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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감소가 정신력 탓? 이런 진단이 진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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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19일 경북 포항시 호미곶해맞이광장에서 대형 오륜기를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캠프에 오게 돼 뜻깊다.”(양궁 강채영) “해병 정신으로 금메...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19일 경북 포항시 호미곶해맞이광장에서 대형 오륜기를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캠프에 오게 돼 뜻깊다.”(양궁 강채영)

“해병 정신으로 금메달 따자.”(펜싱 구본길)

대한체육회가 2024 파리올림픽에 대비해 시도한 ‘원팀 코리아 캠프’에 참가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말이다. 19일부터 2박3일간 경북 포항의 해병 1사단에서 이뤄진 캠프에서 종목별 국가대표와 임원 500여명은 선수촌이나 경기장을 벗어나 전혀 새로운 체험을 했다.

대한체육회가 제공한 동영상을 보면 선수들의 표정은 밝았고, 기분을 전환한 것으로 보였다. 대한체육회 요청에 따라 훈련 기간과 강도를 대폭 낮추면서 체력적인 부담이 거의 없었고, 고공 입수나 상륙장갑차 탑승 등은 지원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보다 훨씬 엄격한 해병대 훈련은 과거 대기업에서 사원 교육의 장으로 활용한 바 있고, 수험생 등이 캠프에 다녀오는 경우도 있다. 선수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기를 얻었다면 해병대 정신 교육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다만 대규모로 국가대표 선수단을 동원한 병영 체험의 합리성 여부를 따져볼 필요는 있다. 결과가 만족스럽다고 과정을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애초 이번 기획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이 회장은 지난 10월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결산 자리에서 “내년부터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해병대 훈련을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2018년 이후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성적이 부진한 요인의 하나로 나약한 정신력을 지목한 것이다.

해병대 병영 체험 캠프에 입소하는 국가대표 선수들. 대한체육회 제공

하지만 선수들의 정신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이 늘 미소를 잃지 않는 것은 멘털을 강화하기 위한 자기 주문과 같다. 전 국가대표 배구선수 김세진은 늘 책을 들고 다녔는데, 운동 선수들이 독서나 음악감상으로 심신의 균형을 맞추는 것 역시 정신력 강화의 방법이다.

대표팀 성적이 떨어졌다고 선수들의 정신력을 탓하는 것도 문제다. 여기엔 훈련 방식의 과학화, 전술 개발, 저변 확대 등 선수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이나 비전이 없다. 해병대 극기훈련에 기대는 체육회의 사고방식이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이기흥 회장의 ‘마이 웨이’식 일방적 일 처리도 문제다. 워낙 막강한 회장이다 보니 측근의 참모가 제동을 걸지 못한다. 외국에서도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극기 캠프는 열리지만, 참여 여부를 물어보거나 아래서 위로 의견이 올라가면서 결정된다.

한국의 국제대회 성적이 부진하다면 체육계를 둘러싼 복잡한 사회문화적 현실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엘리트 스포츠의 성적 지상주의의 폐해에 대한 시민의 반발은 커졌다. 그런데도 대다수는 손흥민의 골에 열광하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공부와 운동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사회에서, 올림픽에서 1등을 하고 싶다는 선수의 실존적 고민은 무시되기 일쑤다.

성적 부진의 해법은 해병대 극기훈련보다 몇배나 어려운 지점에 있다. 선수들은 “캠프에 와서 좀 더 강인한 체력과 승부욕을 키울 수 있었다”고 했지만, 이 회장의 전시행정이 빚은 희극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창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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