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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루소와 칸트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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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허경 옮김 | 한울아카데미(2004) 맹자를 거듭해서 읽다보면 서양 근대철학의 루소나 칸트와 유사한 점을 느낀다. 아무리 미증유의 ...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허경 옮김 | 한울아카데미(2004)

맹자를 거듭해서 읽다보면 서양 근대철학의 루소나 칸트와 유사한 점을 느낀다. 아무리 미증유의 혼란기였다 하더라도 철학적 평등관을 내세웠다는 점이나,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한 점이 정언명령으로 ‘번안’되기에 그러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외려 무척 조심스러워진다. 섣부른 비교가 오독을 일으키는 경우를 자주 보아 왔고, 비교되는 철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는 것보다 한낱 흥밋거리로 전락하고 마는 경우를 겪은 탓이다.

그러니, 일종의 비교철학자한테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일찌감치 펑유란(풍우란)의 ‘중국철학사’에서 공자와 소크라테스를 비교한 대목에서 상당히 큰 통찰을 얻은지라,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에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만나보기로 했다. 지은이는 세 철학자의 공통점을 도덕의 기초를 세운 점에 두었다. 그러면서 맹자사상의 특징으로 동정심의 자연발생성과 무조건성, 그리고 개인을 관계의 일부로 인식하는 데 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은이는 동정심은 개인횡단성과 감동연계성의 발현이라 말했다.

칸트는 인간의 첫 번째 도덕적 성향인 동정심을 분석하면서 경험에 근거한 요소를 제거하고 인간본성의 유일한 측면으로 이성적인 성향만을 강조했다. 이런 관점으로는 도덕의 동기를 설명하기 어려운데, 칸트는 “법을 존중할 수 있는 인간의 마음에 도덕이 영향을 미친다”며 이 문제를 해소했다고 한다. 하나, 지은이는 의무에서 출발한 칸트는 도덕의 존재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루소는 도덕의 기초를 동정심에 두었고, “인간이 (자연발생적 반응처럼) 자신의 의지를 동원할 수 있다”고 보았단다. 하지만 루소는 어떻게 하면 의도성을 배제할 수 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맹자는 성선이더라도 방심하면 그 본성을 잃고 구방심(求放心)하면 되찾는다고 하였다. 루소에게 맹자의 성선에 해당하는 것은 “인간정신의 깊은 곳에 (있는) 정의심과 덕행에 대한, 천부적으로 타고난 원칙”인 의식이다. 이 의식은 신이나 양치기의 목소리와 같아서 이 소리를 억누르며 듣지 않으면 의식은 거부되어 꺾이고 만다고 보았다. 맹자와 유사하다. 지은이는 간혹 맹자와 니체도 비교한다. 니체 철학의 귀결점이 의지라 본 지은이는, 의식을 가지고 바란다는 의미의 의지는 맹자에게 없고, 용기가 어떤 일을 결정하는 기본요소라 말했다. 자유라는 개념도 맹자에게 없다고 한다. 루소는 자유 없이는 도덕의지가 있을 수 없다고 보았고, 칸트는 자유가 도덕의지의 주인이라 말했다.

지은이는 시선을 근대철학에서 고대철학으로 돌려, 인생에서 유일한 가치가 도덕적 선이라고 본 점, 살면서 일어나는 고민이나 문젯거리가 있을 적에 감정을 억제하는 성향, 덕행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때 그 보상을 운명의 차원에 두는 점 등에서 스토아 철학과 유사하다고 논증한다. 책의 주제의식은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비교이지만, 맹자철학 입문서로서 손색없다. 역성혁명의 주창자로만 맹자를 안다면, 그의 깊고 넓은 철학세계를 엿보는 첫걸음으로 읽어볼 만하다.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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