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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담 아니라 끌린 마라톤 실화” 들고온 강제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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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보스톤’ 을 연출한 강제규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솔직히 충격을 받았어요. 영화판에 오래 있으면서 영광의 순간도, 좌절도 여러번 지켜봤지만 지금처럼 위기라는 말이...

‘1947 보스톤’ 을 연출한 강제규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솔직히 충격을 받았어요. 영화판에 오래 있으면서 영광의 순간도, 좌절도 여러번 지켜봤지만 지금처럼 위기라는 말이 실감나는 건 처음이네요. 굉장히 큰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지난여름 한국영화 흥행 성적에 대한 의견을 묻자 강제규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그의 말에 더 큰 무게가 실리는 것은, 강 감독이 ‘은행나무 침대’(1996)’와 ‘쉬리’(1999)로 한국영화의 ‘판’을 바꾼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8년 만에 ‘1947 보스톤’(27일 개봉)으로 돌아온 강 감독을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우리는 피지배와 한국 전쟁이라는 아픔의 역사를 겪으면서 승리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적지 않습니까. 서윤복 선수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은 그중 하나일 텐데 짧은 사실 말고는 알려진 게 많지 않죠. 저도 영화를 준비하면서 자세히 알게 됐는데 이야기의 원형이 놀라웠습니다. 그 힘을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겠다 생각했어요.”

모두가 안 된다고 했던 판타지 장르로 큰 성공을 거둔 데뷔작 ‘은행나무 침대’ 이후 강 감독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2004)에서 분단의 아픔을 대중적 서사에 녹였다. “제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개인의 성취보다 한국영화가 바뀌어야 한다.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한 분위기였어요. 영화인들이 직배사 반대 시위하면서 삭발도 하고 그랬잖아요. ‘쉬리’가 나올 때만 해도 한국영화 점유율이 20% 정도였거든요. 누군가의 도전이 필요했고 한계나 금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소재나 주제, 장르에 접근했죠.”

영화 ‘1947 보스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강 감독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이 영웅담이 아니어서 끌렸다고 했다. “당시 서윤복 선수의 코치였던 손기정 선수, 서 선수와 함께 뛴 남승룡 선수의 가려졌던 이야기가 신선했어요. 미군정의 수송기를 타고 완행열차 타듯이 오키나와, 괌, 하와이,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보스턴에 도착하는 과정이나, 어렵게 도착한 미국에서 성조기를 달고 뛰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사실들도 그렇고요. 영화의 80% 정도가 윤색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입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다 보면 설마 이랬을까 싶은 장면들이 종종 나와 자료를 뒤져보게 된다. 경기 막바지에 앞으로 치고 나온 서윤복 선수에게 개가 달려드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부상을 입고 리듬까지 깨진 서윤복이 경련을 일으키듯 부들부들 떠는 모습 역시 실제 사고다. 강 감독은 극적인 연출을 자제하면서 실화의 힘을 담백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려면 보스턴 거리의 재현이 관건이었다. “보스턴에 가서 실제 경기가 진행됐던 스타트부터 피니시 라인까지 가봤는데 컴퓨터그래픽으로 해결할 수준을 넘어 변모했더라고요. 전 세계를 뒤지다시피 하며 우루과이의 소도시로 거의 결정이 됐다가 막판에 20세기 초 건축양식이 남아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근처를 찾아냈어요.”

서윤복을 연기한 임시완은 대사 연기보다 달리는 모습이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데 “진짜 마라톤 선수가 되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절박함으로 5개월 간 훈련에 집중한 결과다. “‘미생’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보고 굉장히 새롭다고 느꼈던 참인데 마라토너로도 좋은 체격 조건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체격만으로는 진짜 마라토너처럼 보일 수 없고 체지방량이나 근육 모양까지 갖춰야 하는데 결국 임시완 배우가 지독하게 해내더라고요.”

영화 ‘1947 보스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947 보스톤’의 손익분기점은 450만명이다. 배우나 감독 이름 값만으로 관객 300만~400만명을 넘어서던 시절이 더는 아니다. “긴장 되죠. 옛날 같으면 후반 작업할 때 개봉 날짜가 일찌감치 정해지고 그만큼 영화를 알리는 시간도 길었는데 지금은 개봉일 정하는 방식도 달라졌고, 이게 괜찮을까 싶은 두려움이 컸죠. 같이 개봉하는 작품들과 좋은 결과를 내서 한국 영화의 활로가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함께 영화인들이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해 한국영화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중장기적 솔루션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시점입니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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