 영 페스타 등에서 수상했다. 작업의 시작은 한지를 정성스레 길들이는 것부터다. 곱게 갈아 올린 분채(동양화에 사용하는 가루물감)에 튜브 물감을 얹어낸다. 한지 위에 스미고 또 겹쳐낸다. 동양화 작업은 이처럼 시간을 쌓아올린다. 한국화 기법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아크릴도 함께 사용하는 등 서양화의 요소도 살려낸다. 머물러 있던 원색들이 다양하게 변주된다.

김현수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가 그려내는 시선 끝엔 늘 고향이 자리한다. ‘기다리는 숲’의 색채는 대체로 진하고 짙으나 다소 가라앉은 듯 어둡고 차분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어릴 적 보았던 제주의 풍경이 “제 작업을 관통하는 기억”이라며 “제주에 내려갈 때마다 매번 유년 시절 기억이 있는 곳에 들러요. 조천에 연북정이라는 곳”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정자 위에서 제주의 바다와 산을 바라보곤 했다고. 제멋대로의 답을 찾아냈다. 연북정은 기다림의 장소였다. 조선시대 제주의 관문인 이곳에 유배 온 사람들이 머물렀다. 한양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라며 북쪽의 임금에게 충정을 보냈다. ‘연북정’이라는 이름에는 아련함과 아픔이 서려 있다. 축적된 시간이 아득히 그리고 잔잔하게 전해져 온다.

오지호는 식민지 시대와 전쟁을 지나왔다. 그저 그늘에 잠들 뻔한 ‘조선의 빛’을 기어이 가져왔다. 그제야 알았다. 조선의 계절과 색이 이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김현수의 넘실대는 초록은 기억의 문을 열어젖힌다. 그 장면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 누구나 잿빛으로만 채색된 날들에 갇힐 때가 있다. 만약 그러하다면, 어서 커튼을 열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 다만 어둠 속 변덕스럽게 새어드는 빛이 있기를.

미술 칼럼니스트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소심하고 예민한 기질만 있고 재능이 없단 걸 깨달았다. 모네와 피카소보다 김환기와 구본웅이 좋았기에 주저 없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했다. 시대의 사연을 품고 있는 근대미술에 애정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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